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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한대수 “민중가요도 사랑 노래입니다”

등록 2006-06-22 14:57

첫 에세이집 올드보이 펴낸 한대수씨
첫 에세이집 올드보이 펴낸 한대수씨
민중가요 리메이크앨범 '아가미'에 참여
"실종됐던 아버지와 연락하고 지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들었어요. 마치 러시아 노래 같더군요. (몽골계 러시아인) 아내 옥사나 알페로바(Oxana Alferovaㆍ36)도 좋아했어요. 허허, 양호했어요."

의외였다. 1970년대, 저항가수로 내몰린 적도 있던 사진작가 겸 가수 한대수(58). 그가 '사랑도 명예도/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로 시작되는 민중가요를 모른단 사실에 한번, '양호하다'는 표현을 남발하는 점에 또 한번 놀랐다.

20일 그의 10평대 보금자리가 있는 서울 신촌의 허름한 주점. 그는 대화를 녹음하려는 듯 테이블 위에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를 꺼냈다.

"20년, 아니 10년 있다 내가 죽었을 때 테이프에 담긴 목소리가 추억이 될 겁니다. 선물해줄게요. 이 정도면 양호하죠?"

이번엔 놀라움이 아닌, 뭉클함이다. 스스로 '할아버지'를 자처하는 그의 섬세한 배려란.

한대수는 문화연대 지금종 사무총장과 시민문화네트워크 티팟이 기획하고 이적, 스윗 소로우, 윈디 시티, 나비효과, 전제덕, 하림 등 대중음악인이 참여한 민중가요 음반 '아가미'에 목소리를 실었다. 20대 '천재 뮤지션' 정재일이 편곡해 새 옷을 입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대수의 걸쭉한 음색과 구성지게 어우러졌다.


"뉴욕에서 32년, 캘리포니아에서 3년 살았어요. 미국에 오래 있어서 이 노래 들어본 적이 없네요. 아름답더군요. 하지만 중국 마오쩌둥(毛澤東) 냄새도 났어요. 군가가 될 뻔한 곡이 정재일의 손에 의해 멜로디컬하고 고급스런 음악이 됐죠. 이 노래를 민중가요로 구분짓고 싶진 않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전쟁 아닙니까. 상처투성이로 산 인간을 어루만지는 노래이니 이 또한 사랑 노래입니다."

◇ "우린 '좁은 관념의 문' 넓혀야"

한대수는 민중가요, 불교음악, 찬송가, 재즈 등 장르를 구분짓는 데 반기를 들었다. 들어서 좋은 음악이면 된다는 것.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미덕이 음악과 음악 팬의 자세 가운데 으뜸이라고 첫손에 꼽는다. 그러기 위해선 개개인이 가진 '좁은 관념의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린 타민족보다 '좁은 관념의 문'을 가졌어요. 원나라, 일본, 미국의 지배를 받은 것도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어요. 뉴욕의 방에서 '왜 우리는 쓰라린 역사를 가졌나' 한국인으로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나와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민족성이 원인입니다. 질투와 소유욕이 생기니 발전 못하고 '캐치 22(Catch twenty-two: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바진 경우)' 상황에 빠지는 겁니다."

함께 자리한 문화연대 지금종 사무총장은 넋두리 같은 한대수의 말에 "'아가미' 음반을 통해 음악의 종 다양성에 기여하고 싶었다"면서 "한국의 음악산업, 소비구조는 편향돼 있다. 음악의 종 다양성이 훼손돼 거세당한 느낌이다. 민중가요의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통해 투쟁과 일상의 분리를 없애고 싶었다"고 거든다. 민중가요도 고정관념을 부수고 진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자 경제, 정치를 아우른 '한대수 식 이론'이 펼쳐진다.(그는 스스로 '돌아다니는 학자'를 자처한다.)

"나의 체감 세계경제 순위는 일본, 미국, 독일 다음이 우리나라예요. 세계 경제 4위면 정신도 4위가 돼야 하는데. 오픈 마인드가 중요하죠. 부산 사람인 내가 최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5ㆍ18 공연 때 노래했습니다. 우리가 관념의 문만 넓히면 일본 독도문제, 중국 역사왜곡 문제, 북한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가미'를 들으며 '대가리'를 넓혀야 해요."(웃음)

또 모든 음악에는 머니(Money), 열정(Passion), 희생(Sacrifice)이 삼위일체를 이뤄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아가미' 음반 역시 제작비가 투입됐고 편곡자와 참여 가수의 열정과 희생이 응집됐습니다. 이번 작업하면서 정재일에게 '너 미친 놈'이라고 했지요. '현대 클래식의 대부'인 러시아 출생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듣고 독학으로 악보 공부를 했다길래. 그의 열정이 없었으면 이 음반은 없었을 겁니다."

◇ "창작인에게 고통과 상처는 비료"

한대수는 스스로를 상처투성이라고 했다. "내 인생 57.5년은 고통, 6개월만 환희였죠. 6개월이란 여인들을 만났을 때입니다, 허허."

지금 그는 생존 자체에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전 6시 양호하게 일어나, 양호하게 밥 먹고, 양호하게 사랑을 나누고, 밤 11시 양호하게 자죠. 육체가 마음을 따르지 못하니 이젠 자동이 아니라 모든 게 노력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방황했다. 할아버지 한영교 씨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신학대 초대 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냈으며 서울대 공대생이던 아버지 한창석 씨는 핵물리학을 공부하러 미국 유학을 간 후 실종됐다. 이에 어머니는 새 인생을 찾아나섰고 그는 조부모의 품에서 자랐다.

"경제적으로가 아닌, 정신적인 고생이었죠. 고교시절 자살 직전까지 도달했으니까. 지금 79살인 아버지를 17살 때 처음 만났어요. 장남을 못 찾으면 눈을 못 감는단 조부모님의 노력으로 FBI가 찾아냈죠. 난 뉴욕 맨해튼에 살았는데 아버지는 1시간 반거리인 롱아일랜드에 미국 여자와 가정을 꾸리고 사시더군요.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미국 사람이 돼 있었어요. 어머니는 서울 강남에 사십니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애틋함은 별로 없단다. 어릴 때 모유를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으면 모정, 부정에 사무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조부모님은 여전히 사랑해요. 아버지와는 e-메일로 안부를 묻죠. '하우 아 유(How are you)' '굿바이, 땡큐(Good bye, Thank you)' 정도 얘기하는 사이입니다."

그는 이런 상처가 자신이 음악을 하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창작인에게 고통과 상처는 비료라는 것. 그러나 음악인으로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감지됐다.

"할아버지가 바흐를 즐기셨어요. 화가 잭슨 폴락의 작품에 눈물난 적 없던 내가 어린 시절 바흐 음악에 울었으니까. 물론 목장을 운영하시던 할아버지를 위해 뉴햄프셔대학 수의학과에 입학했는데 수술은 진짜 못하겠더라고요. 전 호러 무비도 못 보거든요. 박찬욱 감독을 사랑해도 '올드보이'는 못 봅니다.(그는 '올드보이 한대수'란 책을 내기도 했다)"(웃음)

◇ "아내 도시락 싸주는 전업주부"

지금 한대수의 인생 반려자, '베이비(Baby)', 가장 무서운(?) 존재는 22살 연하의 아내 옥사나 알페로바다. 미국에서 만나 1992년 재혼한 아내가 1년 전 귀국하면서 그는 친척이 소유한 신촌의 한 오피스텔에 정착했다.

"전 아내에게 꼼짝 못합니다(웃음). 아내는 유치원 영어교사로 일해요. 신촌의 대형 할인점에서 장을 봐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의 점심 도시락을 싸줍니다. 저 요리 잘합니다. 대한민국 주부들이 제 요리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마늘 까는 법부터 남다르거든요. 요즘 녹음중인 13집에 수록할 메이킹 필름을 찍고 있는데 언젠가 요리강의 DVD도 내고 싶네요. 완전 전업주부입니다."

신촌 거리를 5바퀴 산보하고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과 '막간 수다'를 떠는 것도 그에겐 사는 낙이다.

"사람이 고통의 눈물이든, 환희의 눈물이든 액체를 흘리는 건 좋아요. 난 내 아내와 섹스하자는 표현을 안해요. '우리 화학물을 좀 나눌까'라고 애기하죠(웃음). 미국에서 사랑에 빠졌을 때 '폴링 인 러브(Falling in love)' 대신 '위 해브 어 케미스트리 투게더(We have a chemistry together)라고 말하거든요."

인터뷰 말미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 베이비. 10분 후면 끝나" 그는 정말 10분 후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걸음을 향했다.

이은정 기자 mimi@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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