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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취한 붓놀림이 신선의 경지라

등록 2007-06-04 18:09

‘서귀소옹’ 현중화 탄생 100주년 기념전
‘서귀소옹’ 현중화 탄생 100주년 기념전
‘서귀소옹’ 현중화 탄생 100주년 기념전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춤판, 노래판이 벌어졌다. 게다가 술판까지. 소암 현중화 탄생 100돌 기념 특별전이다.

화선지 속 먹글씨가 가슴을 격발시켜 어깨를 들썩이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만든다. 흐느적거리는 붓놀림에는 술기운이 완연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도저히 씹히지 않는 뼈가 들어있다. 그냥 취한 게 아니다.

“취시선(醉是僊).”(사진) 취하니 곧 신선이라.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는 17일까지 서예가 현중화(1907~1997)의 완성기, 즉 서귀소옹(西歸素翁)이라 자호하던 73살(1979)부터 90살(1997)까지의 작품 100여점을 전시한다. 전, 예, 해, 행, 초서는 물론 한글작품을 아우른다.

잠자고 먹고 쓰는 일 외에는 오직 글씨만을 즐겼다는 그. 하지만 술이 아니면 붓을 들지 않았으니 당시 작품들은 대부분 ‘취필’이다. ‘취시선’은 4×1.8m 크기로 취해서 술집 벽에 휘갈긴 것을 족자로 떠낸 것이다. 그가 쓴 한글에는 탈네모꼴인 한자의 행초서 필획이 그대로 들어와 있다.

현중화는 제주의 소위 ‘지방 서예가’. 그의 영향권은 한반도 남부에 그쳤을 뿐 서울과는 큰 인연이 없다. 이번 전시회 도록을 만들려 할 때 서울의 서예전문 잡지사들이 판로가 없다며 거절했을 정도.

그가 고향인 제주에 틀어박히기 전, 1955년 일본에서 돌아와 이태 뒤인 57년 국전 입선을 시작으로 79년까지 추천·초대작가, 심사위원으로 20여년간 활동한 사실은 쉽게 잊혀졌다. 중앙서단은 소전 손재형의 인맥이 아니면 맥을 못 추었던 탓이다. 소전은 전서를 토대로 행초와 한글을 재해석했고 소암은 육조해(六朝楷) 필법으로 왕희지의 행초서를 재해석하였으니 주류인 소전 계열과는 섞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서법으로 치면 소암이 주류, 소전이 비주류라고 서예박물관 이동국 큐레이터는 말한다.

소암은 늦은 서른하나에 마츠모토 호우수이와 츠지모토 시유우한테서 각각 3년, 8년 동안 구양순 서풍과 왕희지 안진경 계통의 행초서나 육조해를 중심으로 전 예 해 행 초 등 모든 서체를 배웠다. 특히 츠지모토한테서 20세기 근현대 핵심서풍인 육조해를 배웠다.

이동국 큐레이터는 “청말 정국 혼란과 함께 서법의 적통은 일본으로 옮겨갔다”면서 “소암은 국전활동 20여년 동안 체화하는 과정을 거쳐 70살 이후에는 야취와 전아함을 함께 갖추고 곡직, 질삽, 명암이 공존하는 특유의 소암체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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