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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삶 통째로 삼킨 ‘검은 그림’

등록 2006-11-21 18:00수정 2006-11-21 22:52

시대별로 파격적인 변모를 보여주는 장 뒤뷔페의 출품작들. 위 도판 왼쪽부터 아래쪽 방향으로 말년의 검은톤 그림 연작인 <씨르퀼리스 Ⅱ>(1984), <앉아있는 남자가 있는 풍경>(1974), <공포>(1924), <맨발의 지클로>(1956).
시대별로 파격적인 변모를 보여주는 장 뒤뷔페의 출품작들. 위 도판 왼쪽부터 아래쪽 방향으로 말년의 검은톤 그림 연작인 <씨르퀼리스 Ⅱ>(1984), <앉아있는 남자가 있는 풍경>(1974), <공포>(1924), <맨발의 지클로>(1956).
‘프랑스 거장’ 장 뒤뷔페 회고전 ‘우를루프 정원’

“도대체 이 화가의 화풍은 뭐야?”

지난 10일 덕수궁미술관 전관에서 개막한 프랑스 거장 장 뒤뷔페(1901~1985)의 회고전 ‘우를루프 정원’을 돌아본 몇몇 관객들은 이런 물음을 던질지도 모른다. 1, 2층 네개의 전시실마다 출품된 작품들은 갈래를 잡기 힘들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2층에는 화폭 위 공간이 빙빙 돌아가는 초현실주의풍의 그림이 있고, 아이가 그린 듯한 조악한 낙서풍의 그림이 이어지는가하면, 젊은 애인의 일상을 정성껏 그린 초상화도 있다. 1층에는 머리카락, 쓰레기 등을 재료로 삼은 그림도 있고, 세련된 색면 분할과 조형 감각을 뽐내는 알록달록한 조형물도 있다. 마지막 전시실은 심령 철학자의 머릿속 풍경을 옮긴 듯한 검은 색조의 선그림이 등장한다. 그림풍의 진폭이 넓고, 색다른 개성적 미감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중견작가가 등록상표처럼 같은 이미지들을 되풀이해 그리는 우리 화단 습성을 아는 이들이라면 더욱 당혹감을 느낄 법도 하다.

미술치료·낙서화·색면추상…
제도의 틀 깨고 개념 창안
독특한 개성 ‘검은 그림’에 집약
“그림은 내 모든 것 쏟아부은 것”

프랑스 미술교과서에 가장 자주 나온다는 이 국민작가의 다채로운 개성과 에너지는 서구식 이성주의와 제도화한 미술사에 대한 철저한 단절과 광기, 유목적인 작품 편력에서 나왔다. 6개월 미술교육 받은 것이 전부인 이 괴짜는 41살까지 포도주 판매상을 하며 아마추어로 습작했다. 그 뒤 정식 화단활동을 하면서 오늘날 현대미술의 고전이 된 숱한 개념들을 창안해냈다. 정신병자, 유아들의 작품을 미술사의 한복판에 끌어들인 미술치료, 추하고 비루한 날것 재료들을 쓰는 아르브뤼, 낙서화(그래피티) 운동의 시초, 전후 유럽과 한국, 일본을 풍미한 터져나올 듯한 색면 추상 운동인 ‘앵포르멜’, 팝아트에서 말하는 공장식 작업과정 또한 뒤뷔페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미술사는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일반에게는 낯설기 그지없는 뒤뷔페란 이름이 50~60년대 앵포르멜 미술이 한국 미술판에 태동할 당시, 동양적 감성과 통하는 앵포르멜의 전범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적이 흥미롭다. 10일 개막식에는 김종태, 윤명로씨 등의 그 시절 원로작가들이 운집해 열광 어린 표정으로 전시를 지켜보았다고 한다.

전시장은 ‘그림은 내 모든 것을 온전히 쏟아붓는 것’이었다고 사자후를 토했던 뒤뷔페의 70년 그림이력의 경로를 꼼꼼하게 풀었다.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영향을 받아 떠다니는 듯한 공간과 인물 설정이 엿보이는 〈공포〉, 애인 릴리를 그린 초상연작들이 2층 1전시실을 장식한다. 프랑스 방스 지역으로 작업실을 옮긴 뒤 자연물, 광물, 심지어 머리카락, 침 등의 오물을 자유자재로 활용한 2·3전시실의 낙서화, 재료화는 유명한 〈벽〉 연작, 〈재료학〉연작 등에서 진가를 과시한다. 작가가 모호한 의미로 만든 ‘우를루프 정원’이란 제목 아래 선보이는 60년대 알록달록한 색면 추상 작품들은 일상과 사물, 자연, 우주 등이 모두 하나로 통합된 그만의 신천지를 꿈꾸었던 작가적 이상의 집약물(〈우를루프 정원〉)이다.

가장 광채를 내뿜는 것은 75년 이후 85년 죽을 때까지 그의 말년 세계가 고스란히 집약된 1층의 마지막 전시실의 ‘검은 그림’들이다. 우주의 심연 같은 시커먼 공간 속을 마구 유영하며 내지르는 선의 우아하면서도 격정적인 놀림은 모든 욕망과 제도적 틀을 벗어던지고 알몸 그대로의 내면을 보여주는 도인이나 선승의 의식 속 풍경과 다름없다. ‘우리 일상생활과 연계된 예술을 꿈꾸’었던, 그리하여 삶의 총량과 작품을 혼연히 일치시켰던 대가의 다기한 편력을 블랙톤 그림들은 능숙하게 모두어낸다. 뒤뷔페 재단, 퐁피두 센터, 일본 도요타 미술관 등 16개 소장처에서 1년반 동안 작품들을 모아 꾸린 역작 전시다. 내년 1월28일까지. (02)2022-0612.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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