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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필진] 과천에 온 영국화가 ‘기덕’

등록 2006-12-11 17:38수정 2006-12-11 17:52

엘리자베스 키스 <함흥 여인들의 아침 수다> 다색목판 
38 x 25 cm 1921년 (개인소장)
엘리자베스 키스 <함흥 여인들의 아침 수다> 다색목판 38 x 25 cm 1921년 (개인소장)
우리나라를 사랑해 ‘기덕’이라는 이름까지 가졌던 영국 여류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97~1956). 그녀가 일제강점기 시기에 그렸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원산, 함흥, 평양 풍경등 60여점의 작품이 12월 7일부터 내년 2월 11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다.

키스는 삼일운동 직후인 1919년 3월 28일에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해 6개월 정도 머물렀고, 그 후 1936년까지 여러 차례 방문하여 한국을 소재로 한 수채화·목판화·동판화·드로잉 등 66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녀는 1920년 일본에서의 전시회를 시작으로 1924년 미국과 런던, 1926년 파리, 1936년에는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있던 하와이에서 한국 소재 작품들을 소개하였다. 이러한 활발한 전시활동으로 키스의 한국 소재 작품들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로얄 콜렉션을 비롯해 보자르갤러리, 샌프란시스코 박물관, 하와이 대학, 미국의 아시아 패시픽 박물관, 오레곤대학 박물관등에 소장되었다.

엘리자베스 키스 <맷돌을 돌리는 여인들> 종이에 수채 30 x 40 cm 1919년 (아시아 패시픽 박물관 소장)
엘리자베스 키스 <맷돌을 돌리는 여인들> 종이에 수채 30 x 40 cm 1919년 (아시아 패시픽 박물관 소장)

키스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미국과 일본에서는 여러번의 전시회가 열렸지만, 정작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한국에서는 한번도 전시회가 열리지 않은 '잊혀진 화가'였다. 그런데 올해 9월 29일부터 11월 5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에서 키스 사후 처음으로 전시회가 열렸고, 이번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리고 내년 2월에는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순회전으로 개최되니, '잊혀진 화가'를 통하여 '잊혀진 삶의 모습'을 볼 수있는 전시회라 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키스 <결혼잔치> 다색목판 26 x 37 cm 1921년 
(Murray Warner Collection 소장)
엘리자베스 키스 <결혼잔치> 다색목판 26 x 37 cm 1921년 (Murray Warner Collection 소장)


키스는 풍속과 인물을 화폭에 담아내는데 탁월한 솜씨를 보인 화가다. 위의 작품을 비롯한 여러점의 결혼 풍습을 소재로 한 작품을 비롯해, 명성황후의 조카딸을 그린 <민씨가의 규수>, 독립청원서를 보냈다는 이유로 2년 감옥살이를 한 직후의 <운양 김윤식>, 대학교수와 결혼해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있는 <공주(혹은 옹주)>, <종묘 제례관> <궁중악사> <대한제국 군인> <환관> <갖바치> 등, 당시 우리나라 미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렸다.

엘리자베스 키스 <원산 서당 선생님과 제자들> 다색목판. 34.6 x 24.1 cm, 1921년 (개인소장)
엘리자베스 키스 <원산 서당 선생님과 제자들> 다색목판. 34.6 x 24.1 cm, 1921년 (개인소장)

키스는 그림을 그린 장소도 서울로 한정하지 않고, 날씨가 추운 겨울에도 함흥, 원산, 평양 등 북녘도시들도 열심히 다니며, 그 곳의 눈 덮인 모습 그리는 열정을 보였다. "나는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들을 먼저 들이마셨다. 아니 들이마신다는 말은 충분하지 않다. 나는 그 안에서 목욕을 했다. 그 풍경 속으로 녹아들어가 아예 풍경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 그 느낌을 종이 위에 재구성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뒤따랐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엘리자베스 키스 . 엘스펫 스콧 공저 송영달 옮김. 책과함께 발행 16쪽)

엘리자베스 키스 <평양의 동문> 다색목판 31.4 x 45 cm 1925년 (개인소장)
엘리자베스 키스 <평양의 동문> 다색목판 31.4 x 45 cm 1925년 (개인소장)

위의 작품은 이른 새벽이거나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풍경이다. 키스의 그림에는 새벽이나 저녁 풍경이 자주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낮에는 '그림 그리는 외국 여자'를 구경하러 좇아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캔버스를 세워놓은 순간 어디서 나타나는지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왔다. 대부분 아이들이거나 나이 많은 남자들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몰려와서 구경하는 바람에 어떤 때는 포기하고 집에 왔다가, 새벽닭이 울 때 다시 찾아와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그래도 어떻게 아는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앞의 책, 135쪽)

엘리자베스 키스 <예복을 입은 순이> 종이에 수채 34 x 40 cm 1920년 (아시아 패시픽 박물관 소장)
엘리자베스 키스 <예복을 입은 순이> 종이에 수채 34 x 40 cm 1920년 (아시아 패시픽 박물관 소장)

키스는 1919년 삼일운동 직 후 우리나라를 방문하면서, 독립운동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보였고 일본의 만행에 대해 적개심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언론인 생활을 하던 여동생과 제부 그리고 우리나라에 와있던 외국인 선교사들을 통해 식민지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키스는 그림을 그리러 다닐 때 통역 겸 그림도구를 들어주는 청년과 동행했는데, 이 청년이 <독립신문>과 유인물을 두루마기에 감춰 갖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독립운동가였다는 기록을 남긴걸로 보아 그로부터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 그림의 여인은 삼일운동 사건때 일본 경찰에 연행되었던 여학생인데, 학교 교장의 노력으로 석방된 후 집에 돌아왔을 때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의 가정에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하대를 당하지만, 삼일만세운동 때는 여자들도 남자 못지않게 잘 싸웠다. 비밀문서를 전달하기도 하고, <독립신문>을 배포하고, 지하조직에 참여하며,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굽히지 않았다. 한국 여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이 얼마나 강인한가를 보여주었다." (앞의 책, 158쪽)

엘리자베스 키스 <여승이었던 동씨> 다색 동판. 38.1 x 29.2 cm 제작년도 미상 (송영달 소장)
엘리자베스 키스 <여승이었던 동씨> 다색 동판. 38.1 x 29.2 cm 제작년도 미상 (송영달 소장)

키스는 서울에서 머물 때 동대문 바로 왼쪽의 가파른 언덕에 있던 감리교 의료 선교회관에서 지냈다. 그곳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부인병원인 '보구여관'으로 훗날 동대문 부인병원, 이화의료원, 이화여자대학교 부속병원으로 발전하는데, 위 작품의 할머니는 그 병원 환자였다. 그녀의 회상에 의하면 이 할머니는 허벅지에 심한 화상을 입고 한방치료를 받았으나 오히려 상태가 악화되자, '신식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얼마 후 화상이 거의 치료가 되자, 이 할머니는 승적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여 병원에서 생활하며 성경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키스 <신부> 종이에 수채. 크기 제작년도 미상 소재불명.
엘리자베스 키스 <신부> 종이에 수채. 크기 제작년도 미상 소재불명.

이 작품은 키스의 대표적 동판화의 하나인 <신부>의 원본으로 지금은 도판으로만 전한다. 그러나 동판화로 만든 작품은 영국의 로얄 아카데미 전시회에 출품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며 100장의 에디션이 모두 매진되었으니, 우리나라 신부복과 장신구의 아름다움이 영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할 수 있다. 신부가 입고 있는 옷은 소매에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등의 색동과, 끝에는 손을 가리도록 흰색의 한삼을 단 '녹원삼'이다. 녹원삼은 원래 공주, 옹주 궁녀나 사대부 부녀자들이 입었던 예복인데, 일반 서민들도 혼례 때만은 녹원삼을 입되 금박은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구별하게 하였다.

<신부>에 그려진 장신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 위에 족두리보다 화려한 화관을 썼고, 화관에는 움직일 때마다 떨림이 있어 '떠는 잠'이라고 불리는 보요들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화관은 원래 왕가나 양반가에서 혼례를 올릴 때 사용되다가, 정조 12년부터 서민들의 혼례 때도 사용할 수 있게 허용되면서 보편화하었다. 쪽진 머리에는 용잠으로 보이는 커다란 비녀를 찔러넣었고, 그 옆에 손으로 만든 꽃, 그리고 쪽 뒤에는 도투락 댕기가 길게 늘어져 있으니, 우리나라 전통 신부 옷과 장신구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엘리자베스 키스 <운양 김윤식> 종이에 수채. 1921년 추정. 소재 불명
엘리자베스 키스 <운양 김윤식> 종이에 수채. 1921년 추정. 소재 불명

삼일운동 때 일본 총독을 비롯한 여러 곳에 독립청원서를 보냈다는 이유로 2년의 옥고를 치루고 난 직후의 운양 김윤식을 그린 작품이다. 키스는 운양이 이 그림을 위하여 관복을 입고 오랫동안 앉아있으면서 매우 힘들어했다고 회상하면서, <몽유도원도>로 추정되는 옛 그림을 살펴봤다는 기록을 남겼다. 만약 키스가 본 그림이 <몽유도원도>가 맞다면, 1900년 이전에 일본으로 반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모호한 유출경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두 아들이 가보인듯한 그림들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하나는 길이가 3야드(275 cm)쯤 되었는데 거대 한국의 모습을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주는 두루마기 그림이었다. 그림의 제목은 <꿈>이라고 했다. 삼백여 년 전에 한 화가가 어느 시인이 꿈에 본 장면을 그렸다는 것이다. 비단 위에 그린 그림은 오래되어서 색갈이 약간 퇴색하였으니 퍽 잘된 그림으로 한국의 옛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낭만적인 산수가 겹겹이 연결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구름 위에 앉아서 눈 아래로 지나가는 산수를 내려다보는 느낌을 주었다 그림 속의 자그마한 노인들 모습은 절묘한 푸른색 노송과 강인한 암석들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다." (번역본 120쪽, 원서 50쪽) 현재 일본 덴리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있는 <몽유도원도>는 그림의 길이가 106.5 cm 이고, 그림에 붙인 22명의 찬문까지의 길이는 17미터이니, 키스의 동생 엘스펫이 서술한 길이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현재의 <몽유도원도>는 일본에서 다시 표구되어 둘로 나눠지는 과정을 거쳤고, 키스가 그 그림을 볼 때 두루마기가 너무 길어 찬문의 일부만 펼쳤을 수도 있으니, 미술사가들의 구체적인 연구를 필요로 한다.

엘리자베스 키스 <두명의 조선 이이들> 다색 목판. 33.7 x 22.2 cm 1925 년 (개인소장)
엘리자베스 키스 <두명의 조선 이이들> 다색 목판. 33.7 x 22.2 cm 1925 년 (개인소장)

이 작품은 1940년 해주결핵요양원에서 발행한 크리스마스 실의 도안 그림이 된 작품이다. 키스는 1934년과 1936년에도 크리스마스 실 도안 그림을 만들어 주었었는데, 당시 실 도안 그림을 그려준 화가는 키스와 운보 김기창 뿐이었다. 그리고 이 그림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실이 해방 전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마지막 실이다.키스는 이렇게 진심으로 우리 민족을 사랑하였고, 그림과 글을 통하여 일제강점기 시기의 우리의 삶의 모습을 유럽과 미국에 알렸다. 그래서 그녀의 우리나라 소재 작품에서는 우리 민족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키스는 1936년이후 다시는 우리나라를 방문하지 못하고 1956년 영국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쳤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올해,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던 한국에서 ‘국공립미술관 특별순회전 푸른 눈에 비친 옛한국 엘리자베스 키스전’이 열리고 있으니, 이번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는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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