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옥션의 박수근 화백 ‘빨래터’ 경매에 모인 인파. 연합뉴스
550석 꽉 차고 전화응찰로 돈과 사람 몰린 경매장
그저 좋아 모은 애장품전…40년 눈썰미 소장품전
그저 좋아 모은 애장품전…40년 눈썰미 소장품전
# 장면 1/ 45억2천만원 낙찰에 탄성인지 탄식인지…
22일 오후 서울옥션 경매장에는 유독 많은 보도진이 몰렸다. 박수근의 작품 <빨래터>(37×72㎝)가 최고값을 경신할지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 경매사가 33억원으로 호가를 시작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번호패가 올라왔다. 5천만원씩 값을 올려 순식간에 40억을 돌파하면서 ‘기타’는 떨어져나가고 전화 응찰 큰손을 대신한 옥션쪽 직원 두 명이 번갈아 패를 올렸다. 중간에 서면응찰을 담당한 직원이 양념처럼 한차례 “서면” 하고 외쳤을 뿐. 올리는 단위를 2천만원으로 낮추어 몇차례 경합 끝에 세 차례 복창을 거쳐 “45억2천만원”이 낙찰가격으로 선포됐다. 숨 죽이며 지켜보던 관중 사이에서 탄성인지 탄식인지 ‘아’ 소리와 함께 박수가 터졌다.
값 주도하는 건 얼굴 없는 큰손들
이날 직접 경매가 진행된 본관 400석, 모니터로 지켜보면서 응찰한 별관 150석 등 550석은 예약회원으로 가득찼다. 입구쪽 계단에도 매물 리스트를 든 사람들이 앉아서 경매상황을 지켜보았다. 번호패를 든 사람들이 제법 됐지만 호가가 올라가자 한두 차례 패를 올렸을 뿐 주로 전화를 통한 큰손들이 값을 주도해 나갔다. 경매장에 온 게 세번째라는 ㅂ씨는 오치균의 작품을 찍어두고 왔다지만 막상 경매가 진행되자 패를 들지 않았다. 제조유통업을 한다는 40대의 그는 최근 키아프에서 김종학의 작품을 2400만원에 구입했다. “투자 겸 취미생활로.” 두번째라는 또 다른 40대의 ㄱ씨. 지난 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끝까지 지켜보면서 가격을 훑겠노라고 했다. 매물 리스트를 들고 열심히 가격을 적어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40대 이상. 길 잃은 돈이 미술품 경매장으로 물꼬를 틀었다.
# 장면 2 / 선택 기준, 명성도 가격도 아닌 오로지 ‘나’
청와대 앞 고즈넉한 대림미술관. 지난 달 12일부터 ‘컬렉터의 선택: 컬렉션 2’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수집가 다섯 명의 사진, 회화, 비디오아트, 설치작품 등 컬렉션 70여점이 전시돼 있다. 개인 수집가들이 애장품을 선정해 직접 전시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미술에 대한 애정과 컬렉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취지다.
이들 수집가는 작가의 명성이나 작품 시장성과는 무관하게 자기 기호와 즐거움을 위해 수집을 한다는 게 특징. 선호 작품의 경향이나 장르가 다 다르지만 작품 선택의 기준이 명성도, 가격도, 투자가치도 아닌 ‘나’ 자신이다.
이 가운데 가장 젊은 강태호(35)씨. 금융컨설팅사에서 자금유치를 담당하면서 미술품을 공부하고 수집하다가 아예 아트디렉터로 일터를 옮겼다.
사기 전에 공부하고 사고 나서도 공부하고…
그는 작품을 보면서 작가는 왜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까를 생각한다. 작가의 예술론, 그가 놓인 개인적 사회적 상황 등을 따라가며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다. 첫 소장품은 대학생때 산 스티브 코프만의 프린트 작품. 돈과 그 제조방식을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원색적으로 표상화한 것. 현대미술, 비디오아트에 관심이 많다. 고민이 진솔하게 드러나고 뭔가 다른 것을 보여주어 존경심을 유발하는 게 좋은 작품이라고 본다.
수집품에는 자신의 의식 변화가 반영돼 있다. 회화라는 매체를 고민할 무렵 구입한 조나단 라스커의 작품이 그 예다. 그에게 미술은 종교처럼 삶을 지탱해주는 구실을 한다. 미술을 알지 못했다면 그의 삶이 공허했을 거라고 했다. 구입에 앞서 공부하고 심사숙고하고 선택을 한다. 선택되는 것들은 오감으로는 느끼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것들. 소장하고 나서도 공부를 할 수 있다. 판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공적인 곳에서 작가의 끊긴 부분을 원한다면 넘길 용의가 있다.
# 장면 3 / 주종목 사진 비롯해 동·서양 작품 1만5천점
파주 헤이리에서는 일본인 수집가 이시하라 에츠로(66·자이토포토 관장) 소장품을 세 군데로 갈라 6월24일까지 전시한다. 윌리엄모리스 미술관(031-949-9305)에서는 19세기 프랑스 회화(41점), 카메라타 아트 스페이스(031-957-3369)와 갤러리 희원(031-957-6320)에서는 사진작품들(70여점).
이시하라의 수집경력은 40년. 주종목은 사진이다. 사진역사 170년 동안의 작품 전부가 수집대상이다. 만레이, 빌 브란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브라사이, 로버트 프랭크, 리 프리들랜더, 티모시 그린필드 샌더스, 마이클 케냐, 수전 펜튼 등 서양작가와 일본 근현대 작가를 아울러 1만5000점을 모았다. 수집량과 지식은 비례해 아시아권 번듯한 기획사진전 치고 그의 손을 빌리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
파리 런던 뉴욕 쿠바 등 전세계 발길
프랑스 유학 때 눈을 뜬 19세기 회화. 아카데미즘 회화부터 인상주의, 나비파, 에콜 드 파리, 앵포르멜 회화 등 1850~1960년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유명화가 작품 800점을 소장하고 있다. 줄 바스티앙 르파주, 구스타브 도레, 앙리 조셉 아르피니, 유진 프로망탱, 에밀 베르나르 등. 파리는 물론 런던, 뉴욕, 암스테르담, 쿠바 등 세계 각지에서 수집을 했다. 오르세 미술관이 아끼는 장 폴 로렌스의 대작을 입수했을 때, 구스타브 도레의 대작 8점을 손에 넣었을 때 표현하기 힘든 희열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소위 도너츠판이라는 1930~40년대 에스피(SP)판이 1500점이다. 한 장을 수집하더라도 스스로 100%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철저하게 검토해 살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런 만큼 컬렉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나친 열정으로 건강을 해쳐 병원신세를 여러 번 졌다. 현재도 건강이 썩 좋지 않지만 수집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 중국 등 아시아권 현대미술에 눈을 돌리고 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강태호 컬렉션 중 엔 해밀턴의 ‘무제’.
이시하라 컬렉션 중 케냐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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