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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블로그] 숲을 통째로 박제한 통큰 젊은이

등록 2007-07-02 19:38

조각가 이종희씨 ⓒ 한겨레 블로그 sxegxex
조각가 이종희씨 ⓒ 한겨레 블로그 sxegxex
이종희 첫 개인전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 가파른 계단을 올라 3층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 그거네?

나무를 쎄멩공그리 친 뒤 톱으로 썰어낸 그거다!

길게 네 번 접은 팜플렛에서 얼핏 본, 청바지에 손을 찌른 채 콘크리트 기둥 뒤에 2/3쯤 몸을 드러내고 서있던 퉁퉁한 소년이 데스크 뒤에 앉아있다. 조각가 이종희씨. 알고보니 소년이 아니라 서른 아홉 살이다.

맨몸으로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벅찬 요즈음, 무지막지하게 무거운 공그리 덩어리를 져올린 그를 보고 우선 탄복했다. 갤러리도 무심하지, 저렇게 무거운 오브제로 3층에서 전시회를 열라고 하다니. 나 같으면 에이 스벌 안해, 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젊은 편이어서 힘이 셌고, 젊은 편이어서 힘이 없었다. 그래서 군말없이 3층까지 끄잡아 올렸다.

그의 작품인 무지막지한 무게를 가진 공그리덩이들은 무척 가벼워보인다. 팬시용품처럼 무척 예쁘기 때문이다. 나 참 공그리덩이를 팬시용품이라니.

커다란 거푸집에 메타세퀘이어 나무를 통째로 넣고, 그 위에 시멘트와 석고를 개어 부은 뒤 굳히면 4톤 이상 나간다고 한다. 그것을 트럭 또는 크레인을 동원해 거대한 절단기에 올려놓고 썰었다. 여간한 힘으로는 하기 힘든 작업. 그래서일 거다. 이종희씨한테서 타고난 체력에 완강한 어깨의 힘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조각가 이종희 개인전 ⓒ 한겨레 블로그 sxegxex
조각가 이종희 개인전 ⓒ 한겨레 블로그 sxegxex

콘크리트와 석고 속에 화석처럼 가둬진 메타세퀘이어는 실제로 식물화석. 은행나무와 함께 수만 년 전의 형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나무다. 그것을 다시 지층이랄 수 있는 콘크리트에 고정시키니 시간이 이중으로 겹쳐있는 셈이다. 같은 크기로 메밀묵처럼 잘라낸 것들이 일렬로 죽 늘어서서 단면과 단면들이 또 다른 층위를 만들고 있다.

또 다른 쪽에는 아카시아 나무를 그렇게 만들어 기둥처럼 뽑아낸 것들이 무늬박힌 돌기둥처럼 서있다. 작가는 숲을 가뒀다고 했다. 하늘에서 갑자기 화산재가 쏟아져 내려 숲을 덮어 굳어지면 똑 이럴 터이다. 본디 있던 숲 자리에 들어선 아파트 기둥이 기실 이 모양인지 모를 일이다. 메타세퀘이어와 아카시나무는 목질이 단단해 콘크리트와 잘 어울린다고 했다.

조각가 이종희 개인전 ⓒ 한겨레 블로그 sxegxex
조각가 이종희 개인전 ⓒ 한겨레 블로그 sxegxex

갑자기 몸을 휘감는 갑갑증. 팜플렛 뒤쪽에 몸을 가리고 선 작가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듯하다. 우리의 현실이 그러하지 않을 터인가. 나무를 그렇게 박제했거니, 혹시 인간들 역시 그런 상황에 있지는 않는가. 작가가 공그리친 게 나무가 아니라 인간, 또는 작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치 떨리는 상상.

아파트의 소공원이나 대형건물 앞의 벤치 겸 조형물로 어떨까. 작가는 호텔로비에 놓아두어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나무 부분을 방부처리하면 아주 훌륭한 실용품이 될 터이다. 작가는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그나저나 7월3일 전시가 끝나면 다시 옮겨가야 할 터인데 어쩌나.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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