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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살상의 충격’ 음울한 세상을 후벼파다

등록 2007-03-20 17:53수정 2007-03-21 11:51

막스 베크만이 1914년 찍은 동판화 〈전쟁선포>. 전쟁의 불안감을 직시하는 군중들의 표정과 술렁거리는 분위기가 묻어나온다.
막스 베크만이 1914년 찍은 동판화 〈전쟁선포>. 전쟁의 불안감을 직시하는 군중들의 표정과 술렁거리는 분위기가 묻어나온다.
독일 표현주의 거장 막스 베크만 판화전
1914년 1차 세계대전은 유럽인들의 열광 속에 시작됐다. 제국주의 강국들의 패권 욕망이 제 나라 국민들의 과열된 애국 환상을 부추겨 벌인 전쟁이었다. 그러나 1년도 못 가 전란의 참화는 자본주의 기계 문명에 대한 거대한 혐오와 공포증을 낳았다. 참호 속에서 만신창이로 나동그라진 병사들의 주검과 부상자 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후방 노약자들까지 전쟁기계로 만든 총력전은 사람들의 넋을 공황으로 몰아넣었다.

서울대 미술관이 새봄에 내놓은 기획전 ‘예술가와 시대의 자화상’의 주인공인 화가 막스 베크만(1884~1950)은 이 대전란의 참극을 병사로 겪은 뒤 예술 인생의 방향을 틀어버렸다. 그가 강렬한 색채와 선, 신랄하고 뒤틀린 듯한 형상을 보여주는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그림의 거장으로 꼽히는 것은 전쟁 뒤 염세의 시대를, 반전 메시지와 우울한 군상으로 표현하는 데 진력했기 때문이었다. 위생병으로 독일군에 자원입대했던 19살의 베크만은 원래 옛 신화의 묘사에 빠졌지만, 참호 곳곳에서 동료들이 악살박살난 주검으로 변하는 전장 풍경에서 심리적 충격을 받아 전후 사람들을 기피하게 됐고, 화풍도 돌변한다.

그의 대표적 전쟁 판화인 〈수류탄〉. 수류탄이 폭발하는 순간 폭사당하는 병사들의 고통스런 한순간을 거칠고 왜곡된 선으로 담았다.
그의 대표적 전쟁 판화인 〈수류탄〉. 수류탄이 폭발하는 순간 폭사당하는 병사들의 고통스런 한순간을 거칠고 왜곡된 선으로 담았다.
1차대전 참전뒤 화풍 반전
참호전에서 목격한
박살난 주검과 뒤틀린 형상
화면 가득 신경질적인 선으로

미술관 쪽은 1, 2차 세계대전의 심리적 상처를 고스란히 흡수했던 독일 거장의 고통을 목판·동판·석판화로 보여주고자 했다. 베를린에 정착한 1차 세계대전 이전과 전쟁기, 전후 프랑크푸르트 작업 시절, 30년대 나치스 탄압과 암스테르담 망명기까지로 나누어 그의 고뇌가 묻은 판화들을 걸었다. 인상주의풍의 몽환적 신화, 성경 그림들이 전쟁 뒤 정신적 탈진을 표상하는 전쟁 관련 동판화로 탈바꿈하는 대목과 시대상황이 절절히 스민 괴팍스런 자화상들을 주시할 만하다. 수류탄이 터지는 순간 주위 병사들의 공포 어린 모습(〈수류탄〉), 고깃덩이처럼 널브러진 야전병원의 주검들(〈시체실〉), 전란의 비극을 슬퍼하는 여인의 처절한 모습(〈눈물을 흘리는 여인〉) 등을 찍은 동판화들은 마치 충혈된 듯한 겹쳐그은 예민한 선들로 이뤄져 있다. 전후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프랑크푸르트에 머물며 그린 작업들은 그 특유의 꽉 찬 구도 속에 냉소, 위선, 퇴폐를 머금은 독일인 군상들의 전형이 틀잡히는 시기다. 베를린의 사교장 풍경, 음울한 지식인 유한층의 군상들은 전란 뒤 불안과 혼란으로 점철된 바이마르 시대 독일의 적나라한 정신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나치 집권 뒤 퇴폐 미술로 찍혀 암스테르담으로 피한 뒤 내놓은 〈낮과 꿈〉 연작집 등의 판화들은 인물·풍경·신화 등의 주제들이 특유의 왜곡된 공간 속에서 엉킨 선묘로 나타난다. 예리한 송곳으로 가늘고 신경질적인 선들을 새기는 동판화를 즐겨 찍은 베크만 판화는 인물 들어찬 빽빽한 화면에 전후 군상들의 뒤틀린 심리를 핍진하게 묘사하곤 한다. 미국으로 이주해 숨질 때까지 인물에 대한 관심을 고집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베크만은 국내 관객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멘도르프, 바젤리츠, 뤼페르츠 같은 독일 신표현주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예술적 대부로서 서구 미술사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의 화력을 대표하는 강렬하고 왜곡된 이미지의 채색 유화가 없고, 단순 연대기 순으로 고만고만한 크기의 판화 소품들을 길게 이어붙인 전시장 얼개는 문외한 관객들에게 다소 버거워 보이기도 한다. 6월22일까지. (02)880-9504.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그의 대표적 전쟁 판화인 〈수류탄〉. 수류탄이 폭발하는 순간 폭사당하는 병사들의 고통스런 한순간을 거칠고 왜곡된 선으로 담았다.
그의 대표적 전쟁 판화인 〈수류탄〉. 수류탄이 폭발하는 순간 폭사당하는 병사들의 고통스런 한순간을 거칠고 왜곡된 선으로 담았다.
<아드미랄스 카페> 1911년. 리소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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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로비> 1922년 베를린 여행 포트폴리오 중에서. 리소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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