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희씨
연극 ‘경숙이, 경숙이아버지’ 경숙 어메 고수희씨
‘친절한 금자씨’ ‘분홍신’…
‘개성파 조연’ 다져가다가
연극판으로 돌아왔다
마약같은 카타르시스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한나는 얼굴과 외모 때문에 가수로 데뷔하지 못하고 무대 뒤에서 얼굴 예쁜 립싱크 가수 대신 노래를 부른다. 모든 것에 외모가 더 중시되는 사회, 그 속에서도 가장 극명한 곳이 연기자들의 세계다. 〈미녀는 괴로워〉의 한나처럼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예쁘지 않으면 주연급 배우로 성장하기란 어렵다. 연극배우 고수희(31). 1999년 연극 〈청춘예찬〉으로 데뷔했다. 올해로 연기자 생활 8년째. 그러나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고수희란 이름은 생소하다. 대신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와 같은 감방에 있던 인육 먹는 마녀’라고 하면 그때야 ‘아, 그 여자’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고씨는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다. 이영애, 김혜수가 될 수는 없었다. 〈… 금자씨〉의 마녀, 발목이 잘려 죽는 ‘의사’(영화 〈분홍신〉), 다방 아가씨(영화 〈너는 내 운명〉)에 불과했다. 대신 아주 조금 등장하는 그런 역에서도 고수희는 확실한 연기로 자기 몫을 충실히 해오면서 조금씩 ‘연기 잘하는 개성파’ 배우로 자기 자리를 넓혀왔다. 그렇게 연기로 자신을 담금질해온 그가 이제 연극판에서 마침내 주인공이 됐다. 지난달 25일부터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 세 주인공 중 하나인 경숙 어머니 역으로 극을 이끌어가고 있다. 〈경숙이, 경숙아버지〉는 배우 조재현씨가 출연해 처음 화제를 모았고, 이제는 고수희가 맛깔난 연기로 무게중심을 잡아주며 요즘 연극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품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나이는 이제 서른을 갓 넘었지만 한 세대 위 역을 맡은 고수희의 모습에서 ‘마녀’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대신 어리숙하면서 순수하게 나이든 ‘경숙 어메’뿐이다. ‘뚱뚱’했던 영화 속 모습과 달리 ‘통통’했다. 연기를 위해 최근에는 두달 동안 18㎏을 감량하기도 했다. “스트레스가 왜 없겠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 받아들여야죠. 영화에선 조연급으로 출연한 게 전부였는데, 그래도 연극에서는 뚱뚱해서 주인공이 될 수 있었잖아요.”
외모 하나로 스타가 된 배우들에 대한 부러움이나, 가난한 연극판을 외롭게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운이 좋은 배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현재 극단 골목길 배우이자 기획팀 직원으로, 대학로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배우다. “연극은 마약 같은 힘이 있어요. 왜 연극하냐고요? 영화한 뒤 연극판에 돌아오지 못하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아서. 연극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좋아요.”
그는 애초부터 연기에 큰 뜻을 두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대학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는 언니의 연습상대가 되어주면서 연기에 호감을 가졌고, 고등학교에서 연기를, 대학에서 방송연예를 전공했지만 연기가 그의 인생의 전부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일반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는데, 98년 우연히 배우 박해일이 권해 연극 〈청춘예찬〉을 통해 데뷔한 것이 인생을 바꿔놓았다. 박씨와 그가 알몸으로 나란히 앉은 포스터가 화제였던 작품이다. 당시 그는 연극 연습시간을 뺀 나머지 하루종일을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다. “그 포스터가 좀 야했잖아요. 제가 낮에 붙이고 다닌 포스터를 밤에 부모님이 모조리 떼어내더라고요. 집안 망신 시킨다고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공무원 시험을 권유하던 부모님도 결국은 연기에 대한 그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서른을 넘기며 고수희는 연기자로 꽃을 피우려 한다. 지난해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상을 받고 3년 안에 쪽박 찬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어요. 변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대학로를 지키는 배우가 될 거예요.”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동숭아트센터 제공
‘개성파 조연’ 다져가다가
연극판으로 돌아왔다
마약같은 카타르시스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한나는 얼굴과 외모 때문에 가수로 데뷔하지 못하고 무대 뒤에서 얼굴 예쁜 립싱크 가수 대신 노래를 부른다. 모든 것에 외모가 더 중시되는 사회, 그 속에서도 가장 극명한 곳이 연기자들의 세계다. 〈미녀는 괴로워〉의 한나처럼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예쁘지 않으면 주연급 배우로 성장하기란 어렵다. 연극배우 고수희(31). 1999년 연극 〈청춘예찬〉으로 데뷔했다. 올해로 연기자 생활 8년째. 그러나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고수희란 이름은 생소하다. 대신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와 같은 감방에 있던 인육 먹는 마녀’라고 하면 그때야 ‘아, 그 여자’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고씨는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다. 이영애, 김혜수가 될 수는 없었다. 〈… 금자씨〉의 마녀, 발목이 잘려 죽는 ‘의사’(영화 〈분홍신〉), 다방 아가씨(영화 〈너는 내 운명〉)에 불과했다. 대신 아주 조금 등장하는 그런 역에서도 고수희는 확실한 연기로 자기 몫을 충실히 해오면서 조금씩 ‘연기 잘하는 개성파’ 배우로 자기 자리를 넓혀왔다. 그렇게 연기로 자신을 담금질해온 그가 이제 연극판에서 마침내 주인공이 됐다. 지난달 25일부터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 세 주인공 중 하나인 경숙 어머니 역으로 극을 이끌어가고 있다. 〈경숙이, 경숙아버지〉는 배우 조재현씨가 출연해 처음 화제를 모았고, 이제는 고수희가 맛깔난 연기로 무게중심을 잡아주며 요즘 연극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품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나이는 이제 서른을 갓 넘었지만 한 세대 위 역을 맡은 고수희의 모습에서 ‘마녀’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대신 어리숙하면서 순수하게 나이든 ‘경숙 어메’뿐이다. ‘뚱뚱’했던 영화 속 모습과 달리 ‘통통’했다. 연기를 위해 최근에는 두달 동안 18㎏을 감량하기도 했다. “스트레스가 왜 없겠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 받아들여야죠. 영화에선 조연급으로 출연한 게 전부였는데, 그래도 연극에서는 뚱뚱해서 주인공이 될 수 있었잖아요.”
고수희씨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동숭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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