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권 <산-2> 수묵목판 58.5 x 39cm, 2004년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등성이 위를 나르는 한무리의 새들이, 미명의 어스름을 걷어내는 히뿜한 새벽 햇살을 가르며 날아간다. 사진 같으면서 사진이 아니고, 수묵화 같으면서 수묵화가 아니고, 실제 존재하는 진경 같으면서 진경이 아닌, 화가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이미지 산수' 판화다. 이 작품은 김준권 화백이 지난 해 3월, 우리나라 목판화의 역사를 정리하는 전시회 '목인천강지곡'전에 출품하였던 판화로, 우리나라 목판화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득의의 작품이다.
"아무리 험한 산도 결국에는 선이다. 선은 이른 새벽이나 어둠이 지기 직전에 보인다. 음과 양이 찰나적으로 교차되는 시점의 선의 이미지를 구성적으로 표현하고, 검은 선이 주는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아래의 검은색 부분을 네 번이나 먹으로 찍었다." (화가와의 인터뷰) 그림 아래 부분의 산을 '절대 어둠'으로 표현하기 위해 네 번이나 먹으로 찍은 그의 치열한 작가정신은, 그의 그림 이력과 무관치 않다. 89년 전교조 결성 당시 해직교사가 된 그는 옹골찬 사회의식을 갖고 '학교판화' 연작을 발표함으로써 당시 학교교육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표현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민미협 사무국장과 집행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사회변혁의 한 몫을 감당하였다. 그런 그였기에, 세상이 바뀌어도 목판화를 버리지 않고 더욱 열심을 냈다. 1994년부터 3년동안은 목판화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중국 루신 미술학원에서 더욱 깊이있게 목판화를 연구하였고, 1997년에는 한국 목판 연구소를 개설하여 다양한 형태의 목판화 작업에 매진하며, 목판화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
각고의 세월 끝에 그는 2004년 부터 '산'과 '오름' 연작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이 연작은 이제까지 농촌과 자연의 실경에 머물러 있던 그의 작품세계가 보다 원숙해졌음을 보여줬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칼질의 흔적을 찾기 힘든 새로운 형태의 판화세계를 개척한 것이다.
위의 부분도에서 보이는 것 처럼, 목판화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날카로운 '칼 맛' 대신 부드러움과 은은함을 화폭에 가득히 담았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시도를 통하여, 시보다 더 시적인 판화를 탄생시켰다. 완화삼(玩花衫) - 목월(木月)에게 조지훈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이 작품 역시 '목인천강지곡' 전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오름' 연작 중 대표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의 기생화산에 있는 오름이라는 자연형태를 중첩되는 먹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절대어둠' 너머로 아스라히 보이는 마을과의 '찰나적 교차'를 위하여 검은색을 더 없이 짙게 강조하였다. 그래서 '칼 맛' 대신 '먹 맛'이 느껴지고, 어둠이 밝음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 작품은, 이 시대의 자랑스러운 목판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하루이틀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화가가 10여년동안 시골에 칩거하면서 끊임없이 자연풍경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였기에, '이미지 산수'이면서도 실경 산수와 같이 자연스럽고 아늑한 풍경을 재현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나무가 없었다면 그 풍경은 마을 풍경이 아니라, 산 풍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산 아래 희미한 강줄기가 보이지 않았다면, 강마을이 아니라 두메산골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표현이 바로 김준권 화백 특유의 섬세한 '농촌 감성'이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강마을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나그네 -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지훈에게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오름'과 '산' 연작을 발표 전에 제작한 작품으로, 그의 판화가 '시적 판화'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싸락눈이 오는듯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고, 한겨울의 차가운 손돌이바람이 소나무 밭 사이를 헤치는듯 하지만 바람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잿빛 고요함만이 화폭 가득할 뿐이다. 많은 화가들이 겨울 풍경을 그렸지만, 화폭 속에 고요함을 담아낸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잿빛 고요'란, 화가가 그 고요 속에 침잠되지 않으면 표현하기 힘든 일종의 '철학적 사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골에 살고있는 김준권 화백에게 스산한 겨울풍경은 삶의 일부분이고, 이미 자신과 하나가 된 주변 풍경이기에, 잿빛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잿빛과 고요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게해주는 아련한 시적정취가 흠뻑 느껴지는 것이다.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고은 겨울 文義(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신성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달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小白山脈(소백산맥)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빈부에 젖은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고 서서 참으면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文義(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다참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지난 여름의 부용꽃인 듯 준엄한 正義(정의)인 듯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文義(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산-2> 부분
위의 부분도에서 보이는 것 처럼, 목판화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날카로운 '칼 맛' 대신 부드러움과 은은함을 화폭에 가득히 담았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시도를 통하여, 시보다 더 시적인 판화를 탄생시켰다. 완화삼(玩花衫) - 목월(木月)에게 조지훈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김준권 <오름-0408> 수묵목판 40 x 30cm, 2004년
이 작품 역시 '목인천강지곡' 전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오름' 연작 중 대표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의 기생화산에 있는 오름이라는 자연형태를 중첩되는 먹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절대어둠' 너머로 아스라히 보이는 마을과의 '찰나적 교차'를 위하여 검은색을 더 없이 짙게 강조하였다. 그래서 '칼 맛' 대신 '먹 맛'이 느껴지고, 어둠이 밝음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 작품은, 이 시대의 자랑스러운 목판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하루이틀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화가가 10여년동안 시골에 칩거하면서 끊임없이 자연풍경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였기에, '이미지 산수'이면서도 실경 산수와 같이 자연스럽고 아늑한 풍경을 재현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오름-0408> 부분
이 작품에서 나무가 없었다면 그 풍경은 마을 풍경이 아니라, 산 풍경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산 아래 희미한 강줄기가 보이지 않았다면, 강마을이 아니라 두메산골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표현이 바로 김준권 화백 특유의 섬세한 '농촌 감성'이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강마을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나그네 -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지훈에게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김준권 <겨울-솔밭에서> 수묵목판 59 x 34cm, 1999년
'오름'과 '산' 연작을 발표 전에 제작한 작품으로, 그의 판화가 '시적 판화'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싸락눈이 오는듯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고, 한겨울의 차가운 손돌이바람이 소나무 밭 사이를 헤치는듯 하지만 바람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잿빛 고요함만이 화폭 가득할 뿐이다. 많은 화가들이 겨울 풍경을 그렸지만, 화폭 속에 고요함을 담아낸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잿빛 고요'란, 화가가 그 고요 속에 침잠되지 않으면 표현하기 힘든 일종의 '철학적 사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골에 살고있는 김준권 화백에게 스산한 겨울풍경은 삶의 일부분이고, 이미 자신과 하나가 된 주변 풍경이기에, 잿빛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잿빛과 고요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게해주는 아련한 시적정취가 흠뻑 느껴지는 것이다.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고은 겨울 文義(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신성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달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小白山脈(소백산맥)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빈부에 젖은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고 서서 참으면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文義(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다참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지난 여름의 부용꽃인 듯 준엄한 正義(정의)인 듯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文義(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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