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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세련된 한국버전, 깊이는 아쉬움

등록 2007-06-28 17:53

연극 ‘한 여름밤의 꿈’
연극 ‘한 여름밤의 꿈’
[리뷰] 연극 ‘한 여름밤의 꿈’
화사하다. 선배 연극인들이 추구했던 한국적 연극의 질박한 난장이나 심각한 문제의식을 떠올리면 더 그렇다. 지난 십년간 양정웅과 극단 여행자는 된장 냄새를 깔끔하게 탈취하고 무대 위에 다국적 기호들을 토핑하면서 우리에게는 낯설어 신선하고 외국인들에게는 친근감을 주는 한국적 연극의 새 지평을 모색해 왔다.

<한 여름 밤의 꿈>(아르코 대극장, 7월 8일까지)은 그들의 이런 계열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아마 젊은 한국 연극의 가능성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밀양연극제와 가난한 소극장을 거쳐 세계로 뻗어나가더니, 콧대 높은 바비칸 극장으로부터 지난해 공식 초청을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 평가가 썩 후하지는 않았지만, 여행자의 행보는 좀 더 넓은 곳으로 나가고 싶은 한국 연극의 오랜 갈증을 일정부분 해소하며 다음의 숙제도 알려준다. 가능성은 입증되었다. 그러나 보편적 깊이는 아직 부족하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은 표면적으로는 연인들의 사랑을 다루지만, 초현실적인 요정을 등장시켜 세상엔 자명한 코스모스만이 아니라 카오스도 존재함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원작에 깃든 그리스 신화적 요소를 걷어내며 양정웅은 이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한국적으로 번안하였다. 요정은 가마니때기 뒤집어 쓴 도깨비로 만들고, 약초 캐다 질펀하게 오줌을 싸는(!) 아지미가 등장하는 식이다.

사실 이런 번안은 과거에도 있어왔지만 그것을 만들어내는 방식 때문에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은 유난히 눈길을 끈다. 백의민족을 보여주듯 정갈한 한복과 무대, 경극식 요란한 얼굴 분장이나 원색 겉옷,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배우들의 가벼운 걸음과 인도연극에서 따온 듯 멈추어 섰을 때의 특별한 조형미, 관객에게 친화력을 과시하는 방자함과 희극적 활력 등 셰익스피어와 한국과 그 외의 이질적인 요소들이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관객에 대한 과도한 서비스는 문제가 있다. 관객을 무대에 호출하고 선물을 주는 장면이나 산삼을 발견한 아지미가 “심봤다”를 외치는 마지막 장면에 가면, 쇼를 보는 듯 경계가 아슬아슬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벤트와 인생의 로또복권을 꿈꾸는 관객들은 그런 장면에 행복해 하지만, 연극이 끝난 뒤 무대에 대한 여운을 갖기는 힘들어진다. 왜 셰익스피어가 원작의 결말을 연극에 대한 성찰로 마무리 지었겠는가. 관객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자세도 좋지만 연극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그들이 조금 더, 고민해주기 바란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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