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다 굽타의 <탐욕스런 신에게 바치는 5가지 제물>. 인도인들이 즐겨쓰는 스테인레스 식기를 산처럼 쌓아올려 기괴한 기념비처럼 변질시킨 설치작업이다.
‘종교의 나라’ 편견 깨는 12인 작품전 부산시립미술관서
“가만히 안둘거야!”“당신 미쳤군!” 전시장 벽에 가득 붙은 영문 편지들은 온통 작가에게 저주와 욕설을 퍼붓는 협박성 내용들로 가득했다. 물론 이 편지들은 작가에게 발송된 ‘진짜 화난 사람들’의 편지들이다. 인도 뭄바이에서 작업하는 투샤 조그라는 작가가 만든 이 작품은 알고보니 작가가 먼저 도발을 벌인 결과였다. 뭄바이의 중산층 거주지역에 무더기로 가짜 편지를 보내어 “운하를 만들기 위해 당신의 집을 무조건 헐어야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한술더떠 불법 노점 단속을 피해 소파로 변신가능한 노점 좌판 모델들의 사진들도 붙여놓았다. 사기꾼으로 체포될 수도 있는 이 ‘미술 장난’은 요사이 유럽을 비롯해 국내 일부에서도 볼 수 있는, 행동주의로 불리우는 사회참여 미술 퍼포먼스에 속한다. 우리가 막연히 신비스런 종교의 나라로 인식하는 인도의 참여작가는 한국에서도 생소한 이런 괴짜 퍼포먼스를 태연히 작품으로 내걸었다. 빈부격차, 재개발에 얽힌 우리 70~80년대의 옛 기억과 현실이 교묘히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인도 작품에서 우리 지난날을 읽다니! 부산시립미술관에서 12일 개막한 인도현대미술전은 세계 곳곳 동네 골목골목 구석까지 정보의 바다가 흐르는 세계화의 위력을 새삼 보여주는 전시다. 종교와 신비의 나라라고 생각했던 인도 미술에 대한 기존 생각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동시대 현대미술가 12인의 작품이 숱하게 나왔다. 이동과 민족성, 3세계의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힌 그들의 그림, 설치작업, 조형물들은 서구의 첨단 뺨치는 조류로 무장했다. 스텐레스 식기를 쌓아 거대한 산을 만든 수보드 굽타, 버려진 힌두교 목신상에 다시 금속성 장식을 입힌 탈루르의 조각, 인도 독립 지사들의 바랜 사진과 유령 같은 그들의 육성이 들리는 나타라지 샤르마의 녹슨 자동차 등이 이런 첨단 서구미술의 강력한 영향과 인도적 전통을 동시에 보여준다. 화폭 위에 군상 그림을 그린 뒤 영상을 쏘아 겹치게 하는 특이한 기법으로 세계화 자본화시대 인도인의 고달픈 떠돌이 삶을 담아낸 랑비르 칼레카의 영상물은 이런 양상이 잘 녹아있는 수작이다. 세계화 와중에도 소외자, 민족, 정체성을 생각하는 건 우리네 현대미술, 한류와 빼어 닮은 격이다. 전시는 만든 얼개도 사뭇 글로벌화를 지향했다. 거대화랑인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의 중국 베이징 지점에서 지난 가을 인도의 일급 작가들을 모아 전시를 기획하면서 작품들을 만들어 선보인 뒤 다시 국내 미술관으로 역수출했다. 양질의 전시 컨텐츠를 국내 미술관에서 순회전을 통해 재활용한 첫 사례라는 점이 주목된다. 2월19일까지. (051)744-2602. 부산/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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