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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가난이 낳은 실험정신과 대량생산

등록 2007-05-08 17:45

근대 동양화가 남농 허건전
근대 동양화가 남농 허건전
근대 동양화가 남농 허건전
‘남농 허건’은 넓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02-2022-0623)을 채우고도 남는다.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남농 작품 가운데 110여점을 덕수궁미술관에서 6월10일까지 만날 수 있다.

미술관 쪽에서는 △1930~45년 중국화, 일본화의 영향 아래 전통적인 화법에 기반을 둔 ‘전통의 계승과 혁신’ △45~60년대 ‘신남화의 정립’ △70~80년대 ‘이상향의 추구’ △시화, 사군자를 통한 ‘문인화의 정취’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 전시실을 꾸렸다. 하지만 그림과 경제의 상관관계로 읽어보는 것도 재미.

허련→허형→허건 3대를 이은 화가 집안은 진도(허련)에서 출발해 강진 병영과 목포를 거쳐(허형) 다시 진도(허건)로 회귀한다. 그림이 소비될 만한 곳을 찾아 떠돌다 허건 대에서 금의환향한 셈.

허건은 가난을 이유로 그림 그리는 것을 말린 아버지 탓에 10대 후반에 늦게야 본격 그림공부를 했다. 하지만 선대에서 물려받은 화재에다 사생적인 수법의 창의적인 풍경화로 스물셋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처음 입선한 이래 44년 마지막 선전에서 조선총독상을 받기까지 출품을 거듭해 14회나 입선했다. 문부성전람회에 입선하기 위해서는 일본화풍을 본떴다. 38살(1944)에는 추운 전셋집 마루에서 3년여를 작업하다 왼쪽 다리가 썩어들어가 무릎 아래를 잘라냈다.

가난과의 싸움은 60년대 무렵까지 운필과 기법 실험으로 나타났다. 1956년 부산 개인전이 대성황을 이루면서 ‘옆으로 긴 형태의 배산임수 풍경’이란 ‘남농산수’로 정형화해 대량생산한다. 70년대 이후 진도 운림산방 재건에 힘쏟는 시기와 일치한다. 가난이 그림의 원동력이자 족쇄였다는 것.

그의 작품은 산수화와 소나무 그림이 중심. 속도감 있는 특유의 독필 또는 갈필을 빠르고 자유로이 구사하여 색채의 섬세함과 밝은 효과를 향토적 정취로 살렸다는 평을 받는다.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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