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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변혁의 ‘징검다리’ 첫걸음

등록 2007-07-12 17:25

창작뮤지컬 <댄싱 섀도우>
창작뮤지컬 <댄싱 섀도우>
[리뷰] 창작뮤지컬 ‘댄싱 섀도우’
이건 꽤 무모한 시도다. 뮤지컬하면 로맨틱 코미디나 쇼를 떠올리는 분위기 속에서 진지한 뮤지컬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정의 열악함을 핑계삼아 대부분의 뮤지컬이 급조되는 풍토에서 오랜 준비와 자본 투자, 창작 뮤지컬의 세계적 브랜드화를 꿈꾸며 외국 전문가들과의 협업까지 시도했다. 이 시도가 과연 기존의 뮤지컬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인가.

신시뮤지컬컴퍼니의 창작뮤지컬 <댄싱 섀도우>가 막을 올렸다. 출발은 일년 전에 작고하신 차범석 선생의 <산불>.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지리산 자락에서 전개되는 원작을 저항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이 ‘콘스탄츠’라는 서구적 공간으로 가져가며 재창작하였고 <갬블러>의 작곡가 에릭 울프슨과 <맘마미아>의 연출가 폴 게링턴이 서정성과 신비함을 강조하며 작품을 육화시켰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공연의 수준은 <레미제라블>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도르프만은 분쟁을 일삼는 세계사에 절제력을 잃은 듯 너무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복잡한 구조와 인물망을 표현하기엔 음악은 아름다웠으나 단순했으며, 연극성이 강조된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은 신인 김보경의 연기는 더빙조의 연기를 보듯 아직은 설득력이 약했다. 게다가 아마존에라도 들어간 듯 뒷무대를 지킨 거대한 나무숲은 청아한 대숲이나 소나무숲에 길들여진 한국 관객에게 신화와 생명의 공간으로 호소력을 갖기엔 좀 이물스럽고 기괴하지 않았나.

그러나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댄싱 섀도우>는 기존의 창작 뮤지컬에선 맛보기 힘들었던 특별한 감흥을 선사하였다. 상징과 신화와 역사를 종횡무진 엮어 관객의 두뇌를 계속 회전시키는 작가의 능란함이나 공들인 선율, 모든 것이 산불로 진화된 잿더미 위에서도 땅 밑에 숨은 씨앗의 희망을 노래하는 마지막 장면의 감동이나 나무와 교감하는 소녀가 지젤이라도 된 듯 숲의 정령들과 춤을 추는 아름다운 장면 등, 급조된 뮤지컬로선 도달할 수 없는 웅장한 감동과 매혹적인 순간도 분명 제공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자주 느끼는 일이지만, 우리는 새로운 변혁을 꿈꾸면서도 그 도정에 있는 성장통과 시행착오에 대해서는 무척 인색하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으면 모든 긍정적인 가능성들이 관성만도 못한 실패로 귀결되는 이 엄격한 구조에선 대통령부터 민간예술기구에 이르는 모두가 도마에 오르는 듯하다. 이러다간 언제나 똑같은 시도만 살아남게 되지 않을까. <댄싱 섀도우>는 단숨에 강 저편으로 건너뛰진 못했으나 의미있는 징검다리를 놓았다. 언젠가 또 누군가는 그걸 딛고 다음을 만들 것이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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