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포니카 빌딩
스페인 ‘아르코 아트페어’ 가보니
1·2층 기획전 성황…현지 전문가 줄이어
젊은 설치예술가들 관객과 쌍방향 교감
큰무당 김금화씨 평화굿판 찬사 받아 백남준! 백남준! 세계 굴지의 미술품 장터는 이 비디오 거장을 연호하는 목소리 일색이었다. 15일 마드리드의 종합 전시장 이페마(IFEMA)에서 30여개 나라 259개 화랑이 참여한 가운데 개막하는 스페인의 국제 미술품 판매 전람회 ‘아르코 아트페어 2007’은 조짐부터 특이하다. 좌판도 차리기 전에 초대 손님격인 백남준에 대한 관심에 전시의 주인공격인 주빈국 한국의 화랑들이 묻혀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3일부터 입국한 화랑주들이 공항 부근 전시장에서 주섬주섬 작품 보따리를 푸는 동안 기획자 김홍희씨가 모아온 백남준의 한국 소장품들은 시내 중심가 그랑비아 거리의 상징인 13층짜리 텔레포니카 빌딩을 접수했다. 전신전화국으로 쓰인 이 빌딩은 30년대 내전 때 프랑코 파시스트 반란군에 맞서 포대를 설치하고 영웅적인 저항 투쟁을 벌였던 장소다. 그 자리에서 13일 ‘환상적이고 하이퍼리얼한 백남준의 한국 비전’이란 기획전이 빌딩 1, 2층 전시장에서 성황리에 개막해 한국의 주요 미술관과 기업 등이 소장한 <백팔번뇌> 등 백남준의 주요 작품들을 소개했다. 12일 밤 열린 백남준 심포지엄에도 레이너 소피아 미술관, 카사 아시아 등 현지 전문가들이 다수 참석했다. 세계적인 현대미술 컬렉션을 자랑하는 레이너소피아미술관에서도 지난해 연말부터 백남준의 초창기 작품을 다수 소개하는 미디어아트 회고전을 진행중이어서 백남준 바람은 한동안 화젯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젊은 작가들도 분투중이다. 시내 북쪽의 옛 물탱크 시설에서 진행하는 ‘대안공간 젊은 작가들의 시선’전은 13일 개막을 위해 탄광 노동자들처럼 시커먼 탱크 속에서 먼지를 마셔가며 한국 현대미술의 간이 저장고를 만들려는 이용백, 정은영씨 등 작가 10여명의 땀방울로 얼룩졌다. 옛 도살장 시설인 마타데로를 개조해 시작하는 민박 프로젝트는 김준, 양아치 등의 젊은 작가가 전시장에 아예 살면서 관객들과 교감하는 쌍방향 국제 영상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시내 게릴라 답사 작업도 시도한다. 사진가 주명덕 회고전, 광주비엔날레 출품작가들의 ‘뿌리를 찾아서’ 전 등도 스페인 민간기관의 인력, 공간 지원이 인상적으로 와닿았다. <엘파이스> 등 스페인 유력지들은 전면 특집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10일 마타데로에서 아르코의 번영과 살생 동물에 대한 위로의 굿을 벌이며 현지인들의 찬사를 받은 큰 무당 김금화씨는 “많은 갈등 속에 힘들게 준비한 전시, 이제 더이상 싸우지 말고 평화의 전시를 만들라”고 덕담을 던졌다. 마드리드/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스페인은 “실험성” VS 주빈국은 “상업성”
본 전시 콘셉트 혼선…30억 지원 성과 미미 이번 페어는 한국이 주빈국임을 고려해 문화관광부가 해외행사로는 사상 최대규모인 30억여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실제 전시를 보면 투입된 열정에 걸맞는 돋보이는 결과물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가운데서도 가나아트, 국제갤러리 등 14개 화랑이 30여명의 작가들과 출품하는 본 전시 아트페어가 특히 문제다. 총기획자 김정화씨는 주빈국 조직위와 스페인 현지 조직위와의 심각한 이견으로 개막 직전까지도 전시 컨셉에 대해 사실상 일치된 견해를 도출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아르코 조직위원장인 루데스는 젊은 실험적 작가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아트페어 본전시를 구성해 비엔날레적인 격조를 갖춘 아트페어를 원했으나 중견 작가 위주의 상업적 판매가 더 중요한 국내 화랑들과 이해관계가 충돌했다는 얘기다. 원래 총기획자였던 김선정씨가 지난해 문화관광부쪽과 불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간 뒤 스페인 조직위쪽과 바뀐 주빈국 조직위, 화랑 사이에 신뢰관계가 금이 간 것도 어려움을 더했다. 선정한 14개 화랑들의 경우 조직위가 지정한 작가가 화랑과 뜻이 맞지않아 출품을 포기하거나 화랑이 중견작가를 고집해 데리고 나온 사례도 있다. 전시방향의 윤곽이 잡히지않으니, 자연스럽게 홍보 전략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전시 1달도 남지 않은 지난 1월에야 지원예산 22억원이 지급되고, 시찰온 국회의원들의 5성급 숙소 배정에 더 신경쓰는 문화부 관료들의 타성도 취재진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익명을 요구한 주빈국 조직위 관계자는 “문화부의 전폭적인 전시 지원은 고무적이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예산집행이나 원칙이 없는 전시 진행과 준비 자세 등은 반드시 성찰해야할 과제”라고 말했다. 마드리드/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소피아 미술관도 한국이 주인공 박기원 특별전 충격작업 관객몰이
4층선 백남준 미디어아트 회고전 “어! 여기도 한국 작가가 전시를 하네….”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으로 이름높은 마드리드 중앙역 근처 레이너 소피아 미술관에 간 한국 관객들은 전시 작가의 방을 둘러보고 놀랄지도 모른다. 요즘 이곳 1층 특별 전시실에서 척 클로스, 조셉 앨버스 등의 세계적인 거장과 어깨를 견주며 한국 설치작가 박기원씨가 초대 기획전(19일까지)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개로 나뉜 천장 높은 전시방 벽면을 온통 젤 형태의 공업용 기름 덩어리인 그리스로 뒤덮어버린 충격적인 공간 설치 작업이다. 국내에서는 아르코의 관심에 가려졌지만, 지난해 12월19일부터 시작한 그의 초대전은 현지 언론과 미술계에서도 참신한 시도로 호평받으면서 연일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박씨는 충북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중견 작가로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도 반투명 가벽 설치물을 출품한 바 있고, 서울역에 역 ㄴ자 모양의 공공조형물을 세워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신발 벗고 들어가 그리스 냄새를 맡으며 적황빛의 공간을 떠돌아보는 환각을 유도하는 이 작업은 아르코 주빈국 조직위의 전 기획자 김선정씨가 출품을 꾀했다가 그의 사퇴로 소피아 미술관의 기획전 주인공이 되었다고 한다. 미술관 4층에서 열리고 있는 미디어 아트 회고전(4월2일까지)도 60년대초 백남준의 독일 초기 텔레비전 모니터와 텔레비전 로댕 등의 기발한 조형 작업들이 70년대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과의 퍼포먼스 영상과 함께 소개되어 묘한 감흥을 안긴다. 미디어아트의 아버지 백남준이 60년대 동료 영상작가 볼프 포스텔보다 뒤처진 것으로 나온 점이 아쉽지만, 빌 비올라, 게리힐, 문 다다스 등 미디어아트 거장들의 기술적 해석과 영상 실험들의 면면들을 체계적으로 엮었다. 또 도심 프라도 미술관과 마주보는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은 고갱, 피카소, 베크만, 코코슈카 등 근현대기 거장 화가 수십여명의 묻혀진 초상화, 자화상을 전 세계 미술관과 자기 컬렉션에서 추려 ‘거울과 가면’이라는 부제로 기획전(5월20일까지)을 꾸렸다. 이지적이면서도 서늘한 애수가 담긴 고갱 그림의 소녀 초상, 자신감과 냉소가 함께 서린 막스 베크만의 젊은 여성 초상, 자기 내면에 대한 자학, 세기말에 대한 불안이 핍진하게 반영된 에곤 쉴레, 키리코의 초상 등 가슴 설레는 초상화 걸작들을 숱하게 볼 수 있다. 마드리드/노형석 기자
젊은 설치예술가들 관객과 쌍방향 교감
큰무당 김금화씨 평화굿판 찬사 받아 백남준! 백남준! 세계 굴지의 미술품 장터는 이 비디오 거장을 연호하는 목소리 일색이었다. 15일 마드리드의 종합 전시장 이페마(IFEMA)에서 30여개 나라 259개 화랑이 참여한 가운데 개막하는 스페인의 국제 미술품 판매 전람회 ‘아르코 아트페어 2007’은 조짐부터 특이하다. 좌판도 차리기 전에 초대 손님격인 백남준에 대한 관심에 전시의 주인공격인 주빈국 한국의 화랑들이 묻혀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3일부터 입국한 화랑주들이 공항 부근 전시장에서 주섬주섬 작품 보따리를 푸는 동안 기획자 김홍희씨가 모아온 백남준의 한국 소장품들은 시내 중심가 그랑비아 거리의 상징인 13층짜리 텔레포니카 빌딩을 접수했다. 전신전화국으로 쓰인 이 빌딩은 30년대 내전 때 프랑코 파시스트 반란군에 맞서 포대를 설치하고 영웅적인 저항 투쟁을 벌였던 장소다. 그 자리에서 13일 ‘환상적이고 하이퍼리얼한 백남준의 한국 비전’이란 기획전이 빌딩 1, 2층 전시장에서 성황리에 개막해 한국의 주요 미술관과 기업 등이 소장한 <백팔번뇌> 등 백남준의 주요 작품들을 소개했다. 12일 밤 열린 백남준 심포지엄에도 레이너 소피아 미술관, 카사 아시아 등 현지 전문가들이 다수 참석했다. 세계적인 현대미술 컬렉션을 자랑하는 레이너소피아미술관에서도 지난해 연말부터 백남준의 초창기 작품을 다수 소개하는 미디어아트 회고전을 진행중이어서 백남준 바람은 한동안 화젯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젊은 작가들도 분투중이다. 시내 북쪽의 옛 물탱크 시설에서 진행하는 ‘대안공간 젊은 작가들의 시선’전은 13일 개막을 위해 탄광 노동자들처럼 시커먼 탱크 속에서 먼지를 마셔가며 한국 현대미술의 간이 저장고를 만들려는 이용백, 정은영씨 등 작가 10여명의 땀방울로 얼룩졌다. 옛 도살장 시설인 마타데로를 개조해 시작하는 민박 프로젝트는 김준, 양아치 등의 젊은 작가가 전시장에 아예 살면서 관객들과 교감하는 쌍방향 국제 영상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시내 게릴라 답사 작업도 시도한다. 사진가 주명덕 회고전, 광주비엔날레 출품작가들의 ‘뿌리를 찾아서’ 전 등도 스페인 민간기관의 인력, 공간 지원이 인상적으로 와닿았다. <엘파이스> 등 스페인 유력지들은 전면 특집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10일 마타데로에서 아르코의 번영과 살생 동물에 대한 위로의 굿을 벌이며 현지인들의 찬사를 받은 큰 무당 김금화씨는 “많은 갈등 속에 힘들게 준비한 전시, 이제 더이상 싸우지 말고 평화의 전시를 만들라”고 덕담을 던졌다. 마드리드/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아르코의 번영을 기원한 굿을 벌여 호평을 받은 큰무당 김금희씨 / 아르코 딸림 전시인 `뿌리를 찾아서'의 전시장. 작가 최정화씨 특유의 작품인 소쿠리 조형물을 높이 쌓아올렸다.
스페인은 “실험성” VS 주빈국은 “상업성”
본 전시 콘셉트 혼선…30억 지원 성과 미미 이번 페어는 한국이 주빈국임을 고려해 문화관광부가 해외행사로는 사상 최대규모인 30억여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실제 전시를 보면 투입된 열정에 걸맞는 돋보이는 결과물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가운데서도 가나아트, 국제갤러리 등 14개 화랑이 30여명의 작가들과 출품하는 본 전시 아트페어가 특히 문제다. 총기획자 김정화씨는 주빈국 조직위와 스페인 현지 조직위와의 심각한 이견으로 개막 직전까지도 전시 컨셉에 대해 사실상 일치된 견해를 도출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아르코 조직위원장인 루데스는 젊은 실험적 작가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아트페어 본전시를 구성해 비엔날레적인 격조를 갖춘 아트페어를 원했으나 중견 작가 위주의 상업적 판매가 더 중요한 국내 화랑들과 이해관계가 충돌했다는 얘기다. 원래 총기획자였던 김선정씨가 지난해 문화관광부쪽과 불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간 뒤 스페인 조직위쪽과 바뀐 주빈국 조직위, 화랑 사이에 신뢰관계가 금이 간 것도 어려움을 더했다. 선정한 14개 화랑들의 경우 조직위가 지정한 작가가 화랑과 뜻이 맞지않아 출품을 포기하거나 화랑이 중견작가를 고집해 데리고 나온 사례도 있다. 전시방향의 윤곽이 잡히지않으니, 자연스럽게 홍보 전략에서 뒤처지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전시 1달도 남지 않은 지난 1월에야 지원예산 22억원이 지급되고, 시찰온 국회의원들의 5성급 숙소 배정에 더 신경쓰는 문화부 관료들의 타성도 취재진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익명을 요구한 주빈국 조직위 관계자는 “문화부의 전폭적인 전시 지원은 고무적이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예산집행이나 원칙이 없는 전시 진행과 준비 자세 등은 반드시 성찰해야할 과제”라고 말했다. 마드리드/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위에서 내려다본 백남준 특별전 전시장. / 레이너 소피아 미술관에서 선보인 작가 박기원씨의 공간설치 작업.
소피아 미술관도 한국이 주인공 박기원 특별전 충격작업 관객몰이
4층선 백남준 미디어아트 회고전 “어! 여기도 한국 작가가 전시를 하네….”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으로 이름높은 마드리드 중앙역 근처 레이너 소피아 미술관에 간 한국 관객들은 전시 작가의 방을 둘러보고 놀랄지도 모른다. 요즘 이곳 1층 특별 전시실에서 척 클로스, 조셉 앨버스 등의 세계적인 거장과 어깨를 견주며 한국 설치작가 박기원씨가 초대 기획전(19일까지)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개로 나뉜 천장 높은 전시방 벽면을 온통 젤 형태의 공업용 기름 덩어리인 그리스로 뒤덮어버린 충격적인 공간 설치 작업이다. 국내에서는 아르코의 관심에 가려졌지만, 지난해 12월19일부터 시작한 그의 초대전은 현지 언론과 미술계에서도 참신한 시도로 호평받으면서 연일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박씨는 충북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중견 작가로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도 반투명 가벽 설치물을 출품한 바 있고, 서울역에 역 ㄴ자 모양의 공공조형물을 세워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신발 벗고 들어가 그리스 냄새를 맡으며 적황빛의 공간을 떠돌아보는 환각을 유도하는 이 작업은 아르코 주빈국 조직위의 전 기획자 김선정씨가 출품을 꾀했다가 그의 사퇴로 소피아 미술관의 기획전 주인공이 되었다고 한다. 미술관 4층에서 열리고 있는 미디어 아트 회고전(4월2일까지)도 60년대초 백남준의 독일 초기 텔레비전 모니터와 텔레비전 로댕 등의 기발한 조형 작업들이 70년대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과의 퍼포먼스 영상과 함께 소개되어 묘한 감흥을 안긴다. 미디어아트의 아버지 백남준이 60년대 동료 영상작가 볼프 포스텔보다 뒤처진 것으로 나온 점이 아쉽지만, 빌 비올라, 게리힐, 문 다다스 등 미디어아트 거장들의 기술적 해석과 영상 실험들의 면면들을 체계적으로 엮었다. 또 도심 프라도 미술관과 마주보는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은 고갱, 피카소, 베크만, 코코슈카 등 근현대기 거장 화가 수십여명의 묻혀진 초상화, 자화상을 전 세계 미술관과 자기 컬렉션에서 추려 ‘거울과 가면’이라는 부제로 기획전(5월20일까지)을 꾸렸다. 이지적이면서도 서늘한 애수가 담긴 고갱 그림의 소녀 초상, 자신감과 냉소가 함께 서린 막스 베크만의 젊은 여성 초상, 자기 내면에 대한 자학, 세기말에 대한 불안이 핍진하게 반영된 에곤 쉴레, 키리코의 초상 등 가슴 설레는 초상화 걸작들을 숱하게 볼 수 있다. 마드리드/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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