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희 작가. ⓒ 한겨레 블로그 sxegxex
이정희 회화전
인도에서 작품 활동 중인 화가 이정희(49)씨의 세 번째 개인전이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7월3일까지 열린다. ‘회화전’이라 밋밋한 이름을 붙였거니, 작품의 소재는 의자다.
의자는 의자 자체다. 무엇을 위한 용도이기 이전에 그 자체라는 것. 통상 용도란 다른 무엇과의 관계에서 파악되는 것. 우리들 대부분이 그럴 터이다. 자체가 아닌 관계에 의해 의미가 파악되는 존재는 얼마나 허망한가. 우리는 자체로서 파악될 수는 없을까.
이씨가 그리는 의자들은 아무런 장식이 없다. 다만 의자라고 인지될 수준으로 그려진다. 현실의 의자는 시대와 용도에 얼마나 많은 변주를 하는가. 하지만 이씨의 의자는 이데아 세계의 그것을 연상시킬 정도로 단순하다. 승방이나 수녀의 방에 어울릴 법한.
어쨌든 의자는 앉음용이다. 앉음이 가능하지 않을 때 의자는 더 이상 의자가 아니다. 누군가 이미 앉아있다면 의자는 더 이상 의자가 아니다. 그 의자는 앉아있는 사람의 받침일 뿐. 그래서 이씨의 의자는 비어있다. 누군가 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본래 의미의 의자다.
작가의 의자는 곧 작가 자신 또는 보편인간의 투영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고 동시에 관계에 의해 규정된다. 그 점에서 의자는 자화상이라 할 터이다.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 나인지, 나의 그림자인지, 이도저도 아닌지. 작가의 의자는 땅위의 그림자를 거느리기도 하고 허공 중에서 그림자가 없기도 하다. 실재라 여기는 것도 영원한 시간으로 보면 그림자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렇듯 일면 단순해 보이는 의자들이 말을 건네기 시작하면 전시장은 무척 시끄럽다.
작가는 전시회가 없던 10년 동안 인도에서 그린 작품 가운데 엄선해서 전시장에 내놨다. 생활비가 적게 들어서 인도에서 작품 활동을 한다는 그의 작품은 작가의 표정만큼이나 승방에서 명상을 하다가 갓 세상에 나온 비구니처럼 정갈하다. 군더더기라고는 하나도 없다.
한동안 매료되었다가 끝장을 보지 못한 원과 청색은 아무래도 버거운 화두였을 터. 하지만 지난한 그 과정은 헛되지 않아, 편안하지만 결코 편안하지 않은 의자의 형태로 나오지 않았을까. 오랜만에 서울 인사동에 온 작가는 일년의 반은 인도에서, 나머지 반은 한국에서 지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중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sxegxex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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