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서울대 음악대학 교수
△(사)서울바로크합주단 음악감독
평양 ‘윤이상음악회’를 가다
윤이상 선생은 올리비에 메시앙, 칼 하인츠 슈톡하우젠, 피에르 불레즈와 함께 20세기 후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독일 유학 도중 1970년부터 윤이상 선생으로부터 작품연주 지도를 받았던 필자는,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25회 윤이상 음악회’에 참가하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윤이상음악회(남쪽 표현으로 하면, 윤이상음악제가 적당할 것이다)를 이끈 북쪽의 윤이상관현악단은 84년 12월5일에 설립된 윤이상음악연구소의 산하단체로서 90년에 창단됐다. 현재 약 60명의 단원과 지휘자 강룡웅씨가 관현악단을 맡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2000회가 넘는 국내외 공연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현악단은 윤이상 선생의 곡에 대한 뛰어난 해석력과 연주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름이 높다. 특히 2004년 5월, 독일의 5대 도시 순회연주회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국제무대에도 잘 알려져 있다.
18일 윤이상음악장에서 열린 첫날 연주회에서는 윤이상 선생의 작품이 두 곡 연주됐다.
먼저 〈융단〉은 윤 선생이 87년 작곡한 곡이다. 순수하게 현악기만으로 연주하게 작곡돼 널리 연주되고 있다. 윤이상관현악단은 이번 연주곡목 해설에서 “제목대로 마치 날실과 씨실을 솜씨 있게 엮어가듯 4성부로 나누어진 현악기들의 음향으로 마치 한 폭의 화려한 동양의 음향 ‘융단’을 펼쳐 보인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반면, 우리는 이 곡의 의미를 “동양과 서양의 음악을 효과적으로 융합한 인상적인 모습으로 청자에게 다가선다”라고 해설하고 있다. 실제 이 작품은 남과 북의 해설에 모두 공감이 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윤이상관현악단의 연주는 현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에 투명한 색채가 곁들여져 도입부부터 인상적이었다. 연주자들의 연습이 잘 돼 있었고, 각 파트의 정돈된 기량이 일사불란하게 어울려 연주력을 돋보이게 했다. 다만, 연주 편성에서 더블베이스가 3명이었으면(연주 날 2명이었음) 좀더 전체적인 음향이 풍부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또한 전체적인 오케스트라의 소리는 약간 어둡게 들렸다.
20일 저녁 ‘제25회 윤이상음악회’ 공연이 윤 선생이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을 연주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자, 관람객들이 연주자들에게 꽃다발을 증정하고 있다.
〈융단〉 다음에는 헝가리 작곡가 벨러 버르토크의 〈현을 위한 디베르티멘토〉가 연주됐다. 윤이상 선생의 숙명적 삶이 유럽의 파시즘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버르토크와 유사했다는 점에서 선곡이 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이날 마지막 곡으로, 84년 쓰여진 윤이상 선생의 〈교향곡 제2번〉이 연주됐다. 이 곡은 2관편성의 관현악곡으로,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 중 내면의 흐름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 하겠다. 각 목관과 금관의 솔로 부분의 자신감 있는 과감한 연주가 아쉬웠지만, 연주자들의 자세에 감동을 받기에 충분했다.
셋째 날인 20일에는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 〈운명〉과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이 연주됐다. 특히 윤이상 선생의 후기 작품에 속하는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은 인간미와 따듯한 감정이 요구되는 곡으로,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철룡씨는 흔들림 없는 왼손과 오른손의 정확한 테크닉으로 불필요한 과장 없이 예리한 연주를 선보였다. 김철룡 악장의 탁월한 재능과 탄탄한 연주력은 이번 윤이상음악제에 큰 관심을 갖게 한 부분이었다. 반면 느린 부분에서 바이올린 특유의 사람 목소리에 가까운 톤의 구사를 좀더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그가 좀더 도약하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의 윤이상음악연구소는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작품 연주, 전문적인 연구지 발간, 음악토론회, 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의 전통악보 발굴 정리 등 폭넓은 연구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특히 윤이상 선생의 곡을 충실히 해석하고 정리하는 데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남북의 적극적인 음악교류는 남쪽 연주단체들에도 윤이상 선생의 음악세계를 좀더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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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음악회
올해로 25회째. 18일부터 사흘 동안 평양 중구역 윤이상음악연구소에서 열렸다.
남쪽에서는 박재규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 등 20여명의 참관단이 공연을 관람했다.
북쪽에서는 강능수 문화상, 최창일 문화성 부상, 주진구 북쪽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 등이 참석했으며, 마지막날(20일) 공연에는 김병훈 북한 문예총중앙위원장 등이 공연을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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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봄 서울공연 하시겠소?” 남한쪽 제안
1990년 설립돼 윤이상 선생의 곡을 전속 공연해온 북쪽 ‘윤이상음악연구소 관현악단’의 남쪽 공연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박재규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경남대 총장)은 20일 저녁 평양에서 열린 ‘제25차 윤이상음악회’ 폐막공연을 마치고 고려호텔에서 열린 환송 만찬에서 “내년 따뜻한 봄에 윤이상 관현악단이 서울에 오면 얼마나 좋겠냐”며 “북쪽 당국자들의 협조를 요청한다”고 제안했다. 박 이사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언제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구체적으로) 밝히면 검토해서 답을 주겠다’는 북쪽의 언급이 있었다”고 전했다.
장용철 재단 사무처장은 “핵실험 이후 얼어붙은 남북관계 속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대표단’ 형식의 민간교류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연주회는 애초 정명훈씨 등 남쪽 연주자들과 합연으로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핵실험 여파 등으로 남쪽 연주자들의 참석이 막판에 불발로 그쳤다.
평양/이용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