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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명품 미술관의 ‘불량한 B급 작가’ 초대

등록 2006-06-13 21:30

장영혜·고 박이소 이어 세번째 제도권 밖 젊은 작가전
개발제한구역·철거촌 등 황폐한 공간 ‘삐딱한’ 비틀기
삼성 로댕갤러리 ‘강홍구 사진전’ 홍라희씨 등 개막식 참석

제도권 미술권력의 상징인 삼성 미술관은 확실히 변하고 있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태평로 삼성 미술관 산하 로댕갤러리에서 열린 작가 강홍구(아래 오른쪽)씨의 개인전 ‘풍경과 놀다’의 개막식은 진풍경을 연출했다.

비(B)급 작가를 자처하며 도시 철거촌과 영화 세트 등의 불량스러운 풍경들을 주로 찍어온 강씨의 디지털 사진들 앞에서 미술계 중진인사들은 진중한 자세로 도열했다. 최고 컬렉터라는 홍라희 리움 관장,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화단 실세인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 하종현 서울시립미술관장 등이 홍 관장의 발걸음과 보조를 맞추면서 사진들을 훑었다.

상업화랑과 담쌓고 대안공간에서 젊은 작가, 평론가들과 난장 전시를 치르곤 했던 ‘불량’한 비급 작가의 근작전이 거장의 회고전처럼 시종 고상하고 세련된 분위기 속에 막을 올린 것이다. 대안공간을 무대삼고 있는 ‘삐딱한’ 작가의 초대전을 기획한 것만 해도 2004년 삼성재벌을 까발린 영상작가 장영혜(예명 중공업)의 전시와 지난 4~5월 열린 요절작가 박이소의 전시 이래 세번째다.

작가 강씨가 로댕갤러리에 내건 작품들은 대개 허접하고 소외된 대도시 변방의 철거촌이나 재개발 지역의 황량한 풍경들을 합성하거나 짜맞춘 디지털 사진이다. 1995년 디지털 카메라 초창기 작업을 시작할 당시 할리우드 비급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자신을 등장시켜 찍은 합성작업부터 황폐한 서울 근교의 개발제한구역을 담은 ‘그린벨트’ 연작, 촬영이 끝나고 폐물이 된 남루한 드라마 세트장을 다룬 연작, 김포공항 근처 소음피해로 주민들이 이주한 오쇠리의 풍경을 거쳐 철거촌의 전쟁폐허 같은 풍경에 주인 없는 소꿉놀이 집과 전자게임 캐릭터 근육맨을 낯설게 끼워 놓은 근작 ‘미키의 집’(위), ‘수련자 연작’까지 그의 다양한 디지털 편력기를 돌아볼 수 있다.

그의 작업이 집이나 장소 등을 주로 겨냥하는 건 한국인들의 시선이 그만큼 삶의 터전인 공간, 집의 변화에는 정작 무감각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업을 보고 나서 로댕갤러리 들머리의 대형 유리창에 투사되는 태평로의 부산한 인파와 고층빌딩의 이미지와 맞닥뜨리는 체험은 그래서 착잡하다.

강씨는 테크닉에 기대지 않고, 오직 뒤틀린 이미지 자체로서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허망한 공간적 풍경을 까발려 낸다. 겨울, 폐허가 된 불광동 철거촌의 어수선한 길목과 부서진 집더미들이 북한산의 장엄한 대자연과 어색하게 만나는 스펙터클한 풍경. 폐허촌의 적막한 풍경 위로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은 달리의 그림처럼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내뿜고 건물 더미 위로 미키네의 장난감 집이 자리잡는다. 지극히 무의미하게 찍고 주무른 구도에서 더욱 여러 갈래의 의미가 뻗어가는 그의 작품을 두고 작가는 “난 무언가 비틀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의 전환기 작업 격인 오쇠리 이주지 연작은 작가의 말대로 ‘한 마을이 폐허로 바뀌는 것이 우리 삶 전체에 대한 일종의 상징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방치한 쓰레기, 집 자재 더미, 더러운 물 웅덩이가 있는 그린벨트의 풍경을 ‘고사관수도’, ‘세한도’(아래 왼쪽), 이상한 귤이 솟아 있는 풍경과 대비시키고 있다. 80년대 그의 무협소설 편력을 바탕으로 만든 ‘수련자 인형 연작’은 이런 맥락에서 더욱 확장된 외연을 보여준다.

서민촌의 눈 쌓인 장독대나 마당 한구석의 폐물 더미에서 얼음물 바가지, 페트병과 잿빛 콘크리트 벽돌 틈 사이로 게임캐릭터 인형이 수련자의 자세를 잡고 노려보거나 달동네의 돌담벽을 오르는 작은 수련자의 모습들은 우리가 외면하거나 그냥 지나치는 도시 구석 공간의 진실을 은유한다.

전시가 회고전이라는 구태의연한 형식으로 정리되었다는 점은 아쉽다. 초기 작업부터 최근 근작들을 시간적 흐름에 따라 줄지어 배치한 얼개와 신랄한 사진 속 풍경들은 간간이 시선의 충돌을 일으킨다.

기획자인 구경화 연구원은 “기존 미술에 대한 저항을 제도 안에 통합하는 예정된 수순으로 보기보다 성실한 비급 작가가 지나쳐온 풍경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도록에 적었다. (02)2259-7781.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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