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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두 여성 다른 여성성’ 한지붕

등록 2006-09-19 18:49

이순종씨 일상속 시선의 폭력성 수다처럼 질펀하게
정정엽씨 핍박당하는 소수자 핏빛 드로잉 맵싸하게
이 미술관은 공사중인가? 서울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 2층은 공사판 철제 부재인 ‘아시바’로 가득찼다.

작가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악명높은 이 미술관의 거친 공간을 중견 여성작가 이순종(53)씨는 무지막지한 아시바 구조물로 평정해버렸다. 30일까지 이 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씨의 기획 초대전 ‘사랑 사랑 내 사랑’은 살풍경한 아시바 구조물 속에서 음식과 여성에 대한 이 시대 시선의 폭력성을 좇아가는 숨바꼭질을 펼친다.

전시장의 관객에게는 작은 인내가 필요하다. 이리 저리 얽힌 철골 자재 설치물 속을 떠다니듯 돌면서 숨은 소품들을 훑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투박한 자재 덩어리 곳곳 구석에 엽기적이면서 발랄하고 재미난 이미지들이 잡힌다. 머리 속에 아이스크림 무스 덩어리가 든 알몸 바비인형들, 스타킹에 싸인 조리기구, 손톱을 세운 볼링머리 여인상, 군화를 감춘 철가방, 사타구니에서 화살을 쏘아대는 암컷 고릴라 드로잉 등이 다양한 느낌으로 와닿는다. 큰 컵 속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날 드세요’라고 유혹하는 바비인형(사진)도 보인다.

거친 철골 구조와 군화, 철가방, 여자, 음식 등이 뒤섞인 야릇한 전시장 이미지는 도발적으로 내리 꽂히는 요즘 광고물의 현란한 음식과 여성 이미지들이 어디선가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플라스틱 바비 인형의 깜찍한 판타지나 음식점 간판 광고에서 보이는 요란한 원색 음식물들은 현란함, 중독성, 일회성 등을 지닌 일종의 시각적 폭력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이 사회의 중요한 에너지원으로서 직시할 수밖에 없음을 술렁술렁 이야기한다.

여성으로서 느끼는 일상의 폭력성을 50대 답지않은 재치와 감각으로 풀어놓는 작가적 상상력은 일상 사물에서 여성성의 미학을 길어올린 프랑스 작가 루이스 부르조아의 곰삭은 미학을 떠올리게도 한다. “80년대 유학 뒤부터 우리 시각문화의 폭력성을 고민해왔다”는 작가는 “전시가 자기 내면을 배설하는 것이라면 이번 전시는 정말 제대로 대변을 배설한 것 같다”고 호쾌하게 웃었다.

그의 전시를 본뒤 바로 맞닥뜨리는 정정엽씨의 1층 전시 ‘지워지다’는 여성주의적 시각을 빨간 핏빛의 드로잉을 통해 직설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대비된다. 정씨는 전시장벽에 핏빛으로 얼굴이나 윤곽 세부를 세필한 박쥐 등의 약한 동물들과 여성들의 상을 채웠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멸종당하거나 핍박당하고 있는 소수자들에 대한 가치를 진지하게 뜯어보는 그의 빨간 빛 세계는 아낙네의 수다같은 이씨의 전시와는 다른 맵싸한 맛을 안겨준다. (02)760-4726.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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