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선의 2집 <나 홀로 뜰 앞에서>
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 (87) ‘댄스가수’ 김완선
1980년대를 대표하는 ‘댄싱 퀸’ 김완선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던가. <오늘 밤>이 수록된 데뷔 음반이 1986년 4월께, <나 홀로 뜰 앞에서>가 수록된 2집 앨범이 1987년 5월 발표됐으니 대략 1986~7년의 ‘어수선한’ 시점에 등장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몸선을 강조한 옷차림에 연체동물처럼 춤을 추던 틴에이저 소녀에게 오감을 자극받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그녀에 대한 평가가 관대한 것을 보니 이게 반드시 남성의 시선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조금 각도를 달리 해서 당시 음악산업 ‘시스템’ 속에서 김완선을 살펴보기로 하자.
김완선의 주변에는 흥미로운 인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먼저, 김완선이 ‘인순이와 리듬 터치’의 백업 멤버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인순이의 뒤에는 고(故) 한백희라는 전설적인 여성 매니저가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조카였던 김완선도 대중가요계의 정상으로 이끌었다. 이미 고인이 되어 정확한 정보는 얻기 어렵지만 한 자료에 따르면 한백희 역시 ‘미8군 쇼 가수’ 출신이라 하니 미8군 쇼 무대가 대중연예계에 미친 길고도 넓은 영향을 재확인할 수 있다. 김완선의 히트곡 가운데 하나인 <리듬 속의 그 춤을>의 작사·작곡가가 놀랍게도 신중현이라는 점도 전세대의 인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인순이가 1980년대 초 ‘신중현과 뮤직 파워’에서 활동하면서 신중현과 연을 맺은 사실을 고려하면 이 인맥도 자연스럽다.
두 번째로 흥미로운 사실은 1집과 2집에 수록된 곡들 대부분을 산울림의 멤버 김창훈이 작사·작곡했다는 점이다. ‘존중받는 록 밴드’ 산울림과 ‘경시되는 댄스가수’ 김완선 사이가 이렇게 가깝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외일 것이다.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나 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를 비롯하여 3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들이 이장희가 만든 곡들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김완선의 경력의 절정인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장무도회>가 수록된 5집(1991)에서는 손무현이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았다. 이 이야기는 많이 알려졌으니 생략.
이상에서 보듯 김완선이라는 댄스 가수의 뒤에는 신중현·김창훈·이장희·손무현 등 한국대중음악의 역사를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거물급 뮤지션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 말은 그녀가 부른 곡(노래)들의 퀄리티에는 의심의 여지가 작다는 뜻이다. 그녀의 가창력에 대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서 쉽게 외면하지 못했던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댄스에 대해 이데올로기적으로 거부감이 있어도, 멜로디가 귀를 잡아 끈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러고 보면 ‘춤 잘 추고 얼굴 예쁜 젊은(혹은 어린) 아이’ 하나가 있을 때 각 방면의 전문가가 참여해 스타를 만드는 시스템이 아주 최근에 탄생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김완선이 1992년 홍콩과 타이완으로 건너가 세 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경력을 이어간 사실을 보면, 이른바 ‘한류’ 시스템마저도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모든 성공적 사건에는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던 선례가 있는 법인가.
신현준/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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