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임형순, 강태원, 박문일, 이상희, 이두헌. 1986년 2집 음반을 낼 당시 모습.
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 (86) 마지막 아이돌 캠퍼스 그룹 ‘다섯 손가락’
해마다 12월은 공연장마다 관객들로 북적이는 공연 성수기다. 지난 연말, 가장 문전성시를 이룬 음악공연 경향 중 하나로 이른바 ‘80/90 콘서트’를 뽑아도 별다른 이의는 없을 듯하다. 이 공연들이 10여년 전부터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해 2000년대 초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70/80 붐’의 연장선상에 있음은 물론이다. 1970년대 포크 가수들과 캠퍼스 그룹이 주축을 이뤘던 중장년층 대상 콘서트의 주인공은 점차 1980년대 브라운관을 주름잡은 왕년의 인기 가수들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으며 1990년대 초 활약한 가수들로 진용이 넓어지는 추세다.
지난 세밑 ‘80/90 콘서트’ 중 화제가 된 음악인들로는 바다 건너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이지연과 원준희, 그리고 20년 만에 다시 모인 그룹 다섯손가락을 들 수 있다. 특히 다섯손가락은 지난해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동방신기의 〈풍선〉의 원곡을 부른 이들로 주목받은 바 있다. 다섯손가락이 한 방송사 가요대전 무대에 동방신기와 나란히 올라 〈풍선〉을 함께 부르던 장면은 2006년 가요계의 인상적인 마지막 스냅사진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싶다.
1985년 3월, 다섯손가락은 〈새벽기차〉를 머릿곡으로 한 음반으로 데뷔했다. 이 음반의 뒷면은 색다르다. ‘임형순(보컬·홍익대 영문과 2), 이두헌(기타&보컬·동국대 경제학과 3), 최태완(키보드&피아노·홍익대 산업공학과 3), 박강영(드럼·추계예대 작곡과 3), 이우빈(베이스·서울대 전자공학과 3)’ 같이, 멤버들의 소속 대학은 물론 학과와 학년까지 자세히 적혀 있기 때문이다(실제 베이스를 연주한 인물은 세션 연주자 조원익이다).
지금 보면 촌스럽거나 아련하지만, 1970년대 말 대학생 가요제의 폭발적인 성공 이후 대학생 음악인의 음반에 그처럼 신상명세를 적는 것은 당시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황혼에 접어들고 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송골매, (이치현과) 벗님들, 건아들처럼 프로가 된 그룹사운드가 분투했지만, 청(소)년층의 귀가 헤비메탈과 동아기획 사단의 음악으로 급속히 쏠리는 현상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섯손가락은 ‘70/80 캠퍼스 그룹사운드 붐’의 거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부드럽고 팝적인 멜로디가 두드러진 다섯손가락의 음악은 앞선 캠퍼스 그룹의 투박한 질감이나 이후의 헤비메탈 밴드들의 거칠고 강렬한 포스와 달랐다. 맑은 음색과 섬세한 떨림이 두드러진 임형순(〈새벽기차〉 〈풍선〉)과 탁하고 진중한 이두헌(〈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이렇게 쓸쓸한 날엔〉)의 트윈 보컬 체제는 상보관계를 넘어 두 배의 효과를 발휘했다. 또 〈창가에서〉와 〈사랑할 순 없는지〉에서 보듯, 서정적이면서도 극적인 멜로디 전개는 강한 감응을 주었다. 다섯손가락 음악이 당대의 인기곡을 넘어 오랜 생명력을 지니게 된 요인으로 이두헌의 빼어난 가사를 빠뜨릴 수 없다. ‘수녀가 지나가는 그 길가에서 어릴 적 내 친구는 외면을 하고 길거리 약국에서 담배를 팔듯 세상은 평화롭게 갈 길을 가고’라며 거리 풍경을 짐짓 담담히 묘사하면서 그 안에 먹먹하고 헛헛한 마음의 풍경을 담아낸 〈이층에서 본 거리〉는 대표적이다. 1985~86년 다섯손가락은 아이돌 스타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지만, 2집을 끝으로 임형순이 탈퇴하면서 내리막을 피할 수 없었다. 이두헌 1인 리더 체제로 두 장의 음반을 더 내놓았지만 대중들의 시야에서 점차 멀어져간 것이다. 이와 함께 캠퍼스 그룹들의 풋풋한 향취도 사라져갔다.
이용우/대중음악 평론가
마지막 아이돌 캠퍼스 그룹 ‘다섯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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