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택 작 <자라는 실내>.
전통화·유화 경계 넘어서는 유근택 ‘삶의 피부’전
경주 남산의 숲이 그려진 화폭을 들고서 화폭과 똑같은 숲 속을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사나이. 빽빽하게 잡목 쳐진 숲 속 길을 흐릿한 형상의 그가 전진해간다. 그 길은 거친 숲길이자 현재 한국화 그림이 이루지 못한 미답의 영역으로 가는 길이다.
서울 견지동 동산방 화랑 1~3층에 걸쳐 근작전 ‘삶의 피부’(10일까지)를 열고 있는 소장 한국화가 유근택씨의 <어떤 그림>은 이처럼 비장하다. 작가는 대개 사람들이 눈여겨 보지 않았던 틈 혹은 사이의 공간을 ‘탱크’처럼 밀고 들어간다. 전통 수묵화의 붓질로 낯익은 아파트 거실이나 공원, 정원 등의 공간 속에 꾸물거리는 여러 사물들의 숨은 모습들, 경주 남산에서 새롭게 알게된 자연의 시간들을 여백 없이 빽빽하고 모호한 실체로 그렸다. 당연히 전통 풍경화와는 극명하게 다르며, 현대적 유화와도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집 실내와 바깥 정원, 그리고 진동하는 숲 등으로 크게 작품들을 나눴습니다. 무엇보다 최근 심취한 고도 경주 남산의 다양하고 미묘한 풍경들에 빠져 그린 그림들을 스스로 주목하고 싶습니다. 크게는 저를 둘러싼 삶의 피부를 드러내고 싶었고, 풍경 속 시간의 흐름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지요.”
그가 말한 삶의 피부란 것은 무엇인가. 아파트 거실에 자라난 식물, 옷 등이 둥둥 떠있는 <실내> 연작이나 보는 이에게 말을 걸듯 표면의 그림자가 어룽거리는 아파트 뒷채의 풍경 등에서 보이듯, 낯설게 다가오는 일상 공간의 느낌을 작가는 시각화하려 애써왔다. 그런 노력들은 지난해 내내 눈방울 등을 맞으며 경주 남산골에서 ‘시간이 소멸되는’ 풍경을 호흡하고 남기는 작업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낯설면서도 친숙하고, 신비감을 주면서도 지극히 냉정한 현실이 되는 유근택 그림의 양가성은 그를 한국화단에서 서구 현대미술 언어와 유연하게 소통하는 몇안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동서양 그림의 경계를 우뚝하게 넘어가려는 그를 평론가 성완경씨는 “동양화의 윤택하고 섬세한 관능이 현대 회화에 어떻게 빛을 던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평했다. (02)733-5877.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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