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윤주 작, 〈봄의 향기〉,석채, 혼합재료
황윤주 초대전
장은선 갤러리
5월 30일~6월 5일 인사동에 가면 행복하다. 좋은 그림을 만나면 더 행복하다. 인사동 큰길에서 한걸음 골목으로 들어가면 금세 인파가 줄어들고 10여미터를 들어가면 한산하기조차하다. 30미터를 들어가면 사람이 그리워진다. 장은선갤러리는 초여름 햇살에 졸고 있고 내부는 조용하기가 자기 발자국 소리에 깜짝 놀랄 정도다. 황윤주 초대전. 전시회 제목을 붙이지 않았지만 굳이 붙인다면 외출과 기억. 외출은 표정을 위주로 한 인물들. 거울 앞에서 화장하는 여인,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 잠시 동작을 멈춘 듯한 남녀들이다. 기억은 터키 여행에서 남은 인상의 잔상들. 소피아성당 또는 강 또는 해협의 이쪽과 저쪽을 잇는 다리다. 거울 또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여성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자기 자신의 기억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공히 성찰적이다. 색깔은 그래서일까, 보라색과 회색이 주류다. 보라는 정서, 회색은 기억과 일대일 대응하지는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중간중간 찹찹한 흰색이 도리어 발랄하게 보인다. 머리의 소매끝동, 스카프, 꽃 따위가 흰색변주의 매개 역할을 한다. 기억 속 이스탄불 첨탑 끝에 부서지는 햇살 역시 그렇다. 좋아하는 색으로 구현하기 위해 소재가 선택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색의 사용이 자연스럽다. 작가에게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보라와 회색은 자신이 좋아하는 색이라고 말했다.
그림은 석채. 돌가루를 아교에 개어 그렸다. 까끌까끌하기 보다는 수채화처럼 곱게 색깔을 먹었다. 색깔있는 돌을 볼밀로 곱게 간 뒤 체에 받쳐 가루를 내는 작업이 쉽지는 않은 모양. 때로는 보석으로 쓰이는 것을 갈아서 쓰기도 하고 원하는 색의 돌을 찾아 직접 채취하기도 한다고 작가는 말했다.
석채는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1999년까지 일본여자미술학교에서 일본화를 배우면서 터득한 기법. 일본화 하면 석채라고 할 정도로 완숙한 그네들의 기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귀국한 이래 한해 한차례씩 개인전을 열면서 서서히 일본적인 무드를 빼나와 이제는 한국적인 또는 자신의 것이라는 말을 꺼낼 수 있을 정도는 됐다. 그림에서 방금 화장을 하고 외출을 나온 여성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그림의 소재가 그러려니와 작가의 이력이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림 속 여인이나 건물들은 눈썹선처럼 가늘게 윤곽을 가지고 있다.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고 나온 여인, 시간 속에서 형태를 새롭게 한 기억이 막 외출을 한 탓이라고 해석해 두자. 여인의 입술, 눈, 손끝과 손목에서 보이는 새침한 표정은, 건물의 지붕과 기둥, 창문, 또는 첨탑에서도 여전하다. 석채처럼 오래 가는 작가, 관객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작가가 되기를 빈다. 전시회는 5일로 끝. 가버린 봄처럼 무척 짧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은선 갤러리
5월 30일~6월 5일 인사동에 가면 행복하다. 좋은 그림을 만나면 더 행복하다. 인사동 큰길에서 한걸음 골목으로 들어가면 금세 인파가 줄어들고 10여미터를 들어가면 한산하기조차하다. 30미터를 들어가면 사람이 그리워진다. 장은선갤러리는 초여름 햇살에 졸고 있고 내부는 조용하기가 자기 발자국 소리에 깜짝 놀랄 정도다. 황윤주 초대전. 전시회 제목을 붙이지 않았지만 굳이 붙인다면 외출과 기억. 외출은 표정을 위주로 한 인물들. 거울 앞에서 화장하는 여인,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 잠시 동작을 멈춘 듯한 남녀들이다. 기억은 터키 여행에서 남은 인상의 잔상들. 소피아성당 또는 강 또는 해협의 이쪽과 저쪽을 잇는 다리다. 거울 또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여성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자기 자신의 기억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공히 성찰적이다. 색깔은 그래서일까, 보라색과 회색이 주류다. 보라는 정서, 회색은 기억과 일대일 대응하지는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중간중간 찹찹한 흰색이 도리어 발랄하게 보인다. 머리의 소매끝동, 스카프, 꽃 따위가 흰색변주의 매개 역할을 한다. 기억 속 이스탄불 첨탑 끝에 부서지는 햇살 역시 그렇다. 좋아하는 색으로 구현하기 위해 소재가 선택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색의 사용이 자연스럽다. 작가에게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보라와 회색은 자신이 좋아하는 색이라고 말했다.

황윤주 작, 〈사랑의 세레나데〉, 석채, 혼합재료
그림 속 여인이나 건물들은 눈썹선처럼 가늘게 윤곽을 가지고 있다.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고 나온 여인, 시간 속에서 형태를 새롭게 한 기억이 막 외출을 한 탓이라고 해석해 두자. 여인의 입술, 눈, 손끝과 손목에서 보이는 새침한 표정은, 건물의 지붕과 기둥, 창문, 또는 첨탑에서도 여전하다. 석채처럼 오래 가는 작가, 관객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작가가 되기를 빈다. 전시회는 5일로 끝. 가버린 봄처럼 무척 짧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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