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금기를 넘어선 사랑의 비극

등록 2007-03-04 17:41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미국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1928~ )의 첫 희곡 〈동물원 이야기〉(1959) 첫 대사는 이렇다. “난 동물원에 갔다 왔소.” 그의 ‘동물원 이야기’는 바로 인간의 이야기였다. 반세기가 지난 뒤 올비는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2002년 작)에서 염소와의 수간을 지렛대 삼아 인간의 사랑과 그 한계를 논한다.

주인공인 마틴은 그야말로 완벽한 가정의 가장이며 건축가로서 최고의 성가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50살 생일날, 실비아란 염소와 6개월 동안 사랑해온 사실이 폭로되면서 안정적이던 그의 생활과 그의 가정은 파멸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사랑스런 눈을 가진 염소와 우연적이고 이유 없는 사랑에 빠지다? 그것은 사랑의 ‘설명할 수 없음’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은유이면서도 사랑의 금기를 단번에 깨버리는 놀라운 사건이다.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그대로 신화적 혹은 우화적 언어로 들리는 이 사건은 현실적인 사태의 심각성과는 달리 언어화하면 할수록 우스꽝스럽다. 순수한 사랑을 설파하는 주인공은 부인과 친구, 동성애자인 아들에게까지 질책당하고 사실상 돌파구라곤 없어 보인다.

젊은 연출가 신호는 빅토리아풍의 가구와 서가로 실내를 장식하여 중산층 지식인의 가정을 표현하면서도 무대 양옆에 문짝 없는 문틀을 세워 이 집의 취약함을 드러냈다. 연출의 무게중심은 배역과 대상에 대한 정확한 해석에 놓인 듯하다. 하지만 부인(스티비) 역의 임선희는 너무 딱딱거리는 어조로 인물을 단순화한다. 친구(로스) 역의 방승구에게는 관습적인 연기 스타일이 남아 있으며, 아들(빌리) 역의 정청민은 목소리 조절에 문제점을 보였다. 마틴 역의 김정호는 특유의 어투가 있기는 해도 집중력 있는 대사로 극을 이끌어간다.

극중 나이보다 적은 이들 배우의 연령을 고려한다면 비교적 정제된 공연이다. 〈다우트〉, 〈졸업〉 등 원작과 묘하게 초점을 달리하여 상업적으로 공연하는 요즘 다른 연극들과 비교하면 마지막의 그리스 비극적 결론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잘 조직된 진지한 작품이다.

실비아, 그것은 왜 염소인가. 비극의 어원이 염소에서 나왔다는 것 말고라도 염소에게는 희생자의 이미지가 있다. 사회에서 해결되지 않는 인간의 순수한 열정, 반항으로 균열되는 우리의 영혼은 염소와 함께 피 흘리는 것이다. 25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노이정/연극평론가 voiver@hanmail.net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