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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세련된 무대 위 상투적 사랑

등록 2007-06-14 18:03

[리뷰] 연극 ‘연인들의 유토피아’
모든 것이 바뀌는 듯하지만 사랑만은 참 꾸준하더이다. 연극사만 훑어봐도 그 집요한 감정의 계보를 짐작할 수 있지요.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파괴한 기원전의 메디아를 선두로 죽음을 무릅쓴 줄리엣의 아름다운 사랑과 페드라의 끔찍한 사랑이 있는가 하면 체호프는 어긋나는 사랑에 대해 낄낄거리면서 우리들의 일상을 해부하였지요. 모두들 사랑은 변하는 것이라 하는데, 그 일시적인 감정에 몇 천년간 인류가 전전긍긍하였네요.

특히 요즘은 과할 정도지요. 밸런타인데이를 비롯한 상업적 사랑의 의례들, ‘묻지마 관광’식의 일회적 사랑,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연속극의 불륜의 사랑 등등. 칠팔십 년대에 우리를 연대 시켜 주었던 공동의 정치적 주제는 사라지고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관심사는 그저 사랑, 파편화된 우리를 연대시켜 줄 보편적인 주제는 오로지 사랑밖에 안 남은 눈치군요.

그것이 우습지만 안쓰럽기도 합니다. 찬란한 디지털 문명을 이룩한 인간이 왜 사랑의 바이러스를 치유할 백신은 만들어내지 못하는지, 큐피드의 화살만 맞았다 하면 전 인류가 일시적 궤도 이탈자가 되는지, 그럼에도 왜 사랑의 유토피아는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지요.

극단 산울림이 〈연인들의 유토피아〉(6월12일~8월12일)를 마련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여성문제에 천착해 온 유진월이 쓰고 지난해 〈가스등〉을 깔끔하게 소화한 김진만(38)이 연출하였지요. 특히 연극계 커플인 김진만-전현아 부부가 각각 연출가와 주연 배우로 호흡을 맞춰 화제가 된 작품입니다. 네 명의 배우가 나와 세 가지 사랑의 유형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도, 역시 사랑의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더군요. 불륜의 연인은 견고한 제도를 이기지 못해 제풀에 포기하고, 결혼이라는 제도 안의 커플은 사랑이 식어 무력하더이다.

그 구도가 사랑이라는 해묵은 주제만큼이나 우리에겐 낯익은 것이어서 좀 상투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유토피아를 찾는 연인들의 치열한 사랑이 보고 싶었는데, 철부지 아이 같은 사랑이 나와 아연하기도 했고요. 하긴 누가 그러더군요. 사랑을 하면 누구나 아이가 된다고. 어릴 때 마음의 상처를 받고 성장이 정지된 채 내 몸 안에 숨어 있던 아이가 사랑을 하면 다시 살아나 숨쉰다 하지요. 그런 경험들, 해보셨습니까?

전후반에 걸쳐 캐릭터의 일관성이 문제가 되지만 마지막의 세련된 반전과 디테일을 걷어낸 박동우의 기하학적이고 단아한 무대는 매력적입니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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