‘모더니즘 건축 선구자’ 김수근 20주기 추모전
1960~80년대 한국 모더니즘 건축의 태동기를 이끌었던 거장 김수근(1931~1986)을 추억하는 기획전이 고인이 설계한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의 벽돌 건물에 차려졌다. 타계 20주기 기일인 14일부터 김수근 문화재단 등과 손잡고 시작한 ‘지금 여기: 김수근’(7월28일까지)전이다.
기획자는 이런 거장의 발자취를 ‘지금 현재 여기(그의 작품인 미술관)’에서 재조명하자는 동시대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막상 전시의 뒤끝에 떠오르는 건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었다.
미술관 쪽은 김수근이 한국 사회와 건축계에 남긴 문화적 열매가 무엇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지 못하고 있다. 전시장 얼개는 김수근의 연대기를 걸어놓은 1층과 그의 건축어휘 등을 벽에 붙이고, 일본 중견작가 무라이 오사무의 김수근 건축 사진들을 띠처럼 패널로 두른 2층이 핵심인데, 연표 등 단순한 설치물로만 채워져 있다.
가장 큰 맹점은 60년대 이후 고인이 우리 건축사에 제시했던 여러 선구적 개념들을 입체적으로 체험하고 감상할 수 있는 배려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60년대 그가 워커힐 힐탑바를 통해 처음 소개한 노출 콘크리트 개념, 자유센터 등에서 제시한 궁극적 공간, 세운상가 등에서 시도한 보행자데크 등의 여러 혁신적 개념들을 관객들은 거의 실감할 수 없다.
바닥을 김수근 건축 특유의 벽돌로 채우고 그의 스케치, 드로잉, 노트 등을 전시한 3전시실(사진)에서 그나마 거장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일방적 찬사로 일관한 1층 전시장 연표 연대기 기술에는 68년 최초의 본격적인 첨단 도시개발계획인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둘러싼 논란과 평가들, 건국 이래 최대의 건축사 논쟁을 불러일으킨 67년 부여박물관의 왜색 시비, 종묘를 가로막은 세운상가 터의 명암 등도 들어가야 할 항목이 아닐까.
찬사가 성찰을 덮어버린 전시 언저리에 거장의 신화에만 안주해온 건축계의 타성이 묻어나는 듯하다. (02)760-4892.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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