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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다른 느낌처럼 그리고 처음 느낌처럼

등록 2006-10-22 20:10수정 2006-10-22 21:41

삶에 대한 성찰 담고 새로운 음색 욕심도 부리고
탱고·보사노바 장르 포섭했지만 여전한 ‘신승훈식 발라드’
신승훈 10집 ‘더 로맨티시스트’

발라드는 범장르적으로 통용되는 ‘한국적’ 카테고리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애절한 노래’라는 점에서 대중음악의 영원한 화두이고, 다소 보수적이고 전통적이라는 면에서 확고부동한 영토다. 트로트의 신파적인 최루성 눈물과도, 댄스의 현란한 이미지와도 선을 그은, 발라드의 새로운 기수는 1980년대 후반 이문세와 변진섭이겠지만, 그 공식을 좀더 세련되게 조련한 가수는 1990년대를 열며 등장한 신승훈이 아닐까. 혀를 말며 길어올리는 발성과 맑은 음색의 바이브레이션, 절제된 애수의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음악은 물론, 단정한 분위기에 밝은 미소의 귀공자 이미지까지 명실공히 ‘발라드의 황제’였다.

1990년 1집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시작으로, 2집 〈보이지 않는 사랑〉, 3집 〈널 사랑하니까〉, 4집 〈그 후로 오랫동안〉, 5집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등 1990년대 앨범들을 잇따라 100만장 넘게 팔리는 ‘밀리언셀러’로 만들어내면서 서태지, 김건모와 더불어 1990년대의 ‘빅3’로 등극했다. 그뿐인가. 처음부터 직접 자기 노래를 작곡한 송라이터였을 뿐 아니라 (5집 이후)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올리며, 가수 스스로 앨범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앨범 아티스트’라는 칭호를 선사받았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음반시장은 위축되었고 세대는 교체되었다. (절절히 ‘꺾는 목’의 감정 과잉이 지극히 복고적인) 아르앤비가 발라드계에 진입했고, (지금은 주춤한) 조성모와 (올가을, 동시에 마주친) 성시경 등에게 신승훈은 그 지위를 일정 부분 양도할 수밖에 없었다. 와신상담의 증거물로서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동반하기도 했고(8집 ‘애이불비’), 모던 록의 질감을 차용하거나(8집 ‘비상’) 국악기를 도입하기도 했다(9집 ‘애심가 哀心歌’). ‘처음 그 느낌처럼’(3집), ‘내 방식대로의 사랑’(5집) 등에 도입된 하우스 비트는 ‘페이스 오프’(8집)에 이르면 더 빠른 속도로 가속화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신승훈식 발라드계’ 안에서 이루어졌다.

가수 경력 16년, (그의 발표대로라면) 14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그가 2년6개월 만에 야심차게 발표한 10집도 이런 맥락에 있다. 우선 ‘더 로맨티시스트’라는 앨범의 제호는 그에게 아주 적절해 보인다. 그런데 그 범위는, 통상 발라드의 화두인 남녀간의 사랑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첫 곡 ‘드림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는 삶에 대한 성찰과 희망의 전언, 두께와 무게가 느껴지는, ‘신승훈 같지 않은’ 음색을 통해 진지하고도 새로운 목소리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다. 겹겹의 백업 보컬 및 클래핑을 통한 가스펠의 경건한 모드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게 다종의 장르를 포섭하며 애쓴 흔적은, 열정적인 탱고의 ‘송연비가(送緣悲歌: 인연을 보낸 슬픈 노래)’, 산뜻한 보사노바의 ‘그런가요’, 흥겨운 브라스 섹션에 스윙감 넘치는 ‘아이 러브 유 아이 러브 유 아이 러브 유’에서도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곡들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가령 ‘송연비가’는 9집의 ‘애이불비’와 닮았고, 시원경쾌한 브라스 사운드의 노래들은 7집 ‘엄마야’, 8집 ‘올꺼야’의 맥락에 있다. ‘레이디(무궁화꽃이 또 피었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은 아련하고 애수 어린 슬로 템포의, 예의 신승훈의 발라드다.

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밋밋해지면서 그의 옛 노래들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전통적인 정서와 관습적인 사운드가 주조를 이루는 발라드의 속성상, 이 앨범도 새로움과 익숙함, 진보와 복고의 화학작용이 어떻게 발생하느냐가 관건이지만, 관록이 과시될수록 익숙해지고 새로울수록 낯설어지는 방정식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글 최지선/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도로시 뮤직 제공


[신승훈 10집] ‘드림 오브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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