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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앵글로 그린 패션, 상술일까 예술일까

등록 2006-08-29 18:56수정 2006-08-30 10:14

22면
22면
프랑스 현대 패션사진전, 서구·일본 작가 16명 100여점
인상파부터 미디어아트까지
다양한 현대미술 흐름 반영
‘돈벌이’ 밝혀도 작가욕망은 꿈틀

“나는 예술을 말하지 않는다. 내 작품은 팔기 위한 것이다. ”

알몸 모델들의 노골적인 ‘빅누드’사진으로 20세기 패션계를 주물렀던 사진 거장 헬무트 뉴튼(1920~2004)은 자기 작품에 이론적 설명은 필요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미지 환각의 극치인 패션 사진의 본질은 돈벌이라는 말이다. 사이키델릭 조명과 사운드, 온갖 장식과 디테일로 뒤발한 첨단 스타일이 모델들의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패션 사진의 한 순간들은 기실 고객들의 넋을 빼앗고 돈을 벌기 위한 연출의 산물이다. 물론 사진이 단순한 이미지 전달의 매체가 아닌 이상, 작가들 특유의 눈길과 이미지에 대한 생각들 또한 자연스럽게 본질을 더께처럼 덮게 된다. 뉴튼의 뻔뻔스런 누드사진이 신비스런 카리스마나 실존을 느끼게 하는 것처럼.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 차려진 ‘프랑스 현대 패션사진전’(9월30일까지)은 패션을 응시하는 사진 작가들의 이 미묘한 내면을 까발려 보여주려 한다. 프랑스 국립현대예술기금(FNAC)이 소장한 서구, 일본의 중견 패션사진가 16명의 사진, 카탈로그, 룩북(작품집), 영상 등 100여점이 출품작이다. 2, 3층에 내걸린 작품들은 우선 19세기 인상파부터 20세기말 미디어아트, 즉물적 사진까지 다양한 현대 미술 흐름을 적극 작업에 투영했음을 과시하는 듯하다. 하지만 좀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괴물’같은 표현 욕구와 조작된 속물적 이미지 사이에서 표류하는 작가들의 자기 자리를 묻는 물음과 다기한 시선들 또한 발견하게 된다.

발레리 블랭, 프랭크 페렝, 엘리자베스 크뢰스베르 등 30~40대 사진가들에게서 이런 물음은 도드라진다. 블랭은 마치 모델이 방금 입고 벗어버린 듯 몸의 흔적이 팬 웨딩드레스만 찍었다. 페렝은 독일 사진가 거스키의 스펙터클 사진과 비슷하다. 패션쇼의 거대공간을 모델이 배우같이 등장하는 암전된 연극무대처럼 잡아냈다. 크뢰스베르의 영상물은 걸어가는 모델의 움직임에 따라 같이 들썩이는 옷자락, 하이힐, 장신구 등의 움직임을 느리게 재생시킨다. 마치 생명체인양 착시효과를 일으키게 하는 화면에서 돈벌이라는 패션 사진가의 엄숙한 숙명과 우아하게 날을 세운 작가주의 사이에 긴장감이 일어난다.

사라문이란 작가의 작업은 마치 표현주의 그림을 재현한 듯하다. 녹빛, 적색, 흑색을 조화시켜 광대처럼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 모델을 재창조하거나, 개를 끌고 수영장에 발을 담근 마네킹, 고양이 신사와 이야기하는 인형 패션 모델 등의 다양한 상상력을 과시하고 있다. 프랑소와즈 위기에란 작가는 인상파 드가의 그림 구도를 끌어들였다. 패션쇼 직전 옷을 추스리는 모델의 부분적인 몸체만을 드러내면서 긴장된 막후 분위기를 보여준다. 원로축인 60대 작가 튀르브빌은 아예 20세기초 사진가 앗제처럼 빛바랜 분위기의 옛 궁전 거실 속에서 쓰러져있거나 알몸으로 서있는 여러 모델들의 초현실적인 움직임을 주시했다. 이밖에 전위사진 기법인 포토그램을 써서 발광하는 듯한 패션 이미지를 보여주는 낸시 윌슨-파직, 클로즈업된 의상의 세부를 통해 동양적 명상을 이야기하는 일본 작가 케이치 타하라 등도 눈에 띈다.

예술, 고상한 취미 따위를 감히 이야기하진 않지만, 작가들은 환각적, 감각적 표현이라면 어떤 트렌드건 과감히 수용하는 성향을 보여준다. 말로 되새김하기 어려운 패션 사진장이들의 삐져나온 욕망이랄까. 단 키치처럼 저급하지 않고, 우아한 패션의 정형을 떠나지 않는다는 점이 색다를 뿐이다. 9월16일 오후 3시 한국 패션사진작가와의 만남이 마련된다. 전시설명은 매일 낮 12, 3시. (02)720-0667.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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