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북촌 미술동네는 젊은 작가들의 난장으로 북적거린다. ‘쿠쿠쿵!’ 비디오 영상이 기계들의 굉음을 토해내고, 책 후벼파고 침과 자석을 구멍에 눌러 넣은 예민한 미니 설치작품이 눈을 찌른다. 여관이 현대미술 저장고로 바뀌었고, 한옥 발굴 현장이 설치작업으로 변한 경우도 있다. 화랑들 주문에 붕어빵 같은 그림들을 줄줄이 찍어내는 미술시장의 트렌드와 맞서 상상력의 격조를 고집하는 그들의 영상, 설치 작업들이 새삼 소중해지는 시점이다.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은 젊은 유망주 4명을 발굴·전시하는 ‘금호영아티스트’전(4월15일까지·02-720-5114)을 열고 있다. 2층 안정주씨의 방. 질주하는 소주공장 생산라인의 기계음과 철거 포크레인의 포효(?)가 영상과 함께 실내를 울린다. 숨막히는 속도감으로 소주 채우고 마개가 씌워지는 생산라인의 병들은 획일적인 일상을 속도감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치환된다. 학교 건물을 허무는 공룡 같은 포크레인의 집게발 영상 또한 소용가치에 따라 생산, 폐기를 되풀이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은유라 할 수 있다. 1층 김희정씨의 작업은 여성성의 색깔인 하양과 핑크색의 왜곡된 본질을 까발린다. 고깃덩어리, 깨진 달걀, 남성의 성기 조형물에까지 덧입힌 이 두 색깔은 기실 왜곡된 성적 구실이 개입된 더러운 색으로 드러난다.
그 윗쪽 팔판동 갤러리 인에서 전시(4월4일까지·02-732-4677)중인 함연주씨는 머리카락을 그물처럼 짠 설치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머리카락으로 짠 그물 계단과 모자이크 그림, 책의 표면을 파고 머리카락을 심거나 바늘을 넣은 소품 작업 등을 통해 미물의 존재감을 투시하는 시선의 심화한 깊이를 보여주었다.
서울 홍대 앞 갤러리 꽃(02-6414-8840)에서는 난다와 달리롤이란 이름으로 활동중인 블로그 작가 2명이 그들만의 온라인 세상을 통째로 옮겨다 놓았다. ‘2개의 방’이란 제목의 이 전시( 31일까지)는 기호가 난무하는 온라인상의 블로그 가상 공간을 통째로 실제 벽면에 확대해 붙인 구도다. 특정 무늬나 색깔을 되풀이해 만든 꽃잎, 음표 등의 캐릭터 이미지(달리롤)와 인터넷에서 마구 퍼와 합성시킨 도시와 사람들의 잡탕풍경(난다) 등을 볼 수 있다. 서울 인사동 노암갤러리의 지효섭 전(4월1일까지· 02-720-2235)은 붓질이 난무하거나 물감이 흘러내린 우연한 형상들로 작가의 내면 풍경이나 가상의 동화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기묘한 분위기의 그림들을 걸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