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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80년대 스타 예비한 ‘편집음반’의 전범

등록 2006-10-15 23:08

〈우리 노래 전시회 I〉 시디 재발매본. 80년대 새로운 감수성을 소개하는 창구이자, 특히 들국화의 주류 돌파를 예비하게 된 ‘옴니버스 음반’의 대명사다.
〈우리 노래 전시회 I〉 시디 재발매본. 80년대 새로운 감수성을 소개하는 창구이자, 특히 들국화의 주류 돌파를 예비하게 된 ‘옴니버스 음반’의 대명사다.
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 (70) 혼자 혹은 함께 노래하다: ‘우리 노래 전시회’와 ‘따로 또 같이’
편집 음반(컴필레이션 음반)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여러 가수의 음원을 특정 주제로 묶은 ‘모둠’ 음반, 뮤지션의 대표곡들을 선집한 베스트 음반, 그리고 기존곡들을 재해석해 모은 리메이크 음반 등. 이때 호명되는 음원이란 대개 신품(新品)이 아닌, 구품(舊品)의 재활용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한때 불황의 음악시장에 번졌던, 스타 사진을 앞세우고 물량으로 밀어붙인 편집 음반 신드롬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지만 전범이 될 법한 편집 음반들도 우리의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70년대 대표작으로는 오리엔트 프로덕션에서 14집까지 발매된 컴필레이션 시리즈 〈골든 포크 앨범〉이 있다. 그리고 1980년대에서는 이른바 ‘옴니버스 음반’의 대명사로는 〈우리 노래 전시회〉 연작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시리즈는 ‘새로운 감수성’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로 1984년부터 1991년까지 넉 장이 발표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연작은 (특히 〈우리 노래 전시회 I〉은) 작곡과 프로듀싱을 한 최성원의 진두지휘 아래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라는 이름으로 불린 신진세력을 결집시키고, 동시에 이후 전개될 ‘폭발’을 예비하게 된다.

첫 〈전시회〉만 주목해 보자. 여기서 한 곡씩 선보인 8인 중 대다수는 나중에 (그룹으로든 솔로로든) 정규 앨범을 성공적으로 발표하게 된다. 그래서 이 음반은 마치 싱글 음반 모음집 같다. 가령 이 음반 발표 사후에 잔잔한 파장의 주역이 된 ‘어떤 날’, ‘시인과 촌장’의 맹아가 ‘너무 아쉬워하지 마’, ‘비둘기에게’라는 트랙을 통해 선재(先在)한다. 이 곡들은, 훗날 버전의 세련미와는 거리가 있지만 풋풋하고 소박한 풍미가 맛깔스럽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지겨운 이야기겠지만 무엇보다 들국화의 ‘산파’가 된 음반이기도 하다. 후일 들국화의 히트곡들이 먼저 ‘전시’되었으니 두 버전들을 비교해 들어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전인권)의 질박한 폭발, ‘매일 그대와’(강인원)의 청아한 서정,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이광조)의 다층적인 화성, ‘제발’(최성원)의 담담한 색채 등.

〈우리 노래 전시회 I〉의 단짝 음반도 있는데 바로 ‘따로 또 같이’의 작품, 그중에서도 2집(1984)이 그것이다. 우리 노래 전시회의 수장 최성원은 ‘따로 또 같이’ 2집에 세션 연주로, 전인권은 1집에 보컬로 참여했다. 역으로 ‘따로 또 같이’ 멤버도 우리 노래 전시회 시리즈에 참가했다. 조원익(베이스), 허성욱 및 김광민(피아노), 안기승(드럼) 등 세션의 면모조차 공통적이다. 공교롭게 여성 보컬도 한 트랙씩만 차지했다. 하지만 팀 이름 때문일까. ‘따로 또 같이’는 1집 이후 해체되었지만 몇 년 뒤 이주원, 강인원, 나동민은 다시 만나 2집을 발표했다. 이후 나동민과 이주원의 듀오가 된다.

‘따로 또 같이’ 2집에는 세련된 감각의 작곡과 사운드가 잔잔한 파장을 기록한다. 소년적 감수성의 강인원(‘첫사랑’ 등), 다소 어두운 색채의 이주원(‘하우가’ ‘별조차 잠든 하늘엔’ 등), 나긋나긋하게 읊조리는 나동민(‘조용히 들어요’)의 3인 3색의 메인메뉴에, 객원 보컬 우순실(‘커텐을 젖히면’)의 훌륭한 사이드메뉴까지…. 세션 연주자가 주도하는 1집과 달리, 멤버들의 장악력이 확대된 2집에서는 정갈하고 세련된 사운드로 갈무리되고 있다. 섬세하고도 영롱한 어쿠스틱 기타가 골간을 이루지만 곳곳에서 양념처럼 이영재의 일렉트릭 기타가 뻗어나간다.

그런데 ‘따로 또 같이’라는 이름은 일개 그룹명의 차원을 뛰어넘어, 1970년대 말 이후 언더그라운드라는 판이 모색해낸 (동시에, 보헤미안 특유의 ‘게으름’에 의해 자연스럽게 태동한) 하나의 대안적 방식이 아닐까. 이 두 음반은, 도처에 산개하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흐름을 수렴시키고, 또 이를 들국화의 돌파로 응축시킨 나들목 구실을 했다. 이런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흐름은 대개 ‘동아기획 사단’이라는 이름으로 요약되곤 한다. 이 기수(旗手)들의 이야기는 뒤에서 몇 차례 이어질 것이다.

최지선/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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