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디자인’전
이념 해체한 ‘정치 디자인’전
정치를 표현한 디자인은 썰렁한 것이 본질일까. 작가 양혜규씨는 전시장 외진 구석에 병원의 링게르병 꽂이대를 들여왔다. 그 꽂이대에 전선을 휘감고서 알전구와 고리형광등을 줄줄이 걸고 불을 켰다. 얼핏 화려한 불빛이나 몰골을 뜯어보면 거추장스럽고 추레하기 짝이 없는 모습. 한국 도시의 허망한 야경 같기도 하고, 우리 정치나 사회의 뒤안길 같기도 하다. 21일까지 서울 대학로 제로원 디자인 센터 1층과 지하에 차려진 ‘정치 디자인, 디자인의 정치’ 전에는 분단, 이념 갈등 같은 이땅의 정치적 문제를 디자인으로 담아보겠다고 만용(?)을 부린 젊은 미술가, 디자이너들의 괴팍발랄한 이색 디자인들이 널렸다. 남북의 국기나 국가 동원 캠페인 등을 풍자적으로 대비하거나 해체한 디자인 난장. 남북 체제의 획일적 속성, 우리 사회의 이념 금기 등을 까발린 작업들이 많다. 금전 자본의 이해 관계로 치닫는 미술, 디자인 시장의 격랑 속에서 잠시 발을 뗀 엘리트 미술인들의 속내가 보인다. 그들은 한국의 정치에 대해 디자이너로서 신경질적이고 냉소적인 시선을 쏘아보내지만, 왜곡된 정치 단면들이 코미디 같은 선전 홍보물 등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데 흥미를 보이기도 한다. 사람이 없는 기계적 포스터 같은 평양 군중들의 카드섹션, 인민군 병사들의 총검술 시연 사진(노순택)은 섬뜩한 감흥을 자아내며, 북한의 천리마운동 포스터 홍보물보다 더욱 투박하고 어색한 70년대 남한 새마을 운동 관련 홍보물·그림 콜라주(김미영)에서 우리 인식을 깨치게 하는 디자인의 매력을 알게 된다. 신용카드로 북한 체제와 핵문제를 은유하고, 화장품의 파스텔톤 색조로 태극기, 인공기를 재구성해버린 박정연씨의 그림, 빨갱이란 단어가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된 일제시대와 60년대 신문지면을 확대해 전시장 바닥에 옮긴 근대 연구자 천정환씨의 설치작업이 ‘싸늘한 감동’을 선사한다. 디자이너 이정혜씨와 사진가 김현호씨의 공동기획 전시다. (02)745-2490~3.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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