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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아시아 예술의 미지근한 ‘열풍’

등록 2006-09-08 20:07

의제 허백련의 산수화를 밑그림 삼아 만든 황인기씨의 디지털 산수그림 <오래된 바람-남도>
의제 허백련의 산수화를 밑그림 삼아 만든 황인기씨의 디지털 산수그림 <오래된 바람-남도>
개막한 광주비엔날레 가보니
열풍? 뜨거운 바람은 불지 않았다. 2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 잔치인 광주 비엔날레의 여섯번째 전시 마당은 온탕과 냉탕을 오간 듯한 미지근한 느낌들로 채워졌다.

8일 광주시 북구 중외공원에서 ‘열풍 변주곡’이란 주제를 걸고 개막한 비엔날레 본전시의 5개 전시관은 정적인 동양 현대미술 품 전시장과 도시, 사회 문제 자료 수집관 같은 공간들이 기묘하게 결합된 얼개다. 느긋한 동양 현대미술로 채워진 1, 2, 3전시관을 보다가 갑자기 딱딱한 도서관, 자료실 분위기의 4, 5전시관을 접하고 당혹해할 수도 있다. 32개국 참여 작가 127명이 만들어낸 이 낯선 얼개를 김홍희 예술총감독은 줄곧 ‘아시아적 시선과 가치’로 설명했다. 주제 ‘열풍 변주곡’또한 최근 세계에 급속히 퍼진 각양각색의 아시아 문화, 아시아 예술의 열풍을 현대미술을 통해 되살펴본다는 뜻이지만, 전시내용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뒤바뀔 수 있는 이 낭만적 주제를 부각시키기엔 기획진의 역량과 투시력이 뒷받침을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않았다.

32개국 작가 127명 참여
‘아시아적 가치’ 드러내기 기획력 부족·중국 평향 아쉬움

중국작가 장 후안의 설치작업 <평화>
중국작가 장 후안의 설치작업 <평화>

본전시 첫부분 ‘첫장-뿌리를 찾아서:아시아 이야기 펼치다’가 열린 1, 2, 3 전시관 전반부 작품들은 현대미술에서 변용된 동양적 세계관, 사상적 맥락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애초의 뜻만큼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에서 자유롭게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수석기획자인 중국 미술사가 우훙이 자국 작가들에 편중해 전시를 꾸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재 허백련의 전통 산수화를 디지털 기호화해 자석돌로 이미지를 표현한 황인기씨의 디지털 풍경화를 시작으로 반가사유상의 상체 세부를 여러대 설치카메라로 비춘 재미작가 마이클 주의 공동 대상 수상작, 중국의 전통 종 앞에 알몸의 인간 조형물을 종치는 당목처럼 배치한 중국 작가 징후안의 설치물 등이 잇따라 보인다. 짚과 솔가지 등으로 허백련의 산수화 윤곽을 입체적으로 재현한 중국 작가 수빙의 스크린 산수화, 관객의 뇌파움직임에 따라 스크린 속 꽃의 이미지가 출몰하는 슈민린의 <내공> 등도 눈길을 끌었다.

2전시관에는 동양적 선사상 등이 바탕이 된 독일의 전위예술 플럭서스 운동의 지난날을 소개한 사료관이 개설됐다. 백남준, 오노 요코 등 소속 작가들의 퍼포먼스 관련 자료 등이 전시됐지만, 단순한 자료 나열에만 머물러 플럭서스의 개념과 동양사상이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접근은 미진해 기획력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반면 어머니가 평생 모은 가재도구, 신발, 그릇 등 과거의 존재감이 서린 일상 집기들을 전시장에 그대로 옮겨온 중국 작가 송동의 공동 대상수상작 <버릴 것 없는>은 효의 정신과 개인 가족사의 솔직한 고백이란 측면에서 갈채를 받았다. 다국적 기업이 만든 생수병 밭 속에서 일일이 생수병을 꺼내 마신 뒤 다시 누런 소변을 생수병에 채워 성조기의 별을 완성시키는 베트남 작가 준 구엔 하츠시바, 마오저뚱 시절 사회주의 중국의 보도 사진 조작상을 까발리는 장 달리의 다큐 작업 등도 깊은 인상을 심었다. 카미사토 등 일본 작가 3인의 공동작업 <무니>는 뿌려진 수증기 상 위에 나비의 영상을 투사시킨 신비스런 테크놀로지 아트로 전시주제와 부합한 볼거리를 만들었다.

허백련 산수화 디지털 작품
종치는 당목이 된 인간 등 눈길 4·5전시관은 자료관 같아

각국 대안공간 중심의 젊은 작가들이 워크숍, 네트워킹의 결과물들을 모은 ‘마지막 장-길을 찾아서’(3전시관 후반~5전시관)는 전시 내내 논쟁적 대목이 될 전망이다. 각 대륙 도시공간의 정체성 등에 대한 공공적 성찰 성격이 강한 도서관 얼개인데, 시각성이 뚜렷한 첫장과 전혀 맥락이 다른 공간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전시는 백지숙씨를 비롯한 국내외 대안공간 기획자와 작가들의 세심한 워크숍과 현지 작업 프로그램의 성과물임에도 불구하고, 1~3전시관의 뚜렷한 아시아적 이미지들과는 서로 맞서거나 마찰을 일으키는 요소들이 적지않다. 상하이, 도쿄, 서울 등을 오가며 이들 도시의 복잡한 역사적 관계를 가상 드라마 형식으로 살핀 박찬경, 노재운, 조습씨의 공동 작업, 광주시민 합창단을 꾸려 함께 노래 부르는 세르비아의 행동주의 그룹 슈카르트의 ‘빛고을 합창단’,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후일담을 다큐 그림, 사진으로 정리한 믹스라이스 등이 눈을 끈다. 중견 작가 김홍석씨의 이야기 설치공간은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물을 낭독한 광주 초등학생의 영상이나 ‘부시야 잘 먹고 잘 살아라’등을 발음 그대로 옮긴 알파벳 구문 등을 통해 언어간 소통 구조의 왜곡상을 조롱한다. 엉덩이 복사기, 여성용 성인잡지를 갖춘 금남의 여성 전용실을 만든 임민욱씨의 작업과 암스테르담 홍등가 여성의 자작시를 일일이 구해 바닥에 영상으로 투사한 송상희씨의 <달맞이꽃>등은 각기 다른 차원에서 여성성의 공간화를 꾀한 작품들이며, 함경아씨의 설치영상 <허니 바나나>는 바나나에 얽힌 세계 곳곳 사람들의 사회적, 개인적 추억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젊은 공공미술 작가들의 문제의식이 단순한 미학적 작업을 떠나 사회학적 연구와 조사, 공동체 참여 등으로 크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시지만 그것을 독해하는 관객들은 많지 않을 법하다.


미국 좌파 기획자 크리스 길버트 등이 꾸민 5전시관은 이번 비엔날레의 ‘구멍’으로 거론된다. 남미, 아프리카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 침탈상을 강하게 비난하고 고발하는 다큐 자료관 성격인데, 아시아적인 전체 주제와 단절된 채 강박적 반미를 부르짖는 전시구성이 눈에 거슬렸다. 이 전시관 기획자들은 전시주제와 기획내용을 두고 사사건건 주최쪽과 충돌해 기획진이 사실상 손을 놨다는 후문이다. 이밖에 딸림행사인 ‘제3섹터-시민프로그램’의 경우 본전시에 밀려 잡동사니 취급을 받거나 시내 곳곳에 분산된 관행을 벗어나 같은 공원 안에서 시민작가 작품전, 아트페어 등의 차별화한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는 점이 성과로 꼽힌다. 유진상 계원조형예술대교수는 “이슈를 제기해온 비엔날레의 본령에 비춰 전시 진행 방식이 절충적이며, 내건 메시지도 잘 잡히지 않는 것이 이번 비엔날레의 특징”이라고 평했다. (062)608-4267.

광주/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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