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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필진] 한강 머리계 ‘영좌 할아버지’

등록 2007-03-07 13:38

윌리 세일러 <낚시꾼(Fishman)> 에칭(다색동판) 29 x 21cm, 1956-1957년 사이
윌리 세일러 <낚시꾼(Fishman)> 에칭(다색동판) 29 x 21cm, 1956-1957년 사이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에서 삶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얼굴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혀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살면서 이 세상 풍파를 다 견뎌냈다는 듯한 표정 으로 그냥 앞을 바라볼 뿐이다. 미국화가의 작품이라 명제를 Fishman이라고 했는데, 할아버지 등 뒤에 지름이 일미터가 남는 뜰망이 있고, 배 왼편으로 강 기슭과 나무 몇그루가 보이니,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가 아니라 강에서 배를 타고 민물고기를 잡는 낚시꾼이다.

이 작품이 만들어진 1950년대 후반 한강에서는 농어, 메기, 붕어, 잉어, 숭어, 누치 같은 물고기가 많아, 실패나 얼레에 낚싯줄을 감아 고기를 낚는 견지낚시꾼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낚시대가 보이지 않고 뜰망만 보이니, 이 할아버지도 견지낚시를 하시는 분이다. 견지낚시는 우리나라의 전통 낚시법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겸재 정선의 그림에서도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겸재 정선 <소요정> 부분 비단에 채색 24.7 x 33.8cm, 영조 18년(1742)경 (개인소장)
겸재 정선 <소요정> 부분 비단에 채색 24.7 x 33.8cm, 영조 18년(1742)경 (개인소장)

낚시꾼들이 모여 살던 한강가 마을에서는, 팔당댐이 완공돼서 더 이상 한강에서 낚시를 할 수 없게 된 1973년 까지 협동어로를 위한 머리계(두계)라는 조직이 있었다. 그리고 낚시꾼 중 경험이 많고 나이든 어른을 '영좌'로 모셔 '영좌 할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하니, 이 작품의 주인공 할아버지를 '영좌 할아버지'라고 생각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하다. 수심이 깊은 강 가운데서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낚시대가 아니라 낚시줄로 팔뚝만한 잉어나 숭어, 누치를 낚아내는 일은 '영좌'의 실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낚시꾼> 부분
<낚시꾼> 부분

당시 낚시꾼들은 잡는 고기 종류에 따라 그물눈의 크기가 다른 뜰망을 갖고 다녔다는데, 할아버지 뒤에 있는 뜰망의 틈새가 그리 좁지 않다. 따라서 뚝섬여울에서 줄공치 견지를 하던 분은 아니고, 노량진 부근에서 빙어를 낚던 '노들 낚꾼'이나 흑석동 부근에서 숭어를 낚던 '검은돌 낚군' 혹은 팔당이나 양평 부근에서 잉어를 잡아 생계를 꾸려가던 낚시꾼이다. 이 작품은 독일계 미국화가 윌리 세일러가 1956년부터 제작한 12점의 '한국시리즈' 중의 하나다. 에칭이라고 불리는 동판화 기법으로 만들었는데, 엄격할 정도의 섬세한 표현과 눈가의 잔주름조차 놓치지 않은 극사실적 기법이 돋보인다.

<낚시꾼>은 윌리 세일러의 '한국시리즈' 중 인물 표현이 가장 잘된 작품이다. 골이 깊은 이마 주름과, 눈가의 주름 그리고 턱의 허연수염은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던 우리나라 할아버지들의 전통적 모습을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당시 윌리 세일러는 일본에 거주하면서 같은 작품을 흑백 동판화와 다색 동판화로 만들었는데, 그의 '한국시리즈'는 미국 신문인 에 1957년 5월 19일 부터 연재되었다.

윌리 세일러 관련기사 <Pacific Stars and Stripes>1957년 5월 19일
윌리 세일러 관련기사 1957년 5월 19일

윌리 세일러는 1956년부터 1960년 6월까지 3번에 걸쳐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시리즈'를 만들었는데, 한국소재 작품이 일본 소재 작품이나 다른 동남아 나라 소재 작품에 비해 수준이 월등하다. 신문 연재를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기에 긴장감과 함께 작가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했기 때문일 것이고, 그로 인해 당시의 삶의 모습이 당시 우리나라 화가들에게서는 시도되지 않았던 동판화로 남겨졌다. 그는 '한국시리즈'는 인물을 통해 당시 우리나라 사회를 매우 생생하게 보여줬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린아이부터 소년들 그리고 시장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들과 중년 여인, 할아버지, 할머니등 매우 다양하고, 도시의 삶보다는 시골의 삶을 표현했다.

윌리 세일러 <마을 이장(Village Elder)> 에칭(다색동판), 29 x 21cm 1956-1957년 사이
윌리 세일러 <마을 이장(Village Elder)> 에칭(다색동판), 29 x 21cm 1956-1957년 사이

이 작품은 당시 시골 마을의 이장 집 앞 풍경이다. 번듯한 기와집과 인품이 넉넉해보이는 이장님의 여유가 잘 어울리게 표현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이장님들은 동네 사정과 특히 노인들의 사정을 꿰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여유도 있고 마음도 너그러운 토박이 할아버지들이 맡아 마을의 대소사를 관장했다. 외국인 화가지만 그런 시골 마을 사정을 파악한 듯 화면 곳곳에 필요한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마을 이장> 부분
<마을 이장> 부분

당시 이장님 집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동네 어른들이 심심치 않게 찾아왔고, 두세명 모이게 되면 동네 돌아가는 일 부터, 동네 젊은이들의 예의 범절 걱정, 날씨 걱정, 나라 걱정을 했다. 위의 그림에서도, 갓을 쓰고 두루마기 입은 할아버지는 성격이 까다롭게 보인다. 그런 어르신일 수록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열심히 말하고 있고, 등이 보이는 할아버지는 곰방대와 함께 뒷짐 진 채 갓 쓴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어 주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 동네에서 볼 수 있던 모습이다.

그런데 외국인 화가들에게는 이렇게 동네 집 앞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1930년의 우리나라의 여러 모습을 목판화로 만들었던 미국여류화가 릴리안 밀러 역시 비슷한 소재의 작품을 남겼다. 돌담과 창문의 형식도 비슷하고, 갓쓰고 도포입은 중년남자가 오른손에 곰방대를 들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삶을 바라보는 두 화가의 감성은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감성의 친연성은 두 화가 모두 우리나라의 도시 풍경을 한점도 남기지 않는데서도 확인되니, 두 화가는 가장 우리나라다운 풍경과 삶의 모습은 도시가 아니라 시골에 있다고 파악한 것이다.

<마을 이장> 부분
<마을 이장> 부분

이 할머니는 이장님의 부인으로 보인다. 요즘 시골에는 젊은이들이 없어 이렇게 손주를 등에 업어 주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며느리도 함께 살면서 낮에는 밭에 나가 일을 했으니 낮에 애들 보는 일은 할머니 몫이었다. 그러나 애를 보는 일은 쉽지 않아 할머니들끼리 모이면, 차리리 밭에 가서 김을 매는게 낫다는 푸념들을 하면서도 손주 자랑을 빠트리지 않던 시절의 모습이다. 당시 흔치 않았던 담요에서 집안의 풍족함을 엿볼 수 있고, 손주의 머리에 털모자까지 씌운 모습에서 할머니의 자상한 손주사랑이 엿볼 수 있다. 돌과 벽돌로 만든 담과 창문을 누렇게 칠한 전통적 한옥의 모습도 꼼꼼하게 묘사했으니, 화가가 우리나라 한옥의 독창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윌리 세일러는 마을의 이장을 통해, 시골 마을을 통해 내려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삶의 모습들을 표현하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Pacific Stars and Stripes> 1957년 5월 19일
1957년 5월 19일

윌리 세일러는 우리나라 50년대 중반의 삶의 모습을 따뜻한 시각으로 12점의 동판화로 만들었고, 그 작품들을 신문에 연재했다. 우리나라 소재 작품이 외국 신문에 연재된 것은 처음이지만, 그 작품들은 아직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지난번 '밴댕이 장수를 그린 미국화가'에 이어 또 다른 2점의 작품을 소개하고, 앞으로 기회가 되는대로 나머지 작품들도 소개할 예정이다. 우리나라가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 우리의 모습을 비하하지 않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표현했고, 그런 화가의 관점은 그림 실력이나 표현력의 한계보다 더 중요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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