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문예군주’ 헌종이 수집한 정조·대원군·다산 등 걸작
‘조선왕실 인장’전
23살 때 요절한 조선왕조 24대 임금 헌종(재위 1834~1849)은 평생 외척 세도정치의 그늘을 피할 수 없었다. 8살 때 왕위에 올라 7년간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을 받았고, 뒤에도 안동김씨와 풍양조씨 세력들의 눈치를 보며 정사를 맡아야 했다. 정조를 떠올릴 정도로 총명했다는 그가 1847년 창덕궁 동쪽에 사저인 낙선재를 짓고 틈날 때마다 서화감상과 고금 명사들의 인장(도장) 수집에 열을 올린 사실은 이런 정치적 불운과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을 터다.
국립고궁박물관이 개관 1돌을 맞아 15일 시작한 ‘조선왕실의 인장’전(10월8일까지)은 사실상 ‘미완의 문예군주’ 헌종에 대한 재조명 전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장은 중요한 문서나 좋은 글씨, 그림 등에 찍는 격조 높은 도장을 뜻하는데, 이 인장 유물을 왕실 컬렉션에서 뒤져보니 중요한 고금의 인장 명품들은 대부분 헌종의 수집품으로 확인된 것이다.
특히 헌종은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표암 강세황, 자하 신위 등 당대의 석학들과 옹방강, 오숭량, 문팽 등 청대 대문인들의 인장까지 소장했던 것으로 밝혀져 조선 말기 문화사에서 그의 존재가 새삼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전시장에는 헌종이 낙선재에서 서화와 더불어 행복하게 감상했던 주요 인장 유물들이 대부분 나왔다. 헌종이 모은 인장을 총정리한 기념비적 인보인 〈보소당인존〉에 나온 여러 인장들을 뼈대로 그의 개인 인장, 교유했던 조선·청대 석학들의 인장, 선대 정조와 후대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인장 등이 두루 망라되었다.
인장은 좁은 인면에 개인의 인격, 취향을 반영하는 이름, 글귀 등을 새겨 찍는, 품격 높은 선비 예술이다. 이름이나 호를 멋들어지게 새긴 것도 있지만, 축원이나 길한 말을 새긴 길어인, 시구나 고사성어, 명언 등을 새긴 한문인 등의 인장들이 많았다.
헌종의 호 ‘원헌’(오른쪽), 만가지도 넘는 왕의 업무 중에 잠시 쉬는 겨를이란 뜻의 ‘만기여가’를 새긴 헌종의 체취 어린 인장, 청대 고증학자 옹방강의 호 ‘보소’를 따 그를 존경하는 의미로 새긴 ‘보소당’, 다산 정약용의 ‘다산진장’, 옹방강의 당호를 따서 지은 추사 김정희의 당호 ‘보담재인’, ‘경서의 뜻을 묵은 밭을 매듯이 하다’는 ‘치여경훈’ 등이 보인다.
특히 온통 왕과 명사들의 인장으로 가득 채워진 병풍인 ‘보서당 인병’도 쉽게 볼 수 없는 눈대목 걸작이다. 또다른 명품은 지상 최고의 권위자란 뜻의 ‘극(極)’이란 글자 주위로 두마리 용을 두른 정조의 인장(왼쪽)이다. 왕가의 기품이 서린 이 불후의 인장 표면에는 후대 화재로 불먹은 흔적도 남아있어 역사적 무상감마저 들게 만든다. 크기가 다른 5개의 인장을 안에 포개어 갖고 다니기 쉽게 한 대원군의 이색인장 ‘투인’도 색다른 멋을 풍긴다. 23일, 9월6·20일 서예사가 김양동 교수와 유홍준 문화재청장, 최종덕 창덕궁 관리소장의 특별강연이 있다. (02)3701-7642. 노형석 기자
특히 온통 왕과 명사들의 인장으로 가득 채워진 병풍인 ‘보서당 인병’도 쉽게 볼 수 없는 눈대목 걸작이다. 또다른 명품은 지상 최고의 권위자란 뜻의 ‘극(極)’이란 글자 주위로 두마리 용을 두른 정조의 인장(왼쪽)이다. 왕가의 기품이 서린 이 불후의 인장 표면에는 후대 화재로 불먹은 흔적도 남아있어 역사적 무상감마저 들게 만든다. 크기가 다른 5개의 인장을 안에 포개어 갖고 다니기 쉽게 한 대원군의 이색인장 ‘투인’도 색다른 멋을 풍긴다. 23일, 9월6·20일 서예사가 김양동 교수와 유홍준 문화재청장, 최종덕 창덕궁 관리소장의 특별강연이 있다. (02)3701-7642.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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