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리뷰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런던 바비컨 공연을 다녀온 지 한 달여, 극단 목화가 또 하나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공연한단 소식을 들었을 때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번엔 어떻게? 해사한 젊은 처녀들의 웃음으로 시작하여 죽음의 춤으로 마감한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미움과 분쟁 속에 다가오는 ‘공멸’을 다루며 우리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다면 〈맥베스〉는? 권력 찬탈의 허망한 꿈을 꾸었던 맥베스의 이야기에서 ‘거장’ 오태석은 무엇을 발견할까?
막상 막이 올랐을 때 관객들은 당황했다. 60대 이 연출가가 바보선언을 하는 듯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얘기”라며 연출자는 자신의 마음에 와 닿은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무대 위에 펼쳐진 장면들은 너무나 성글어 그 이면에 무엇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애초에 버리도록 했던 것이다.
무대는 길과 집을 동시에 표현하기에 제격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온 아이카와 마사아키의 조명도 대극장에서 주요 배우의 심리를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맥베스의 운명을 상징하는 투우 이미지와 곳곳에 집어넣은 플라멩코 춤은 공연 내내 어정쩡하다. 오페라 〈카르멘〉의 음악도 극을 하나로 이어주기보단 흐름을 끊는다. 맥베스 역의 정진각과 부인 역의 이수미는 맥베스 부부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깨는 배역이었는데, 한편 인간적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색한 옷을 입은 듯 부자연스럽다.
어느 마을, 어느 가족에게나 아픈 역사는 숨겨져 있다. 연극은 그 아픔을 기억하여 그것을 풀어낸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오태석은 우리 역사의 비극적 기억에 가장 오래, 가장 철저히 매달려온 연극인이다. 그 슬픈 역사를 견디기 위해 그에게 끊임없는 희극정신, 놀이정신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맥베스〉에서 역사적 맥락은 모두 빼고 그저 인간 맥베스, ‘당신이나 내가 될 수도 있는’ 맥베스를 그린다.
아직은 빈틈이 많지만 옳은 출발일 수 있다. 사실 우리 연극에서 ‘맥베스라는 인간’ 속에 들어가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많은 연극들이 맥베스를 ‘권력의 화신’ 정도로 치부하고 거기에 장식을 붙이는 데만 골몰해왔다. 다 벗겨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은 충분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분명 필요한 일이다.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 17일까지.
노이정/연극평론가 voiv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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