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 인형인 <병사의 이야기> ⓒ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사진 극단 제공
극단 인형인 <병사의 이야기> &
공연창작집단 뛰다 <노래하듯이 햄릿> 나이를 먹어 가면 분명, 어쩐지 빛바랜 앨범의 한 구석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어린 추억과도 같은 향기를 내는 것들이 있다. 인형이나 광대도 그런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러나 최근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묘하게 닮은꼴을 하고 있는 ‘극단 인형인’의 <병사의 이야기>와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노래하듯이 햄릿> 두 작품은 이런 편견을 말끔히 불식시키고 그것들을 현실의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국립극장 청소년 공연예술제에 참가하는 두 팀, 그들만의 독특한 향기로 그려내는 인형광대극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극단 인형인 <병사의 이야기>
일시: 2007년 5월3일~5월13일 매일 8시반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원작: R.H Ramuz
음악: Igor Stravinsky
각색, 연출: 유성균
출연: 이문수, 박웅선, 권택기, 신영주, 공찬호, 김규림, 이보람
문의: 02) 741-0741 이야기는 약 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 혁명과 세계 1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서도 예술의 꽃은 피었으니, 그 꽃망울이 바로 스트라빈스키와 라뮤즈가 함께 만든 <병사의 이야기>. 그렇게 피어난 꽃은 2007년, 여기, 각종 오브제와 인형, 그리고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관객과 함께 살아있는 공연을 만들어 가는 극단 인형인의 손에서 드디어 만개하기에 이른다. 당시만 하더라도 음악에 맞춰 이야기를 하고, 연기를 하고 춤을 춘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적인 발상이었는데, 극단 인형인은 바로 그 밑그림 위에 광대와 인형, 우리말 나레이션, 영상의 투사라는 새로운 색깔들을 덧입힌다. 광대와 인형은 원작의 힘을 뛰어 넘어
10년의 전쟁 끝에 열흘 동안의 첫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한 병사와, 그의 바이올린과 미래를 내다보는 마법의 책을 맞바꾸자고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악마의 이야기. 극단 인형인의 <병사의 이야기>는 쉽게 풀어 쓴 ‘파우스트’라는 평을 받은 원작의 줄거리에 그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또 하나의 에피소드로 만들어 광대극 형식으로 펼친다. 연출가 유성균에 따르면 ‘클라우닝(clowning)’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가 관객을 의식하느냐 안하느냐 라고.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새로운 환경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상태가 바로 광대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건이라는 것이다. 배우가 그런 요소들을 가지고 관객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관객들은 오히려 배우에게 노출당한 기분이 들고,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극에 참여하게 된다. 동그란 빨간 코를 달고 관객들의 흥을 돋우는 광대에게 이제는 안녕을 고할 때가 온 것이다. 한편, 각종 오브제와 신체를 활용해 극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등장인물이 되기도 하던 배우 셋이 어느새 하나의 호흡으로 인형을 연기하고 있다. 사뿐사뿐 걸으며 무대를 종횡무진 하는 인형은 오른 발을 내딛는 한 배우의 박자와 왼발을 들어 올리는 다른 배우의 박자,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또 다른 배우의 박자가 완벽하게 일치되어 발걸음 한 번 꼬이지 않는다. 앙상블 연기를 하는 그들은 각 배우들뿐만 아니라 인형, 사물 등 모든 관계에 대해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레이다를 열어놓는 쉽지 않은 작업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그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표현의 그물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건져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은 그만큼 확장되었다. 원작의 충격과 감동은 이렇게 새로운 발상의 실험들로 채워진 오늘날 공연예술의 신선한 한 단면으로 이어진다.
음악과 나레이션, 영상의 만남은 장르를 뛰어 넘어
그렇다면 그간 창작 공연만을 올려오던 극단 인형인이 굳이 <병사의 이야기>를 각색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이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이자 원작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매력인 ‘나레이션’에 있다.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조근조근 이야기를 풀어가다가도 어느 샌가 자연스레 등장인물 중 하나가 되어 극의 안팎을 들락날락 하는 나레이터. 원작의 초연 당시 프랑스의 예술가 쟝 꼭또가 연기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이 인물은 국립극단의 배우 이문수가 맡는다. 그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가장 어려운 점은 우리 말과 음악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것이라고. 원작에서는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시적 상상력과 불어로 쓰인 나레이션 운율의 조화가 관객들을 황홀경으로 안내했다는데, 우리 말의 특성 상 원곡의 아름다운 선율을 따라 그 미묘한 느낌들을 살려내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이러한 과제 수행을 통해 음악극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한다. 덧붙여 또 하나 이 공연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바로 공연 전 투사되는 영상에 있다. 공연 30분 전부터 관객들은 극장 바깥에서 병사와 악마를 만날 수 있는데, 바로 이 모습이 실시간으로 무대 위 영상으로 보여진다. 전시상황의 한 참호에서 전쟁을 치르다 휴가를 얻어 떠나는 병사와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과 마법의 책을 바꾸자고 유혹하는 악마의 모습은, 활자가 아닌 퍼포먼스 그 자체로 만나는 일종의 공연 소개라고 할 수 있다. 극장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관객들은 영상으로, 그렇지 않은 관객들은 등장인물들과 함께 공연을 시작한다. 무대를 가로질러 냇물이 흐르고 한 쪽 구석엔 누군가 불을 질러 놨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오케스트라가 직접 연주한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불러 낸 나레이션과 인형, 광대극은 절묘한 하모니를 만들어 관객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이렇듯 극단 인형인의 섬세한 붓 터치는 분명 이 오묘한 색깔들을 혼합해 썩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낼 것이다.
공연창작집단 뛰다 <노래하듯이 햄릿>
일시: 2007년 5월18일~5월27일 매일 8시, 월쉼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원작: William Shakespeare
각색, 연출: 배요섭
출연: 황혜란, 최재영, 김수아, 정현석, 명현진
문의: 0505) 388-9654 ‘인형극’ 하면 흔히 ‘어린이극’을 떠올린다. 이어서 사고의 줄기는 자연히 인형극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라는 편견의 웅덩이로 흐르고, 그것들을 따져보며 작품이 분명 유치하고 지루할 것이라 예상한다.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해도 인형은 시종일관 같은 표정이고, 심지어 입조차도 뻥긋하지 않는데 뭘. 게다가 움직임은 지극히 제한되어서 비현실적으로 보이기 십상이잖아? 그러나! 어릴 적 추억의 한 귀퉁이를 떠올리는 셈치고 일단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면, 당장이라도 극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주체할 수가 없다.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노래하듯이 햄릿>은 이렇게 인형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는다. 햄릿, 광대들에게 조롱당하다 무덤지기이며, 일종의 무당이며, 삶의 관찰자인 다섯 익살광대들은 햄릿의 이야기를 ‘노래하듯이’, 혹은 ‘놀이하듯이’, 심지어 ‘놀리듯이’ 재연한다. 모든 것이 그저 유희의 대상일 뿐 어느 것 하나 심각하지 않은 그들의 모습은 한편 발칙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조롱을 통해 음모와 사랑, 욕망으로 얼룩진 비극적인 햄릿의 이야기는 일상성과 보편성을 획득한다. 연출가 배요섭은 때로 죽지 못해 안달하고 죽고 싶어 갖은 방법을 다 쓰는 게 삶일지도 모르지만, 삶에 대해서 괴로워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은 ‘비극’이 아니라 삶의 한 단면일 뿐이며, 심지어 죽음까지도 삶의 일부분이고 그 과정 중에 하나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다섯 광대들이 무상심하게 삶의 허망함을 노래하고, 죽음에 대해 관조적인 자세로 키득거리며 감히 햄릿을 놀려대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재기발랄한 시선으로 작품을 풀어가는 그들이 애초부터 셰익스피어를 고집하거나 굳이 광대극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옛날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찾는 건 ‘뛰다’가 주로 해오던 작업 방식이었고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저 ‘햄릿’이 필요했던 것뿐. 물론 원작 희곡이 워낙 탄탄하니 셰익스피어로부터 받은 도움을 부정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또한 ‘뛰다’의 스타일대로 배우들의 몸 이외의 사물이나 인형을 사용하면서, 무대에서 표현하는 이야기 자체를 대상화 하려다 보니 저절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광대’다. 광대는 사건이나 이야기에 대해서 객관적 입장을 취하면서,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고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야기를 보면서, 동시에 이야기를 바라보는 광대들의 태도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연출가 배요섭은 그것을 일종의 브레히트의 거리두기라고 표현했는데, 그런 면에서 광대는 편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인형, 춤추고 노래하며 난장을 함께하다
길게 늘어진 천으로 무대를 휘저으면서 순식간에 보는 이를 압도하는 거대한 왕비의 인형과 작고 귀여운 악동처럼 촐랑대는 햄릿의 손 인형. 재잘재잘 떠들던 광대들은 어느덧 둘씩 셋씩 짝을 지어 햄릿의 등장인물들을 연기한다. 처연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는가 하면, 관 속을 기어 나온 유령이 되어 울부짖는다. 헌데 재밌는 것은, 유랑하는 광대들이 잠시 정착하면서 꽂아둔 깃발이나 장대에 걸어둔 해골들이 그대로 인형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무대와 소품, 인형, 그리고 광대들이 하나가 되어 각종 변신 세트를 연기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이렇게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쏟은 노력은 눈물겹다. 3분짜리 장면을 위해 3시간을 연습했는데, 결국 또 다른 시도들을 하면서 그 모든 걸 버려야 할 때도 있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한 장면, 한 장면은 과연 눈물을 쏙 빼도록 재미있다. 이렇게 자유자재로 인형을 연기하는 그들에게 인형이란 살아있는 자체를 모방하는 모든 사물이 될 수 있기에, 어떤 특정 형태로 규정지어지는 것을 거부하고 가능한 모든 형태의 인형을 시도하려고 한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방법들이기에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는 않다. 간혹 우리끼리만 좋아서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데,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은 주저 없이 그들의 두 손을 번쩍 들어줄 것이다. 입에 짝 붙는 광대들의 농익은 재담과 인형들이 풀어놓는 노랫가락을 따라 햄릿을 놀려대다보면, 그 난장 한 복판 어딘가에서 ‘뛰다’만의 흥겨운 리듬과 가락에 박자를 맞추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연 안에서 약동하는 인형도 음악도, 심지어 생생하게 살아있어 귀를 대보면 그 숨소리가 들릴 것 같은 그들의 춤과 노래까지도, 기다려지는 이 반가운 조급함을 심장이 서늘해지는 설렘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글 김슬기 <한국연극> 기자 (soolsoolgi@naver.com)
사진 각 극단 제공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공연창작집단 뛰다 <노래하듯이 햄릿> 나이를 먹어 가면 분명, 어쩐지 빛바랜 앨범의 한 구석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어린 추억과도 같은 향기를 내는 것들이 있다. 인형이나 광대도 그런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러나 최근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묘하게 닮은꼴을 하고 있는 ‘극단 인형인’의 <병사의 이야기>와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노래하듯이 햄릿> 두 작품은 이런 편견을 말끔히 불식시키고 그것들을 현실의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국립극장 청소년 공연예술제에 참가하는 두 팀, 그들만의 독특한 향기로 그려내는 인형광대극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극단 인형인 <병사의 이야기>

극단 인형인 <병사의 이야기> ⓒ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사진 극단 제공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원작: R.H Ramuz
음악: Igor Stravinsky
각색, 연출: 유성균
출연: 이문수, 박웅선, 권택기, 신영주, 공찬호, 김규림, 이보람
문의: 02) 741-0741 이야기는 약 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 혁명과 세계 1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서도 예술의 꽃은 피었으니, 그 꽃망울이 바로 스트라빈스키와 라뮤즈가 함께 만든 <병사의 이야기>. 그렇게 피어난 꽃은 2007년, 여기, 각종 오브제와 인형, 그리고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관객과 함께 살아있는 공연을 만들어 가는 극단 인형인의 손에서 드디어 만개하기에 이른다. 당시만 하더라도 음악에 맞춰 이야기를 하고, 연기를 하고 춤을 춘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적인 발상이었는데, 극단 인형인은 바로 그 밑그림 위에 광대와 인형, 우리말 나레이션, 영상의 투사라는 새로운 색깔들을 덧입힌다. 광대와 인형은 원작의 힘을 뛰어 넘어

극단 인형인 <병사의 이야기> ⓒ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사진 극단 제공

극단 인형인 <병사의 이야기> ⓒ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사진 극단 제공

공연창작집단 뛰다 <노래하듯이 햄릿> ⓒ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사진 극단 제공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원작: William Shakespeare
각색, 연출: 배요섭
출연: 황혜란, 최재영, 김수아, 정현석, 명현진
문의: 0505) 388-9654 ‘인형극’ 하면 흔히 ‘어린이극’을 떠올린다. 이어서 사고의 줄기는 자연히 인형극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라는 편견의 웅덩이로 흐르고, 그것들을 따져보며 작품이 분명 유치하고 지루할 것이라 예상한다.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해도 인형은 시종일관 같은 표정이고, 심지어 입조차도 뻥긋하지 않는데 뭘. 게다가 움직임은 지극히 제한되어서 비현실적으로 보이기 십상이잖아? 그러나! 어릴 적 추억의 한 귀퉁이를 떠올리는 셈치고 일단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면, 당장이라도 극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주체할 수가 없다.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노래하듯이 햄릿>은 이렇게 인형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는다. 햄릿, 광대들에게 조롱당하다 무덤지기이며, 일종의 무당이며, 삶의 관찰자인 다섯 익살광대들은 햄릿의 이야기를 ‘노래하듯이’, 혹은 ‘놀이하듯이’, 심지어 ‘놀리듯이’ 재연한다. 모든 것이 그저 유희의 대상일 뿐 어느 것 하나 심각하지 않은 그들의 모습은 한편 발칙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조롱을 통해 음모와 사랑, 욕망으로 얼룩진 비극적인 햄릿의 이야기는 일상성과 보편성을 획득한다. 연출가 배요섭은 때로 죽지 못해 안달하고 죽고 싶어 갖은 방법을 다 쓰는 게 삶일지도 모르지만, 삶에 대해서 괴로워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은 ‘비극’이 아니라 삶의 한 단면일 뿐이며, 심지어 죽음까지도 삶의 일부분이고 그 과정 중에 하나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다섯 광대들이 무상심하게 삶의 허망함을 노래하고, 죽음에 대해 관조적인 자세로 키득거리며 감히 햄릿을 놀려대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재기발랄한 시선으로 작품을 풀어가는 그들이 애초부터 셰익스피어를 고집하거나 굳이 광대극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옛날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찾는 건 ‘뛰다’가 주로 해오던 작업 방식이었고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저 ‘햄릿’이 필요했던 것뿐. 물론 원작 희곡이 워낙 탄탄하니 셰익스피어로부터 받은 도움을 부정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또한 ‘뛰다’의 스타일대로 배우들의 몸 이외의 사물이나 인형을 사용하면서, 무대에서 표현하는 이야기 자체를 대상화 하려다 보니 저절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광대’다. 광대는 사건이나 이야기에 대해서 객관적 입장을 취하면서, 이야기에 빠져들지 않고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야기를 보면서, 동시에 이야기를 바라보는 광대들의 태도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연출가 배요섭은 그것을 일종의 브레히트의 거리두기라고 표현했는데, 그런 면에서 광대는 편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공연창작집단 뛰다 <노래하듯이 햄릿> ⓒ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사진 극단 제공
사진 각 극단 제공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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