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70~80년대 강요된 건전가요의 대표

등록 2006-10-22 20:18수정 2006-10-22 20:20

‘아! 대한민국’이 듀엣으로 실린 ‘건전가요 컴필레이션’ 〈아! 대한민국〉(지구레코드, 1983).
‘아! 대한민국’이 듀엣으로 실린 ‘건전가요 컴필레이션’ 〈아! 대한민국〉(지구레코드, 1983).
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 (71) 건전가요와 관제가요,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공공의 적’ 비판과 대중인기 한몸에

지난 시대, 가요가 건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 생각의 바탕에는 대중음악이 연예와 유흥의 도구에 불과하며, 국민과 마찬가지로 계도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오만하거나 위험하거나 또는 두 가지 다 해당될 이런 생각은 지난 세기 오랫동안 횡행하며 대중음악계를 짓눌렀다. 음반의 사전심의와 검열, 금지곡 판정 같은 제도적 폭력과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론가 끌려가 고초를 겪는 등의 일상적 폭력이 남긴 흔적은 가요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70~80년대 음반을 구입해 본 사람이라면 엘피나 카세트테이프에 꼭 한 곡씩 생뚱맞게 들어 있던 건전가요를 기억할 것이다. 그 시대에 발매된 가요 음반에는 음반의 주인공이나 분위기와는 무관하게 음반의 에이면이나 비면의 마지막에 어김없이 군가나 창작 건전가요가 삽입되어 감상자를 ‘깨게’ 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코미디 같은 일이지만, 당시엔 전혀 웃기지 않았다. 의무였으니까. ‘조국찬가’ ‘어허야 둥기둥기’ ‘시장에 가면’ 같은 곡들은 당시 음반 끝자락에 ‘(건전가요)’란 꼬리말을 대동한 채 수도 없이 실렸다.

그런데 건전가요의 대표곡으로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박건호 작사, 김재일 작곡)을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장 크게 히트한 건전가요이며, 나아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인기가요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적인 건전가요가 짜증이나 무시의 대상이었던 것과 달리 이 곡은 ‘뜨거운 감자’ 같은 곡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란 가사는 전두환 정권으로선 쌍수 들어 환영할 만한 모범적인 사례였지만, 당시 정권의 폭압과 부도덕함을 온몸으로 느끼던 사람들에겐 현실을 호도하는 프로파간다에 다름아니었다. 그래서 이 곡은 사회정화위원회와 한국방송협회 제정 건전가요로 뽑히며 무서운 기세로 보급된 반면, 반대편에선 대중가요의 부정적 측면을 증명하는 ‘공공의 적’ 같은 비판 사례로 빠지지 않았다.

1983년에 발표된 ‘아! 대한민국’은 통념과 달리 원래 정수라의 솔로 곡이 아니었다. ‘즐거운 우리들의 노래’란 부제를 단 컴필레이션 음반 〈아! 대한민국〉에 정수라와 장재현의 남녀 듀엣곡으로 첫선을 보였던 것이다. 이 음반은 ‘우리의 선진조국’ ‘희망의 거리’ ‘서로 믿는 우리 마음’ 등 곡명만으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듯 건전가요를 망라한 모음집이었다. 물론 ‘아! 대한민국’이 히트한 것은 얼마 뒤 정수라의 독집에 타이틀곡으로 실리면서부터다. ‘아! 대한민국’의 작사가 박건호는 이 곡이 흔히 말하듯 관제가요가 아니며 정권에 아부한 작품도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사회정화위원회의 모 위원으로부터 건전가요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아 가사를 쓰게 된 게 사실이지만, 정권과는 무관하게 나라에 대한 자신의 바람을 진심으로 엮은 것이라는 얘기다. (‘아! 대한민국’에 얽힌 자세한 뒷얘기와 박건호의 입장에 대해서는 그의 저서 〈오선지 밖으로 튀어나온 이야기〉를 참고하라) 우리가 아는, 이와 유사한 사례가 그로부터 10여년 전에도 있었다.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 말이다. 완전히 ‘찍혀’ 어둠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명곡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온 ‘아름다운 강산’과 달리, ‘아! 대한민국’은 너무나 큰 히트를 기록하고 관제가요로 적극 활용된 탓인지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렇다면 ‘아! 대한민국’에 대한 그간의 비판들을 거둬야 할까. 우선은 하나의 곡에 대해 개인적으로 왈가왈부하기보다는, 1980년대라는 시대와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재평가를 좀더 집단적으로 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도 정치와 마찬가지로 ‘생물’처럼 움직이는 것이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점도 전제해야 할 듯하다. 분명한 것은 ‘아! 대한민국’이 매우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이제 차분하고 냉정하게 평가할 때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용우/대중음악 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