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너에게 ‘힘내라’는 말 대신…

등록 2006-10-01 21:32수정 2006-10-01 21:39

우울하고 몽환적 정서
개성 강한 록과 버무려
“힘들 때 그냥 옆에 있어주는
그런 위안 됐으면”
5집음반 ‘힐링 프로세스’ 낸 넬

1999년 7월 31일, 서울 송파구에 살던 네 명의 고등학생은 인천 송도의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을 찾아왔다가 비를 쫄딱 맞았다. 비를 피해 들어간 피시방에서 그들은 자신의 록 밴드를 위한 이름을 짓는답시고 머리를 맞댔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넬’. 넷 가운데 한 명이 본 영화의 이름이었다.

배우 조디 포스터가 연기한 여주인공 넬은 문명으로부터 떨어진 채 아무도 못 알아듣는, 혼자만의 언어를 쓰는 처녀. 자신들만의 순결한 음악 언어를 가지고 싶던 네 명의 로커 지망생은 모두 새 이름에 흡족했다.

그 이후 7년 동안 이들은 자신들의 소리를 찾아 홍대 주변을 서성거렸다. 이들은 서태지가 인정한 밴드로 주목을 받았고, 이들의 음울한 선율과 가사는 귀 밝은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덕택에 ‘한국의 라디오 헤드’라는 별명도 얻었고, 개성적인 사운드에 목마른 20대를 중심으로 서서히 골수팬도 거느리기 시작했다. 올해 열린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는 이제 구경꾼이 아닌, 공연자로서 참가했다.

그리고 80년생 동갑내기 그룹 넬이 어느새 5집 음반 〈힐링 프로세스〉를 내놓았다. 시디 두장에 촘촘히 담긴 18곡의 노래에서 몽환적인 듯, 우울한 이들의 정서는 이전 네 음반과 다르지 않다. 음악은 일렉트릭 비트를 양념 치듯이 첨가했고, 일반 팝의 미끈한 냄새도 언뜻 풍긴다. 물론 한국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개성적인 록 사운드 중 하나다. 보컬인 김종완의 가는 목소리는 여전히 슬프고, 때로는 흐느끼는 듯하다.

“우리 노래는 소외와 소멸에 관한 얘기예요. 우리는 여럿이 함께 있어도 각자는 그 속에서 계속 소외된다는 느낌을 가져요. 그 속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작은 꿈들도 소멸하고 없어지는 것 같구요.”(김종완, 보컬)

20대 중반, 이들이 만든 노랫말은 비관적이다 못해 자포자기에 가깝다. “무게와 절망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과연 내가 견딜 수 있을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카운팅 펄스’), “그만 포기할게/ 이제 그만둘래/ 그냥 현실 앞에 무릎 꿇고 살아갈래”(‘무비’)


두 번째 시디의 여섯 번째 노래 ‘51분전’은 김종완이 어느날 “어쩌면 51분 후에 죽어버릴 것 같아서” 쓴 위험한 노랫말이다. “자살과 자유는 고작 한 글자 차이/ 사라져버린대도 이상할 게 없어.”

이미 앞선 음반에서 극단적인 노랫말 때문에 ‘기생충’과 ‘시작의 끝’이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던 이들은 이번에도 ‘안녕히 가세요’가 같은 처분을 받았다. 이 노래는 “나를 집어삼킨 이 고통을 끝내고 싶어”서 결국 “손목이라도 긋든, 목을 매달든 뭐라도 해” 보라고 말을 건다. 넬 특유의 자학과 비관적인 치기가 어우러졌다.

“우울한 음악을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 그런 음악을 일부러 하자고 해서 만들면 정말 살기 싫을 것 같아요. 단지 좋은 음악을 하고 싶은데, 좋은 음악을 하려면 나를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데, 드러내고 보니 음울한 음악이 나올 뿐이에요. 언젠가는 즐거운 음악이 나올 수도 있겠죠.”(이재경, 기타)

“저는 노래를 통해 평상시에 입 밖에 내지 않는 얘기들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노래를 통해서 위안을 받아요. 우리가 정말 힘들 때는 ‘힘내’라는 다른 사람의 말은 안 들리잖아요. 정말 위로가 되는 건, 같이 힘든 누군가가 옆에 있을 때죠. 우리 음반이 그런 위안이 되었으면 해요. 그래서 이름도 〈힐링 프로세스〉라고 지었구요.”(김종완)

일러스트 작가 ‘아이완’이 참여한 음반 디자인도 이들의 음반을 빛나게 하는 요소. 시디 케이스의 표지와 별도의 소책자에 담긴 흑백의 그림들은 넬의 개성과 묘하게 일치한다.

두 번째 시디의 마지막에 ‘숨겨진’ 노래를 듣는 것도 재미다. 시디 표지에는 적혀 있지 않는 이 노래의 제목은 ‘1분만 닥쳐줄래’란다. “1분만 닥쳐 줄래요/ 말 정말 많군요”라고 시작하는 이 노래는 음울함 일색인 이 음반에서 가장 튀는 작품. 경쾌한 팝의 리듬에 실리는, 이 노래의 공격적인 가사를 듣고 나면 이 얌전한 밴드의 다음 행보에 궁금함이 더해진다.

글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넬’ 멤버들이 말하는 ‘나의 노래’

이들의 음반은 발매 지난주에 음반 판매 통계 회사인 ‘한터’ 집계 1위에 올라서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여기에는 소속사의 적극적인 홍보도 한몫했다. 물론, 이들의 강렬한 노래와 선율이 흥행의 가장 큰 이유다. 그룹의 성원들로부터 음반 속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정재원 (드럼)

‘어떻게 생각해’ - 청자의 입장에서 시디를 들어보니까, 이 노래에서 보컬의 목소리가 가장 매력적으로 살았다.

이정훈 (베이스)

‘미닝리스’ - 조곤조곤하게 가다가 뒤에서 강하게 터트리는 것이 느낌이 좋다.

이재경 (기타)

‘안녕히 계세요’ - 이 노래의 기타 선율을 만들면서 정말로 행복했다.

김종완 (보컬)

‘현실의 현실’ - 가사가 가장 와 닿는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