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 앤 줄리엣
로미오 앤 줄리엣
애초부터 오리지널 공연으로 국내에 소개된 프랑스 뮤지컬은 2005년 〈노트르담 드 파리〉(1998년 초연) 이후 단 2년 만에 우리 관객에게 존재감을 각인하는 데 성공했다. 대중음악과 현대무용을 결합한 현대오페라 혹은 콘서트 스타일로 뮤지컬계의 크로스오버로 자리 잡으면서 기존 뮤지컬 애호층뿐 아니라 클래식이나 발레 애호가들까지 공연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로미오 앤 줄리엣〉(2001년 초연작,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역시 예술성 강한 뮤지컬이다. 어찌 보면 원작 희곡의 무게에 눌린다 싶을 만큼 충실히 사건을 재현하는 진지함이 오히려 극의 구축을 방해하지만 결국 신뢰를 보내게 한다. 여행객을 맞이하듯 증오의 도시 베로나를 소개하는 출발은 아주 자연스럽다. 몬터규가와 캐풀렛가 사이 ‘증오의 독’으로 물든 도시, 심지어 집안에도 증오와 반목이 꿈틀댄다. 이 틈에서 생겨나는 비극적 사랑, 누구나 알듯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뮤지컬은 노래 가사를 통해 신과 악마, 광기와 정열, 증오와 사랑 같은 낭만주의적 주제를 부각시키고 부차적인 인물들에게 성격을 주어 작품 전체 분위기와 연결시킨다. 티볼트는 증오의 적자이며 머큐쇼는 조롱자다. 심지어 줄리엣의 아버지와 유모 사이에도 희극적 톤의 반목이 끼어든다. 이들의 사연에서 표현되는 것은 근친상간적 애정, 그리고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응석받이 젊은이들의 고뇌 같은 것들이다.
특히 이 시대 프랑스든 한국이든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부족한 것 없는 도시 아이들’의 이야기는 줄리엣이나 로미오, 티볼트, 머큐쇼, 벤볼리오 같은 청년 모두에게서 표현된다. 원작의 틈을 벌려 삽입한 이런 이야기들은 시사적이고 본질적이며 하나하나 뜯어보면 흥미롭다. 하지만 그런 사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너무 가벼워져 그들의 죽음에는 비극성이 별로 없다.
개인감정의 세심한 표현에 비하면 직선과 곡선을 대립시킨 무대장치나 두 가문의 적대감을 표현하는 기법은 완성도는 높지만 상식적이다. 음악 역시 가벼운 편이며 감미롭지만 큰 변화가 없다는 약점이 있다. 하지만 역시 프랑스 뮤지컬의 가장 큰 무기는 우아함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예술과 철학의 역사에서 발원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노이정/연극평론가 voiv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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