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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낭만과 우아함을 벗어던진 오페라

등록 2007-05-17 22:12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 국내 초연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 국내 초연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 국내 초연
오페라의 고전…무조음악 기법 최초 사용
비인간적 폭력에 절망하는 인간모습 공감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가 1607년 초연되면서 오페라라는 장르 전체가 시험대 위에 함께 세워진 지 300년이 넘어서, 그리고 베르디의 〈리골레토〉 이후 60여년이 지나서 ‘노래하는 주인공’이 새롭게 자기 시대의 원형으로 등장한다.”

볼프강 빌라셰크가 저서 〈오페라〉에서 평가했듯 ‘20세기 현대 오페라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꼽히는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가 국내 초연된다. 국립오페라단(단장 정은숙)이 뛰어난 예술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지 않은 희귀 레퍼토리를 소개하는 ‘마이 넥스트 오페라’ 공연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6월14~17일 엘지아트센터.

〈보체크〉는 독일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가 1821년 6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요한 크리스티안 보이체크라는 인물이 애인을 칼로 찔러 죽여 공개 사형당한 사건을 옮긴 미완성 희곡이 원작으로 알반 베르크(1885~1935)가 작곡한 오페라다. 연극 〈보이체크〉는 국내 무대에 자주 올랐지만 오페라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극 제목 〈보이체크〉(Woyzeck)가 〈보체크〉(Wozzeck)로 바뀐 것은 독일 악보 출판사의 실수 때문이었다고 한다.

1925년 독일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보체크〉는 기존의 조성 체계를 벗어나 불협화음으로 대표되는 무조음악 기법으로 쓴 최초의 오페라로 세계 음악사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드라마 구조와 음악적 전개가 잘 조화를 이뤄 베르디나 푸치니 등의 낭만파 오페라나 바그너의 악극보다도 형태상으로 한 단계 앞서나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탈리아 낭만파 오페라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낯설 수도 있겠지만 오페라 마니아들에겐 오랫동안 기다려온 명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체크〉는 인간이 주변 사람들의 무감각 속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져 가는 과정을 고통스럽게 보여준다. 200년 전 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시공간을 뛰어넘어 양극화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처럼 읽힌다. 보체크는 오페라 제1막에서 아리아로 “우리네같이 가난한 사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우리 같은 인간은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천덕꾸러기밖에 더 되겠습니까!…”라고 외친다. 연출가 양정웅씨는 “권력과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도덕을 가장한 비인간적인 폭력으로 절망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작곡가 알반 베르크도 “궁핍한 인간이라면 그가 어떤 옷을 입든 보체크와 같은 운명을 걸을 수 있다. 남들에게 억압을 당하면서도 저항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길을 가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공연에는 창작 오페라 〈천생연분〉에서 함께 작업했던 지휘자 정치용씨, 연출가 양정웅씨, 무대미술가 임일진씨가 다시 뭉쳤고, 오페라 가수들의 자연스런 움직임을 위해 현대무용가 홍승엽(댄스씨어터온 대표)씨가 안무가로 참여한다.

양정웅씨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구현하는 것이 연출의 목표”라며 “서사적인 해설이 아닌 이미지로 극을 이끌 것”이라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임일진씨는 “장식을 배제하고 알루미늄이나 철판 등 재질을 그대로 사용하는 미니멀리즘을 통해 ‘주인공이 나의 모습도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번 공연에서 안무가가 아니라 ‘움직임 연출가’로 참여한다는 홍승엽씨도 “배우들이 자신들의 움직임에 배역의 심리상태를 자연스럽게 투영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국립오페라단은 일반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공연에 앞서 29일 저녁 7시30분 국립오페라 대연습실에서 무료세미나를 연다. 1588-789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국립오페라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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