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팝 ‘권총’
팝아트 신화 ‘앤디워홀 그래픽’전
반복·복제라는 예술 숙명 보여줘
‘드로잉에너지’전도 오리지널 탐구
반복·복제라는 예술 숙명 보여줘
‘드로잉에너지’전도 오리지널 탐구
네오 팝? 올해 미술판에는 이런 트렌드로 포장한 대중문화 취향의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경매장에는 대중문화 아이콘이나 일상 사물을 소재화한 앳된 작가들의 ‘장식미술품’으로 차고 넘친다. 경매사, 화상들은 팝아트 부활이라고 입소문을 내고 다닌다. 원작의 값어치에 부동산처럼 집착하는 국내 미술시장에서 이런 작품들이 왜 팝아트일까. 대중문화의 소재를 빌렸다는 사실만으로?
그 의문의 실마리를 미국 팝아트의 신화 앤디 워홀(1928~1987)의 명품 판화들을 보여주는 서울대 미술관의 ‘앤디 워홀 그래픽’전(내년 2월10일까지. 02-880-9509)에서 찾게 된다. 출품작은 뉴욕 시립대의 중개로 들여온 멕시코계 컬렉터 로살리스 베르간티누스의 소장품 60여점. 상업적 작품들만 선보였던 기존 전시들과 달리 전 생애 판화 대표작들을 두루 들여와 미학적으로 워홀을 독해할 수 있다.
두 큰 방에 들어온 워홀의 작품들은 산업사회의 본질인 반복과 복제가 동시대 예술의 숙명이기도 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관객들은 실크스크린 판화 기법으로 찍은 수프깡통, 전기의자, 세계적 명사들의 반복되는 이미지들을 쫓아가야 한다. 미국식 사형대인 전기의자 연작은 똑같은 모양에다 작품마다 흑백, 노란빛, 푸른빛 등 다른 색깔들만 입혀 계속 찍었다. 살인기계란 느낌은 점점 옅어지고 볼거리로 변하는 것이다. 등록상표 격인 캠벨 수프 깡통, 팬지 꽃, 재클린 케네디의 얼굴, 우람한 소, 심지어 배우 마릴린 먼로의 촉촉한 입술마저도 색깔만 달리해 되풀이된다. 권총(위 사진)이나 미키마우스, 달러의 사인 이미지도 그의 손길 아래 그저 찍어내는 대상에 불과하다.
보기에만 좋다면! 디자이너 출신의 이 천재가 일찍이 갈파했던 것은 미술품이 오리지널(원본)의 신비감을 팽개치고 반복과 복제의 속성을 지닌 ‘히트 공산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미술판의 사이비 팝아트와의 근본적 차이가 그것이다. “(미술)기계가 되고 싶다”고 했던 그는 교련복, 군복, 예비군복 등 위장복의 개구리 무늬를 본뜬 생전 최후의 ‘카무플라주’ 연작에서 아름다움의 상투성이 지닌 단면을 새롭게 드러낸다. 우아한 꽃 드로잉을 걸친 그의 판화들은 “진짜 팝아트를 알아? 오리지널을 알아?”라고 반문하는 듯하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드로잉에너지’(14일까지·02-760-4525)전도 역설적으로 네오팝 바람의 허상을 반증한다. 드로잉 습작을 꽂은 책장 등을 갖춘 드로잉 아카이브 작업실을 아예 통째로 만든 김태헌씨나 망치모양 도장으로 드로잉 찍기 기계를 선보인 김을씨, 생머리카락을 이어 드로잉 이미지를 그린 함윤주씨의 작품들은 작가들이 팝아트보다 기실 ‘오리지널’한 작품에 대한 표현욕구에 목말라 있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자기 몸, 자기 작업의 독창성에 대한 이들의 끈질긴 탐구는 근거없는 팝아트 바람 부풀리기가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되레 독백하고 있는 셈이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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