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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조선­-서양 명화’ 용산벌 맞대결

등록 2006-10-24 21:36수정 2006-10-24 22:27

‘조선 말기 회화’전에 나온 오원 장승업의 〈영모도대련〉중에서 매를 그린 한 폭의 그림
‘조선 말기 회화’전에 나온 오원 장승업의 〈영모도대련〉중에서 매를 그린 한 폭의 그림
고전의 가치는 미술품에서도 오롯하게 피어난다. 서울 용산벌에 있는 대표적인 공사립 미술관이 한국과 서양의 옛 미술을 화두로 보기드문 기획전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24일 개막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루브르 박물관’ 전(내년 3월18일까지·02-2113-3470)과 앞서 19일 시작한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의 ‘조선말기회화’전(내년 1월28일까지·02-2014-6901)이다. 이 땅에서 시공을 초월한 동서 미술사 엿보기를 꿈꾸었던 이들에게 용산벌을 오가며 감상하는 두 전시회는 발품 아깝지 않은 미술체험이 된다. 전시 구성의 아쉬움도 남지만, 출품작들은 인문학의 꽃인 미술사의 매혹 속으로 보는 이들을 이끌어간다.

삼성 리움 ‘조선 말기 회화전’

‘생각하지 말게. 그냥 눈으로 느끼게나!’

19세기말 조선 화단을 진동시켰던 천재화원 오원 장승업은 그림으로 말한다. 리움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의 ‘조선말기 회화전’전시장 벽에 걸린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고사세동도>. 오동나무를 기어오르는 동자를 쳐다보는 중국 원나라 문인 예찬을 그린 것이나, 관객의 눈은 오동나무 잎의 환상적인 붓바림과 뒤틀리고 꼬인 나무줄기, 예찬이 앉은 괴석의 신비스런 명암효과에 먼저 압도되어 버린다.

머리 푼 광녀가 몸부림 치듯 마구 뻗은 매화나무 줄기에 숱한 꽃무더기들이 내려앉은 <홍백매도 10곡병>은 물감을 흩뿌린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그림과 진배 없는 기세다.


고람 전기의 〈매화서옥도〉
고람 전기의 〈매화서옥도〉
눈으로 맛보고 느끼는 즐거움 넘실거리는 그림. 19세기의 화인들은 이런 매혹에 휩싸이면서도 한편으론 지독할 정도로 완고한 중국풍 문인화의 틀 속에 갇힌 모순된 상황을 살고 있었다.

아득한 절벽 같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와 문인화풍을 따라가기에는 공력이 처지고, 청나라에서 들어온 서구식의 사실주의 사조는 달콤하기만 했다. 리움의 ‘조선말기 회화전’의 출품작들은 장승업, 안중식, 조석진 같은 대가들에 의해 언젠가는 극복될 수밖에 없었던 격동기의 모순된 감수성과 정신적 에너지를 보여주는 실체다.

조선 말기 회화를 처음 집대성한 이 기획전에는 김정희, 장승업, 허련, 안중식, 김수철, 전기, 조희룡, 홍세섭 등 격동의 시기를 누볐던 화인들의 산수·인물·화조·영모·사군자·글씨 등의 대표작 80여점이 망라되었다. 전통 화원풍 그림, ‘신감각파’로 불리우는 19세기 중엽 중인들의 현대적 화풍 등을 ‘화원’‘전통’‘새로운 발견’의 세부 주제로 묶었다.

18세기 진경산수보다 19세기 회화가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다분히 편견이라는 사실은 ‘새로운 발견’에 등장하는 추사의 제자 김수철, 전기, 조희룡의 상큼한 산수, 꽃 그림 등에서 깨달을 수 있다. 전기의 <매화서옥도>에서 겨울 눈덮힌 산속 처사의 집에 핀 매화꽃은 꼿꼿하기보다는 화사하고 아뜩하다. 현란한 꽃망울 터뜨린 조희룡의 <홍매도대련>, 박하향이 나는 듯한 김수철의 담채 산수와 상쾌한 폭우풍경(?)을 그린 <혼강폭우도>는 당대 화인들의 눈감각이 예사경지가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남나비’로 불리웠던 남계우의 나비 그림과 신들린듯 부채만으로 화면을 채운 화원 박기준의 백석도 8곡병, 현대식 액자틀에 끼워져 색다른 아취를 전해주는 신명연의 <애춘화첩> 등에서 당대 시각문화의 새로운 양상들을 느낄 수 있다. 그림 뒤에 한지를 대거나 현대 액자 등에 작품을 끼워넣어 감상을 편하게 한 배려가 돋보이고, 건축가 렘 쿨하스가 짠 우주선 같은 전시공간이 100여년전 옛 화인들의 세계와 잘 어울린다는 점도 흥미롭다.

국립중앙박물관 ‘루브르’ 전

1843년 코로가 그린 풍경화 〈티볼리의 빌라 데스테의 정원〉
1843년 코로가 그린 풍경화 〈티볼리의 빌라 데스테의 정원〉
개관 1돌을 맞이한 국립중앙박물관은 기존 전시관 성격과 전혀 다른 16~19세기 서양 미술사 그림마당을 펼쳐놓는 파격을 부렸다. 루브르에서 온 기획자들은 1, 2전시장 벽을 루브르 미술관 전시 회랑을 따다 놓은 듯한 얼개로 작품들을 배치했다. 르네상스 끝물의 매너리즘부터 바로크를 거쳐 로코코,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그리고 바르비종파의 자연주의, 인상파의 전조가 되는 코로의 풍경 그림까지 서구적 관점에서 미술사적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이어진다.

전시실 작품들은 이런 흐름을 바탕에 깔고 자연과 인간을 제재로 한 풍경화를 주된 테마로 내어놓았다. 합리적 이성과 감성으로 자연을 응시했던 바로크시대 프랑스 화가와 플랑드르 화파의 회화들, 전원에 대한 애틋한 환상을 보여주는 로코코 시대의 회화들과 신고전주의 풍의 작품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들머리를 장식하는 것은 괴수와 싸워 여인을 구하는 앵그르의 신화적 그림과 나폴레옹 1세의 초상을 그린 제라르의 신 고전주의 작품들이다. 뒤이어 모든 회화는 공식처럼 구성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명확한 구도의 그림을 그렸던 푸생의 <세례주는 성 요한>이나 고대 유적과 자연이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대기감아래 어우러진 클로드 롤랭의 대작 <안개낀 항구> 등은 바로크 시대 프랑스 미술의 성취를 증언한다.

이를 로코코 회화로 계승한 관능적인 궁정 화가 부셰의 <목욕하는 다이애나>, 국내에서 보기 힘든 18~19세기초 영국화단의 컨스터블, 레이놀즈, 게인즈버러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19세기 초 낭만주의 작가로는 들라클르와의 격정적 표현이 빛을 발하는 <격노한 메데이아>, 제리코의 전사상이 있다. 바르비종 자연주의 화파는 <장작패는 사람>의 밀레와 도비니, 루소가 보인다. 인상파의 다리를 이어주었던 탁월한 거장 코로의 아름다운 전원풍경 그림들이 무게추처럼 전시의 중심을 잡는다.

‘루브르 박물관’전에 출품된 18세기 궁정화가 부셰의 〈목욕하고 나오는 다이아나〉
‘루브르 박물관’전에 출품된 18세기 궁정화가 부셰의 〈목욕하고 나오는 다이아나〉
전시장 말미에서는 귀신들린 거장 고야의 불온한 광기가 스멀거리는 발트슈타인 부인의 초상 그림을 걸었고, 인상파의 전조로 평가받는 영국의 거장 터너는 색채로 뒤발한 <멀리 만이 보이는 강가의 풍경>으로 전시를 인상적으로 갈무리했다.

출품작은 비교적 양질이나 전시 풍경은 원래 사무동으로 설계한 기획 전시실의 부실한 세부 얼개와 급조의 흔적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화강석으로 깔린 거친 바닥이 작품들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는가하면, 루브르 미술관 내외부 모습을 복제한 가림막을 전시실 바깥벽 곳곳에 둘러친 모습은 전시의 품격을 깎아먹는다.

상업방송사를 낀 블록버스터성 기획전임을 감안한다 해도 정도가 심하다는 지적이 적지않다. 학예실 관계자는 “전시 구성 자체가 프랑스 미술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과 허례 의식을 반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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