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의 1980년작 <마케팅Ⅰ:지옥도>(사진 위). 감로탱 불화의 지옥도에 코카콜라 등의 다국적 기업 이미지, 그가 참여한 ‘현실과 발언’의 동료 동인들, 자신의 모습 등을 패러디해 넣은 파격적 풍자그림이다. 왼쪽 위 도판은 광목에 그린 오윤의 74년작 <자화상>이다.
요절 직전 만개한 민중판화·대학시절 습작들·팝아트까지
참여미술가 넘어 ‘전통 각질 벗겨낸 현대미술가’ 자리매김
참여미술가 넘어 ‘전통 각질 벗겨낸 현대미술가’ 자리매김
20주기 회고전 ‘낮도깨비 신명마당’
여기 두 눈 부릅뜨고 미술의 험로를 기어 올라오는 한 사나이가 있다. 검게 그을린 채 광대뼈 튀어나온 얼굴, 죽 찢어진 그의 두 눈은 오직 위쪽만 응시한다. 80년대 민중 판화연작들로 유명한 참여작가 오윤(1946~1986)은 타계할 때까지도 이런 수채 자화상을 그려내면서 혼기운을 놓지 않았다. 그 기와 혼은 숱한 그의 걸작 판화들을 타고 거슬러 가다가 맹수마냥 관객을 노려보는 60년대 중반 청년 시절의 날카롭고 창백한 청색 자화상 앞에서 다시 굽이를 친다.
지난 22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막한 오윤의 20주기 회고전 ‘오윤:낮도깨비 신명마당’(11월5일까지)의 풍경은 새삼스럽고 얼얼하며, 느껍다. 60~70년대 대학시절의 초창기 습작들과 틈틈이 그린 수채화, 스케치, 조각, 탈들이 80년대의 민중판화들과 나란히 등장하면서 전통과 현실, 과거-현재의 소통으로 일관했던 작가적 이상과 고민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전시는 그래서 민중미술가란 상투성 너머 전통미술의 각질을 벗겨낸 현대미술가로서 그를 자리매김하려는 의미를 띤다.
기획자는 80~86년 집중적으로 쏟아진 <노동의 새벽> <세상사람들> 등의 판화와 일부 유화들 중심으로 전시장을 짜되, 전시장 앞 뒷 머리를 서구와 우리 전통 미술과 교감했던 흔적인 대학시절 작품, 습작 소묘 드로잉과 조형물, 작품론 노트 등으로 채워넣었다. 또 전시영역을 ‘현실과 발언’‘낮도깨비 신명마당’‘소묘’ 등 특정한 표현 주제로 각기 갈래를 지어 보편적 미학으로 오윤의 작업세계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아이를 지키는 어머니를 그린 <대지>연작, 노동자의 헛헛한 뒷모습을 새긴 <노동의 새벽> 등에서 실감하듯 오윤의 판화가 80년대 미술의 상징이 된 것은 그가 당대의 삶과 인물의 전형화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동시대 노동자와 서민들의 곤한 삶을 컬컬한 흑백 선묘의 얼굴과 땅땅한 인체구도로 포착하고, <칼노래> <북춤> <앵적가>등의 전통춤 몸놀림의 신명과 배경 칼선의 오밀조밀한 리듬감 등은 민중미술의 중요한 모티브로서 후대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요절 5년전부터 활짝 피어난 이 전형을 만들기 위해 공들였던 이전의 작가 편력은 멕시코벽화나 레제, 피카소, 세잔 등의 영향을 받은 대학시절 해골, 군상들 그림을 통해 드러난다. 69년 시인 김지하 등과 함께 기획한 ‘현실미술’ 동인전 선언 발표 당시 그린 군상 그림들이나 민화의 호랑이, 해학적인 전통인물상 등이 그것인데, 동서양 미술을 섭렵하며 참여미술의 여명을 치밀하게 준비해온 과정을 일러준다. 뿐만 아니라 80년대 초반 가전제품, 패션, 속옷, 인스턴트 먹거리 등의 대중 문화를 소재로 작업한 판화+회화 얼개의 <마케팅>연작들은 감로탱 불화, 콜라주, 키치 모자이크 등이 뒤얽힌 파격적 작업이란 측면에서 고인의 관심이 전통은 물론 서구의 모더니즘, 팝아트에도 촉수가 닿았음을 알려준다. 해골 병사와 사지 잘린 군상이 우리 현대사를 상징하는 <원귀도>, 머리 위로 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도깨비> <칼노래> 등 말년으로 가면서 그는 미술사가 조인수씨가 말한 대로 ‘신명과 주술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가까이 다가간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사후 20년 지나도록 변변한 작가론 하나 없었던 상황에서 습작기부터 타계 때까지 관련 사료와 전문가 4명의 작가론, 연대기를 간추린 400여쪽 짜리 장문의 도록이 발간된 것도 다행스런 일이다. 한편 미술관에서는 10월19일 오윤의 작품세계를 살피는 학술토론회를 열며, 가나아트센터도 연말께 그의 사후판화전을 준비중이다. (02)2188-6065, www.moca.go.kr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