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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그냥 부딪쳐 마시자는 거죠

등록 2006-07-09 18:41수정 2006-07-10 16:02

왼쪽부터 박윤식, 이상혁, 김인수, 한경록, 이상면
왼쪽부터 박윤식, 이상혁, 김인수, 한경록, 이상면
5집 ‘오케이 목장의 젖소’ 낸 크라잉 넛

재기 넘치는 5인조 밴드 ‘크라잉 넛’은 종종 영국의 펑크 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나 ‘클래시’와 비유된다. 영국이 1970년대 아이엠에프의 구제금융을 받을 때, 섹스 피스톨스 등은 단순명쾌한 연주와 직설적인 가사로 영국인들의 분노와 좌절을 담았다. 크라잉 넛도 90년대 후반 경제위기를 겪는 한국 사회를 향해 “살다보면 그런 거지/ 말은 되지/ 우리들의 잘못인가”라고 외치면서 경제난에 구겨진 서민들의 가슴에 묘한 통쾌함을 안겨줬다. 월급쟁이들은 노래방에서 넥타이를 와이셔츠 속에 구겨 넣고 “말 달리자”고 목에 핏줄이 서도록 외쳤고, 젊은이들은 그들 같은 인디밴드들이 공연하는 홍대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어언 10년이 흘렀고 신출내기 대학생이었던 크라잉 넛의 멤버들의 나이도 이제 30줄에 걸렸다. 그들이 3년반의 공백을 접고 5집 음반 〈오케이 목장의 젖소〉를 내놓았다. 그 사이 다섯 멤버 중 네 명이 군대에 다녀왔고, 두 명이 결혼을 했다. 자유분방하던 악동들은 이제 ‘아저씨’가 되었지만, 그들의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여전히 유쾌하고 거침없다.

음반의 첫 곡 ‘오케이 목장의 젖소’에서부터 그들은 장난을 건다. “그들이 바에 들어오자/ 사람들은 모두 고장난 시계처럼 멈췄지/ 왜냐면 그들의 목에는 강남 땅값보다도 높은/ 현상금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지.”

‘룩, 룩, 아, 아’로 시작하는, 음반의 두번째 노래 ‘룩셈부르크’에서도 그들은 “하루 종일 레게 하는 자마이카”와 “이거 사람이 너무 많은 차이나”로 듣는 이의 소매를 잡아끈다. ‘부딪쳐’, ‘마시자’ 같은 노래에서도 그들은 단순하고 명쾌한 펑크 특유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말달리자’ 시절 크라잉 넛을 기대하던 팬에게는 반가운 소식인 셈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가 당연히 변한 게 있겠지만, 스스로는 잘 모르겠어요. 군대 가기 전이나 지금이나 생활이 비슷해요.”(한경록·베이스)

물론 이들이 펑크의 테두리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음반에 빼꼭히 들어간 16곡은 펑크의 기반에 팝, 레게, 포크, 폴카, 트로트의 요소를 곳곳에 갈라 담았다. 열한번째 노래 ‘마이 월드’에서는 아코디언의 선율을 폴카 리듬에 얹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는 학교 때 공부를 하지 않아서/ 누가 옳고 그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사는 이 세상은 모두 나의 것/ 싸우지 말고 살아봐요”


한편, 레게의 색을 입힌 ‘명동콜링’과 ‘오줌싸개 제너레이션’에서는 크라잉 넛 특유의 유쾌함 속에 감춰진 처연한 감수성을 담았다.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 인간이 아냐 믿을 수 없어”(‘쇼윈도 제너레이션’) 음반의 여덟번째 노래 ‘물밑의 속삭임’에 가면 크라잉 넛 특유의 뒤섞음은 절정에 도달한다. 가수 심수봉을 초대해서 보컬 박윤식이 뽕짝 리듬에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이 음반을 두고 “얼핏 수용이 어려울 듯 보이는 장르까지도 크라잉 넛이라는 코드 안으로 대폭 끌어들이는 ‘열린 음악’의 전형을 확립했다”고 격찬했다.

크라잉 넛은 축구와 남다른 연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말달리자’가 이들의 이름을 처음 알린 노래라면,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내놓은 ‘필살 오프사이드’는 그 이름을 대중화한 곡. 이번 월드컵에도 축구 선수 박주영을 위해 ‘더 히어로’라는 곡을 내놓았다. 드럼을 치는 이상혁은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놀아보자는 생각으로 냈어요”라며 “우리 중에도 인수 형이나 윤식이는 ‘축구 따위는 지옥에나 가라’고 생각하는데요”라며 웃었다.

70년대 영국에서 주류의 가치와 맞서 싸웠던 영국의 펑크 록 그룹과 크라잉 넛을교차시켜 생각한다면, 방송사들이 마련한 월드컵의 응원무대가 이들에게 안 어울리는 장소일 수도 있다.

크라잉 넛은 음악인을 연예인으로만 만드는 티브이 프로그램에는 선을 긋겠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앞으로 가는 길이 섹스 피스톨스랑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펑크 록 그룹도 가는 길이 각각 달랐어요. 섹스 피스톨스가 계속 저항을 한 반면, 클래시 같은 그룹은 펑크에 디스코 같은 요소를 도입하면서 음악적인 발전을 했죠. 굳이 표현하자면 우리는 클래시랑 비슷해요.”(이상면·기타)

글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내가 좋아하는 곡은…

‘크라잉넛’과의 인터뷰는 힘들다. 그들끼리 쉼 없이 던지고 받아치는 농담은, 마치 연주를 할 때처럼 박자와 템포가 맞아떨어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쭉 함께 ‘놀아온’ 이들은 서로의 리듬에 너무나도 익숙한 듯했다. 긴장을 하지 않으면 기자도 얼결에 이 농담의 망에 걸려서 같이 ‘놀기’ 십상이다. 이들에게서 음반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를 고르라고 했다. 답도 장난기가 넘치고, 개성적이기 그지없다.

박윤식 (보컬, 기타)
‘새’

느낌이 좋다. 동해 바닷가에서 오토바이를 타면서 이 노래를 듣는데, 너무 좋아하다가 오토바이를 탄 채로 바다에 빠져버렸다.

이상면 (기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가사를 쓰고 곡을 직접 지었는데, 다시 들으니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이상혁 (드럼)
‘오줌싸개 제너레이션’

들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가사가 웃기다.

한경록 (베이스)
‘오케이 목장의 젖소’

이 곡이 머릿곡이라고 하니까, 윤식이 아버지께서 (따라부를 수가 없어서) 버럭 화를 내셨다더라.

김인수 (아코디언, 키보드)
‘뜨거운 안녕’

제일 시원한 노래라서, 신선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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