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불심으로 짠 미세화 웬만한 눈힘으론 실땀도 안보여
머리카락실로 수놓은 미륵불 등 랴오닝박물관·개인 희귀품 초청
머리카락실로 수놓은 미륵불 등 랴오닝박물관·개인 희귀품 초청
수덕사 근역성보관 31일까지…조선·거란·중국 불교 자수공예 명품전 관객들 탄성
“붓그림, 붓글씨가 아니라고요?”, “돋보기 없어요?”
진열장 속 옛 불화와 산수화를 본 관객들마다 눈이 회동그래진다. 가는 붓으로 꼭꼭 누르거나 조심스레 쳐나갔을 법한 강촌 풍경이나 보살· 선사상, 행서·해서체 한자 글씨의 가는 윤곽선들이 실로 한땀한땀 짠 것이라니. 웬만한 눈힘으로는 실땀 자국조차 보이지 않는다. 1㎠의 직물 위에 무려 30올 넘는 실을 채워넣어 사람, 동물의 눈과 혀, 피부 등을 묘사하고, 미세한 색조의 농담, 대기감까지 풀어냈다. 색실로 무늬 엮은 자수공예라지만 이 정도면 고급한 채색화의 경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법하다.
충남 예산군 덕숭산 기슭에 있는 1400년 고찰 수덕사의 근역성보관(관장 정암 스님)에 가면 이땅과 중국의 옛 직물 자수에 펼쳐진 ‘마이크로 예술’의 무한한 별세계를 엿보게 된다. 31일까지 열리는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직(織)·염(染)·수(繡), 그리고 불교’전은 값진 체험을 선사한다.
전시 제목이 지극한 마음을 다해 부처에게 돌아간다는 불교의 주문 구절을 따왔음을 이해하면 전시얼개를 섭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러 방식으로 짠 직물 천 위에 다양한 문양 등을 수놓거나 염색하는 행위 자체를 통해 현세의 지복을 빌고, 지극한 신앙심을 표현한 옛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전하는 불화, 경전 등은 대개 직물에 그냥 채색하거나 한지에 쓴 것들이 대부분이고 이렇게 수를 놓아 짠 것들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도 유물들은 값지다.
지하공간 전시실 들머리에서 처음 만나는 조선시대의 정교한 용무늬 탁의와 거란의 요나라 시대 짠 쌍어문 실크자수부터 감상은 예사롭지 않다. 비좁은 전시실이지만, 청나라 황금빛 태피스트리로 장식된 고승 가사나 황실옷, 금실로 짜여진 연화수보살상, 원대의 자수 불경, 자수로 옮긴 송대 문인 미불의 글씨와 인장, 〈금강경〉 5천자를 온전히 옮긴 원대 불경 자수, 수백 부처들이 옷에 가득 정교한 금실과 색실로 수놓아진 25조 천불가사(맨위) 등을 보면 눈배가 한참 부르다. 특히 중국 국보인 랴오닝(요령)성 박물관 소장의 명대 미륵불(포대화상) 자수그림(아래 왼쪽)은 머리카락보다 ‘가는 실과 잔 털같은 바늘로 지었다는’ 최고 명품으로 정밀한 인물화 이상이다. 눈썹과 눈 가장자리를 머리카락실 ‘발수’로 표현한 이 놀라운 자수화에는 당대 최고 문인인 동기창의 찬사글도 붙어 있다. 보물 지정된 국내 유일의 자수 유물로 인형 같은 부처와 아담한 불경 등이 줄줄이 수놓아진 ‘자수 25조 삼보명 가사’도 눈에 와닿는 유물이다. 옛 자수는 직금, 직수 등의 용어로 흔히 부르는데, 유물들 세부에는 경금, 위금, 별결금, 태피스트리인 혁사, 직금 등의 갖가지 기법이 베풀어져 있다. 정연한 간격을 유지하며 짜는 평수, 실고리들이 연결되는 선면을 만드는 사슬수, 한땀한땀 수를 부채꼴로 연속해 표현하는 솔잎수, 고리수, 징금수 등의 세부기법과 ‘협힐, 첩융채화’ 등으로 불리는 염직기법 등을 유물들은 대부분 망라한다. 전시벽에 붙은 자수기법에 대한 패널을 참고하면 감상에 도움이 된다. 출품 유물들은 대부분 자수 컬렉션의 최대 보고인 중국 선양 랴오닝성 박물관과 홍콩의 개인 수장가 크리스의 컬렉션으로 짜여졌다. 이들을 설득해 산사 전시를 실현시킨 박물관 쪽 노력은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다. 전시장 관람 외에 얻는 것이 또 있다. 1950~60년대 거장화가 고암 이응로의 작업실로 널리 알려졌으나 폐가로 전락해 허물어지고 있는 절 일주문 들머리 수덕여관의 몰골을 눈 크게 뜨고 지켜보는 일이다. (041)337-2902. 수덕사/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수덕사 근역성보관 제공
지하공간 전시실 들머리에서 처음 만나는 조선시대의 정교한 용무늬 탁의와 거란의 요나라 시대 짠 쌍어문 실크자수부터 감상은 예사롭지 않다. 비좁은 전시실이지만, 청나라 황금빛 태피스트리로 장식된 고승 가사나 황실옷, 금실로 짜여진 연화수보살상, 원대의 자수 불경, 자수로 옮긴 송대 문인 미불의 글씨와 인장, 〈금강경〉 5천자를 온전히 옮긴 원대 불경 자수, 수백 부처들이 옷에 가득 정교한 금실과 색실로 수놓아진 25조 천불가사(맨위) 등을 보면 눈배가 한참 부르다. 특히 중국 국보인 랴오닝(요령)성 박물관 소장의 명대 미륵불(포대화상) 자수그림(아래 왼쪽)은 머리카락보다 ‘가는 실과 잔 털같은 바늘로 지었다는’ 최고 명품으로 정밀한 인물화 이상이다. 눈썹과 눈 가장자리를 머리카락실 ‘발수’로 표현한 이 놀라운 자수화에는 당대 최고 문인인 동기창의 찬사글도 붙어 있다. 보물 지정된 국내 유일의 자수 유물로 인형 같은 부처와 아담한 불경 등이 줄줄이 수놓아진 ‘자수 25조 삼보명 가사’도 눈에 와닿는 유물이다. 옛 자수는 직금, 직수 등의 용어로 흔히 부르는데, 유물들 세부에는 경금, 위금, 별결금, 태피스트리인 혁사, 직금 등의 갖가지 기법이 베풀어져 있다. 정연한 간격을 유지하며 짜는 평수, 실고리들이 연결되는 선면을 만드는 사슬수, 한땀한땀 수를 부채꼴로 연속해 표현하는 솔잎수, 고리수, 징금수 등의 세부기법과 ‘협힐, 첩융채화’ 등으로 불리는 염직기법 등을 유물들은 대부분 망라한다. 전시벽에 붙은 자수기법에 대한 패널을 참고하면 감상에 도움이 된다. 출품 유물들은 대부분 자수 컬렉션의 최대 보고인 중국 선양 랴오닝성 박물관과 홍콩의 개인 수장가 크리스의 컬렉션으로 짜여졌다. 이들을 설득해 산사 전시를 실현시킨 박물관 쪽 노력은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다. 전시장 관람 외에 얻는 것이 또 있다. 1950~60년대 거장화가 고암 이응로의 작업실로 널리 알려졌으나 폐가로 전락해 허물어지고 있는 절 일주문 들머리 수덕여관의 몰골을 눈 크게 뜨고 지켜보는 일이다. (041)337-2902. 수덕사/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수덕사 근역성보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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