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섭의 동물조각품들은 삼등신인 점에서 사실성보다는 동화나 설화의 이야기를 머금고 있다. ‘앞으로 앞으로’
돌조각가 한진섭 개인전
봄소풍온 돼지가족·자동차 운전하는 말
의인화된 동물 30점 ‘인간과의 공존 30년째 돌 속에서 ‘인간’의 형상을 뽑아내 온 조각가 한진섭(51)씨가 이번에는 동물들을 뽑아냈다. 목소리는 예전과 다름없는 평화와 조화, 그리고 공존. 가나아트갤러리(02-736-1020)에서는 25일부터 5월8일까지 어린이날을 끼어 ‘한진섭 동물 조각전’을 연다. 5년만에 경기도 안성 작업장에서 돌조각품 30여점을 싣고 종로구 인사동을 찾아온 한진섭의 작품들은 지난 2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쪼고 갈아낸 것. 강아지 고양이 등 애완동물, 말 돼지 소 등 가축, 호랑이 하마 동화속 주인공 등 인간과 친숙한 동물들이다. 만듦새도 그러하여 표정이나 모양새가 인간사회와 무척 닮아 있다. 하마 네 마리(‘명’이 더 어울릴 것 같다)로 구성된 ‘행복하여라’는 오두마니 손과 발을 모으고 벤치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인간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어미돼지와 새끼돼지 일곱마리로 구성된 ‘봄나들이’ 역시 가족. 걸쭉한 표면의 마천석 어미돼지는 꿀꿀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깜찍한 대리석 새끼돼지들의 눈에는 졸음이 담겼다. 작품 구성뿐 아니라 각각의 동물들이 머리가 크고 몸통이 작은 삼등신인 점에서 사실성보다 동화나 설화 등 이야기를 머금었다.
함멸 화강암의 까칠한 강아지(‘지킴이’)는 충직성, 아이보리 대리석의 부드러운 소(‘순둥이’)에서는 우직함, 흑대리석의 까끌까끌한 고양이(‘아침’)에는 천진함이 그대로 배어있다. 뒷다리를 들고 쉬하는 강아지(‘행복한 하늘이’)는 작가의 장난스러움이 부가됐다.
가장 주목되는 작품은 이탈리아 남부산 아이보리색 대리석으로 만든 호랑이(‘평화’). 120×54×88㎝, 적당한 크기의 이 작품은 기포가 박힌 대리석의 걸쭉한 질감과 삼등신의 비례, 그리고 작가의 천진함과 의뭉함이 배어 눈길을 쉽게 떼지 못한다. 깡통을 가로로 반을 툭 잘라낸 몸통, 중기계에서 뜯어낸 톱니바퀴 얼굴, 커다란 용수철 목 등 반구상의 몸체에다 꼿꼿한 남성 성기를 닮은 꼬리가 힘차게 솟아있어 현대성과 전통성이 자연스럽게 접목돼 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등의 설화에서 의인화한 동물로 인간과 친숙한 호랑이가 따스한 돌의 몸을 빌어 도시의 설화를 전한다. 제작에 한달 반이 걸렸다는 작가는 만드는 동안 내내 기분이 좋았다고 전했다.
작품들을 두루 꿰는 컨셉트는 ‘어린이와 함께’. 동물상과 더불어 벤치에 앉거나 등에 올라탐으로써 작품이 완결되는 형식이다. 인간과 동물, 작품과 인간의 공존. 나아가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뒤집은, 롤스로이스를 모는 망아지(‘앞으로 앞으로’)가 재미있다. “마차를 몰거나 경주마로 인간에게 봉사해온 말이 고급 승용차를 몰게 되니 얼마나 신이 나겠어요?” 설명하는 작가도 신이 나 있다.
한씨가 동물에 달려든 것은 2년 전 한 기업 의뢰로 해태상을 만든 뒤부터. 애완동물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동물-인간의 공존’이라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는 판단에서 인간에서 동물로 소재를 옮겼다. 추상화를 깊게 진행한 인간과 달리 동물작품들이 의인화에 머문 것은 공감을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앞으로 어떻게 얼마나 변주될지 주목거리.
스스로 일중독에 걸렸다는 한씨는 얼마 전 진폐 진단을 받아 돌작업을 그만두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지만 마스크를 쓰는 습관을 들이고 수영으로 폐활량을 키우면서 여전히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글·사진 안성/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의인화된 동물 30점 ‘인간과의 공존 30년째 돌 속에서 ‘인간’의 형상을 뽑아내 온 조각가 한진섭(51)씨가 이번에는 동물들을 뽑아냈다. 목소리는 예전과 다름없는 평화와 조화, 그리고 공존. 가나아트갤러리(02-736-1020)에서는 25일부터 5월8일까지 어린이날을 끼어 ‘한진섭 동물 조각전’을 연다. 5년만에 경기도 안성 작업장에서 돌조각품 30여점을 싣고 종로구 인사동을 찾아온 한진섭의 작품들은 지난 2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쪼고 갈아낸 것. 강아지 고양이 등 애완동물, 말 돼지 소 등 가축, 호랑이 하마 동화속 주인공 등 인간과 친숙한 동물들이다. 만듦새도 그러하여 표정이나 모양새가 인간사회와 무척 닮아 있다. 하마 네 마리(‘명’이 더 어울릴 것 같다)로 구성된 ‘행복하여라’는 오두마니 손과 발을 모으고 벤치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인간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어미돼지와 새끼돼지 일곱마리로 구성된 ‘봄나들이’ 역시 가족. 걸쭉한 표면의 마천석 어미돼지는 꿀꿀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깜찍한 대리석 새끼돼지들의 눈에는 졸음이 담겼다. 작품 구성뿐 아니라 각각의 동물들이 머리가 크고 몸통이 작은 삼등신인 점에서 사실성보다 동화나 설화 등 이야기를 머금었다.
‘평화’
‘복덩이’
‘가득한 사랑Ⅰ’
‘가득한 사랑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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