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구 <이라크바디카운트061112> 사진, 아크릴 채색 90×180cm 2006년
많은 어린이와 사람들의 흑백 사진 위에 빨간 숫자가 쓰여있다. 이라크바디카운트(www.iraqbodycount.net)가 2003년 이라크 전쟁 시작부터 올해 11월20일까지 집계한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 숫자다. 이라크 보건부는 15만 명의 이라크인이 사망했다고 추정 발표했고, 미국 존스홉킨스대는 655,000명이라고 주장하니, 가장 낮은 사망자 숫자를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너무도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라크 전쟁 시작 6개월 후인 2003년 8월 바그다드를 방문하고 자료를 수집했던 이종구 화백이 평화를 원하는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만든 작품으로, 이달 8일부터 18일까지 서울 견지동 평화공간 스페이스피스에서 전시되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미술에서 '농촌미술'이라는 독창적 세계를 만든 이종구 화백이, '이라크의 평화'를 새로운 '화두'로 삼은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대추리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의 이름도 <두개의 방 대추리_바그다드>이다.

이종구 <그대에게-대추리·도두리에서>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65×260cm 2006 년
고향을 사랑하고, 농촌을 사랑하고, 농민을 사랑하여, 20년이 넘도록 농민들의 삶을 그려온 이종구 화백에게 대추리 문제는 '다른 사람의 문제'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다. 그래서 그는 대추리와 이라크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냉철하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지금 지구상에선 이라크가, 한반도에서는 대추리가 심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두개의 땅에서 들리는 신음의 근본에는 공교롭게도 배후에 미국이 있다. 미국은 세계평화를 위한 명분으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고, 동북아 평화를 위해 대추리에 군사기지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이 벌이고 이러한 일들은 결코 인류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다. 지난번 미국인들이 총선에서 보인 선거 결과만 보아도 그렇다. 나는 하루 빨리 이라크바디카운트가 멈추고, 대추리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수 있는 평화의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나의 ‘두개의 방’은 그러한 희망을 간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종구, 강석, 엄윤섭, 오천택, 장재우 <내땅에서 농사짓고 싶다> 벽화 2006
이종구 화백은 올 여름 대추리에서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벽화를 그렸다. 벽화는 전시장에서의 전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대중성이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경부터 시도된 민중미술의 한 장르다. 그런데 이종구 화백은 벽화에다 '내 땅에서 농사짓고 싶다'는 대추리 농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함께 써넣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이종구 <바그다드에 핀 꽃> 사진, 마른꽃 32×42cm 2006년
이 화백은 이라크에 가서도 소박한 사람들의 작은 소망을 발견한다. '우리는 살고 싶다.' 그래서 그는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서민들을 만나 사진을 찍었고, 이번 전시회에서 그 사진 위에 일곱송이의 들국화를 붙이며 그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찍었던 컬러 사진을 이번 전시회에서는 흑백으로 바꿨다. 이 맑은 웃음들이 이제 사라졌을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만났던 아이들 중에서도 틀림없이 어떤 아이들은 희생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사진위에 노란 들국화 일곱송이 씩을 붙여 놓았다. 그들의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제의적 의미의 헌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의 어두운 세상에 바치는 희망의 꽃이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이라크 어린이와 서민들의 웃음만이 아니다. 대추리 주민들의 추억이 서려있는 대추초등학교도 이번 여름 굴삭기에 츼해 철거 되었고, 그는 그들의 추억을 사진설치 작업으로 담아냈다.

이종구 <대추리의 세월> 사진설치 2006년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모습을 더욱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쌀부대 종이를 사용해 그림의 주제를 극대화 시켰던 이종구 화백은, 이번에는 빛바랜 낡은 사진으로 대추리 주민들의 아픔을 표현했다. 그는 지난 10월 종로네거리에서 열렸던 '대추리의 평화를 위한 거리예술제'에 나와 대추리 주민 홍문의 씨의 얼굴을 걸개그림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자신과 대추리와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80년대 후반 이후 처음으로 거리에 나왔다. 내가 대추리 주민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내 땅을 지키기 위해 나선 소박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다. 화가가 사회적으로 내 땅에서 끝까지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말을 전파하기는 어렵다. 내 땅을 지키고 농사를 짓다가 그 땅에서 묻히고 싶은 것은 거창한 욕심도 아니고 사회적 이슈도 아니다. 하지만 이미 그것은 소박한 꿈이 아닌 투쟁이 되었다. 그림이 큰 힘을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갤러리가 아닌 거리에서 이들을 그리고 이들의 말을 전파하고 싶었다. 아직도 대추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 희망이 유효함을 알리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종구 화백은 대추리와 이라크 문제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자칫 완료형의 싯점으로 그리고 있지 않나 하는 점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는 그림에서 별로 시도되지 않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작품도 소개했다.

이종구 <주인을 찾습니다>지퍼백, 오브제 가변설치 2003년
위의 작품은 화가가 바그다드 거리에서 채집한 물품들을 통해 전쟁의 비인간화를 사실과 구체로서 보여주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평면적 회화보다는 전쟁의 현장에서 폭격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이 흘리고 간 물건들을 통한 작업이 리얼리즘에 충실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바그다드의 거리에서 많은 물건들을 습득하고 채집을 했습니다. 황급히 폭격을 피해 뛰어가다가 벗겨졌을 것만 같은 한 사내의 떨어진 구두창, 누군가가 마시다 버린 펩시콜라 깡통, 구겨진 이라크 산 쉬메르 담배 갑, 꽁초, 부서진 라이터, 피카추 캐릭터가 그려진 빙과 껍질, 사랑하는 이가 보냈을 법한 편지, 박물관에 뒹구는 깨진 진열장의 유리파편, 심지어 미군들이 거리에서 작전 중에 먹다버린 군용 비상식량이나 불타다 만 이라크 군 장성의 사진까지 나는 닥치는 대로 줍고 수집했습니다. 이 물건들에서 전쟁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이종구 화백은 언젠가 바그다드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을 때 이 물건을 들고 그들의 삶과 일상으로 찾아가 주인공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삶이 무사하고 평화로웠으면 좋겠습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종구. 그는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우리의 농민들만 사랑하는 화가가 아니라,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과 평화를 사랑하는 화가로 도약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전시는 훗날 우리 미술사에서 세계의 평화를 염원했던 의미 깊은 전시로 기록될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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