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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아이들 감성 봇물 터지듯 ‘툭’

등록 2006-11-26 17:43

국립국악원 상설공연 ‘발해공주’
지난 15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공연한 어린이 국악인형극 <발해공주>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10여 년 전 서태지가 그랬듯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배어있는 애국심을 끄집어내 다시 발해를 꿈꾸며 비상하고자 하는 염원의 발로였을까? 동북공정으로 대변되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강한 반발감을 전통음악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고유의 인형극 ‘꼭두각시 놀음’처럼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싶었을까? 발해공주를 헤집어 담론을 만들어내고 또 비평과 분석을 위해 공연을 관람한다면 당장 그 작업을 그만두고 발해공주의 한동작 한동작에 빠져 해맑은 목소리로 ‘상어’, ‘붕어’, ‘고래’를 외치는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할 것을 권한다.

발해의 전설적인 여전사 홍라녀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발해공주>는 철저하게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맞춤형 인형극이다. 그래서 <발해공주>는 어른의 시각이 아닌 어린이의 눈으로 그저 극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발해공주>는 침묵과 조요가 지배하는 철저한 감상무대로서의 공연이기를 거부한다. 공연장은 봄날 소풍을 나온 어린이들이 놀이터에 빙 둘러앉아 재잘거리는 모습을 그대로 재연한 듯한, 그들만의 소통의 장으로서 훌륭하게 기능한다.

70년대 말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이 텔레비전 인형극 <선화공주>와 <전우치>를 보며 반응했던 것처럼 <발해공주>를 감상하는 아이들 역시 발해공주의 활약이 현실인 듯 이를 여과없이 수용하며 극에 빠져드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발해공주’는 ‘선화공주’나 ‘전우치’처럼 죽어서도 다쳐서도 안 되는 영웅이며 그래서 이무기의 공격을 받을 때면 다급한 목소리로 “위험해” “피해”라고 알려주는가 하면 목마른 백성을 위해 우물을 찾고 거란족으로부터 발해를 구하는 대목에서는 박수를 치며 환호하기도 한다.

마우스와 키보드에 억눌려 있던 감성이 봇물터지듯 흘러나오는 공간에서 감성을 풍요롭게 하는 콘텐츠 제작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채팅과 게임의 몽환에서 빠져나온 아이들의 다소 거친 감정은 단소와 퉁소가락 그리고 국립국악원창작악단의 잔잔하고도 신명난 가락이 보듬어주고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치유되는데 우리의 민속공연만이 가진 장점 즉, 관객과 교감하는 음악으로서의 기능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마치 판소리현장에서 관객의 추임새가 소리꾼과 고수와 관중의 관계를 절묘하게 조화를 부리는 것처럼. 특히 국악기 ‘퉁소’가 고구려인과 말갈족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거란을 물리치는 즉 사회악을 구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라의 ‘만파식적’ 설화와도 닮아있다.

<발해공주>는 아이들이 천년 전 한반도의 모습을 간접경험할 수 있는 생생한 역사체험의 현장이다. 어른들이 대조영과 주몽의 활약에 열광하며 브라운관에 빠져들 듯 이들 역시 그들만의 영웅세계에 아무런 거부감없이 빠져든다. 자발적인 세뇌를 용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되묻는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어요?” <발해공주>는 이달 29일과 다음달13일, 내년 1월17~24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김문성/국악평론가 kimdi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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