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두 사진 ‘아유론섬투나이트’
“카메라가 정교해질수록 사진가는 스스로 무장해제하거나 옛 카메라의 뒤떨어진 기술적 한계에 마냥 복종하고 싶어한다. ”
지금 국제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젊은 작가 정연두씨의 사진전 ‘아유론섬투나잇’(30일까지, 02-735-84449)은 언뜻 ‘미국의 지성’이었던 평론가 수잔 손탁의 명언을 떠올리게 한다. 가상 풍경을 꾸미고, 디지털 포토샵으로 주물러댄 듯한 <로케이션> 사진연작들이 죽 걸려있다. 낙엽 우수수 떨어지는 아파트 단지 도로 위의 한 순간, 인공 달 번쩍거리는 밤 바닷가, 아파트 베란다를 뒤덮은 얼음 폭포…. 하지만 사진을 찍은 징하디 징한 과정을 알고보면 작업들은 손탁의 명제와 걸맞는 듯 하면서도 기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엇나가버린다.
작품들은 수작업으로 꾸민 가상 디지털 같은 풍경을 끈기있게 계속 찍은 것들이다. 번쩍이는 인공 달을 찍으려고 나이트클럽 조명등을 크레인에 매달아 앵글에 맞췄으며, 인공 암벽 타기를 찍으려고 직접 북한산 암벽에 합성수지 암벽을 실어가 맞대 놓기도 했다. 품들인 트릭(속임수)으로 보는 이의 의표를 찌르는 작업들은 숭고한 의식처럼 아날로그 사진의 심미성을 고집하는 사진가들 작업과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조소를 전공하고 설치, 영상작업을 편력한 그의 사진은 마법, 판타지 같은 첨단 디지털 풍경을 아날로그로 재현하는 집요한 재치, 냉철한 계산 속을 보여준다. 70년대 이후 서구에서 흔히 시도한 ‘메이킹 포토’(연출사진)의 해묵은 얼개를 디지털 감성의 아날로그로 재현한 것은 그만의 특기다.
얼음 폭포를 지켜보는 모피코트 입은 아이에서 읽히는 지극히 영악한 상상력은 다분히 유보적인 상상력이기도 하다. 찍기 전에 스펙터클 혹은 몽환적 장면 연출에 무엇보다 ‘목숨을 건’ 사진들이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속내는 무엇일까. 2000년대 초 호평받은 춤추는 중년남녀 연작 ‘보라매댄스홀’, 각 나라 젊은이들의 장래 희망을 사진 속에 실현시켜 준 ‘내사랑 지니’ 연작 등의 유쾌한 서민적 상상력, 동심어린 상상력은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잘 팔리는 유망 작가 정씨의 사진 속 행간에서 느껴지는 의문들이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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