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비엔날레 참관기
부산 금정산 자락에서 동래를 거쳐 수영강으로 합류하는 온천천은 ‘부산의 청계천’으로 불린다. 80년대 이래 전철 다릿발과 콘크리트 옹벽이 들어서면서 최근 낙서예술 메카가 됐던 이 시냇가가 요즘엔 ‘현대미술 별천지’로 변했다.
온천천 변의 콘크리트 옹벽과 산책로엔 갖가지 현대 조형물과 설치작업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놓였다. 비디오영상과 풍선이 산책길과 천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부산 작가그룹 뉴폼의 대형글자 조형물 ‘BUSAN’(아래)을 필두로, 칠판과 간이의자를 놓은 일본건축가그룹의 이동식 교실, 다릿발에는 중국 작가가 비추는 번잡한 도시의 비디오 영상이 물결친다. 프랑스 건축가는 간이객석 놓인 미니 권투 경기장을, 네덜란드 아줌마 작가는 주민과 낙서예술가들의 말판 마당을 만들겠다며 이동식 커피 매점을 차렸다. 온천천 풍경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선에 집어넣어주는 별난 영화관도 있다. 산보나온 주민들은 뜻밖의 미술난장에 벙벙한듯 하면서도 내심 즐거워했다.
지하철 장전동역~부산동역 구간의 온천천 안팎에서 펼쳐진 이 공공미술 작전은 16일 개막한 국제미술잔치 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전시감독 박만우)의 야심작 ‘온천천 프로젝트’다. 다섯 카페로 구성된 현대미술전 프로젝트의 셋째 카페 마당인 이 프로젝트는 3살 된 이 비엔날레가 낳은 가장 값진 열매다. 청계천 복원 때도 하지못했던 낙서(그래피티) 등의 하위문화와 전위적인 설치, 미디어, 벽화작업들은 이 헐렁한 개천 공간과 죽이 잘 맞았다. 천 위에 칠판, 책상, 침대 등의 잡동사니 배를 올려놓고 지루박 음악과 춤 영상을 틀어준 작가 김월식씨의 작업도 그렇다. 김씨는 “흐르는 개천과 주위의 삶이 도시적 역동성을 표현하기에 딱 좋다”고 했다. 물 냄새가 향기롭지는 못하지만, 도시적 상상력과 기획력이 잘 맞물린다면 국제적인 미술 명소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이 나왔다.
‘어디서나’라는 주제로 생활과 일상에 가까운 현대미술을 내건 부산비엔날레의 기획자들은 전체주제보다는 그 일부분인 공공미술의 모델찾기에 쏠려간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호평 받은 온천천과 달리 기획자 류병학씨가 ‘퍼블릭퍼니처’, 생활 미술을 내걸며 꾸린 바다미술제는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전시물 널린 해운대 변 도로 1km를 파랑, 노랑, 흰색으로 바꾸려던 출품작가 김택상씨의 파격적인 대형 프로젝트가 화근이었다. 포장재료인 아스콘 깔 예산이 없다는 조직위의 뜻에 따라 도로에 값이 싼 페인트 칠을 했다가 폭우에 연쇄 차량 추돌사고가 일어나면서 개막 직전 프로젝트는 취소됐다. 해운대 백사장 등에 한젬마씨의 가설무대 〈삶은 방송중〉(맨위)과 일본작가의 콘크리트 전망대 등 20여점의 이색 설치물을 배치한 기획자의 노력은 빛이 바랬다. 류 감독은 생활 공예 디자인 작품(리빙퍼니처)들을 전시한 해운대 동백섬 파빌리온(전시관) 건설 때도 터 주기를 주저하는 해운대 구청쪽과 실랑이를 벌인 바 있다. 그는 결국 개막 코 앞에서 전시 핵심 컨셉이 대부분 망가지는 상처를 안고 부산을 뜨게 됐다(그는 개막식에 불참했다).
비엔날레 핵심인 시립미술관의 현대미술전 본전시(카페1, 2) 딸림주제는 ‘두도시 이야기:부산-서울/서울-부산’이었다. 하지만, 공공미술의 구호에 이 인문적 화두는 사실상 묻혔다. 일본 도쿄 쓰기치 수산시장의 활력을 담은 앨런 세큘러의 다큐 영상과 썰렁한 각목·조명 설치물을 내놓은 요절 작가 박이소의 오마주로 시작된 카페 1은 비엔날레 스타일에 맞는 암실의 스펙타클한 영상과 엽기, 몽환 모드의 작품들 모음으로 차려졌다. 일본 요도가와 그룹이 낙동강변 폐기물로 쌓은 물고기 조형물〈낙동강 도미〉나 2, 3층을 관통한 호노레 도의 맥주병 설치, 영상 작업과 유치한 듯한 남녀 알몸 조형물 설치로 인간존재의 불확실성을 드러낸 나다브 바이스만의 작업 등은 세계화 미술의 혼돈과 고민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전시들이 대부분 정말 ‘두 도시의 이야기’일까.
의문은 수영 요트경기장 창고공간에 설치된 젊은 국내외 기획자 9명의 공동전인 카페 2의 공간에서도 비슷하게 제기되었다. 언어, 노동, 생산 등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감성이 빚어내는 충돌과 충동, 혼돈의 현장미술은 덩어리째 에너지를 드러냈으나 전시는 방향을 종잡지 못하고 ‘마구’ 흘러갔다. 중국 전구 공장 노동자들의 꿈과 이상을 독특한 작업공정 재현으로 드러낸 차오페이의 설치물, 신문지 형식에 전혀 다른 시적 맥락으로 변용시킨 기사 제목만을 채운 최승훈+박선민씨의 매체작업 등의 신선한 눈맛이 위안이 되었다.
20세기 중반 비엔날레가 국제 미술판의 중요한 권력으로 정착한 이래 이슈가 있는 미술 축제는 양보할 수 없는 비엔날레의 본령이었다. 아직 걸음마인 부산 비엔날레는 올해 전시주제 대신 공공미술의 명암 엇갈리는 해프닝들을 통해 거꾸로 역이슈를 제시하면서 존립 근거를 겨우 찾았다. 개막 직후 호노레도의 설치물 전시장 벽이 창틈의 강풍에 무너진 어이 없는 불상사는 단지 우연이었을까. 미술 평론가 성완경씨는 “행사의 핵심인 도시간 정체성에 대한 성실한 성찰과 분석을 깔지 않은 채 서둘러 포장만 두른 전시”라고 평했다. (051)888-6691.
부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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