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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미치지 않은 사람들의 미친 이야기 <미친 뇌>

등록 2007-07-19 19:14수정 2007-07-19 19:35

사다리움직임연구소 <미친 뇌>.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제공 ⓒ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사다리움직임연구소 <미친 뇌>.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제공 ⓒ 한겨레 블로그 soolsoolgi
일시: 2007년 7월19일~7월29일 평일8시, 토4시7시, 일4시
장소: 설치극장 정미소
작, 연출: 이수연
출연: 고창석, 김민정, 김재구, 방현숙, 김순태
문의: 741-4485

가끔 우리는 스스로도 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곤 한다. 돌아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라고 되뇌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무엇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는지 고민하면 할수록 실마리는 손에 잡히지 않고 더더욱 미궁으로 빠져든다. 내 안에 나 아닌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살고 있는 느낌. 그렇게 된 원인이야 천만 가지도 넘게 있겠지만 쉽게 생각해보면 의외로 사건은 간단히 풀린다. 우리 뇌가 그렇게 하도록 시켰을 뿐이다. 어떠한 이유가 됐든, 뇌가 그렇게 시키기까지 그 과정을 파헤치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뇌는 그렇게 가끔, 아무도 모르게 미치기도 하니까.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오, ‘미친 뇌’를

무서울 정도로 냉철한 완벽주의자 조진후는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해 젊은 나이에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서게 된다. 그런 그를 순식간에 덮쳐와 조금씩 조금씩 영혼을 갉아 먹는 악몽이 있었으니, 얼굴을 가린 그 사내는 날마다 그렇게 그의 숨통을 죄어온다. 그러던 어느 날, 현실의 오디션 장에서 그는 영혼의 아귀와도 같은 그 꿈을 마주하게 된다. 드디어 얼굴을 드러낸 바이올리니스트는 프랑스 거리 페스티벌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오케스트라에 스카우트 된 자유로운 방랑가 성추상. 그러나 하루 일과가 끝나면 그는 한 고기 공장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고기를 연하게 두들겨 패는 일로 몸을 혹사시킨다. 한편 조진후는 오래 전부터 외상성 히스테리 발작을 앓고 있는 아름다운 여동생 시제를 몰래 집안에 숨겨둔다. 그녀는 신경성 히스테리 증상이 신체로 전이되어 극심한 피부통증에 시달리는데, 하루 단 한 번 오후 4시, 맑은 정신을 되찾는다. 그런 그녀를 돌봐주는 한의사가 휘명이다. 시제에게 침을 놔주거나 최면을 걸어 평안한 세계로 인도하는 그녀는 밤이 되면 신비로운 보랏빛 커튼 속에서 문신 예술가로 변신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인물들과 교묘하게 관계를 맺으며 복수와 욕망의 도구들을 파는 상인의 등장은, 극 전체를 더욱 더 알 수 없는 환상의 세계로 끌고 간다. 이 심상치 않은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미치지 않은 뇌’로 일상을 사는 ‘나의 평범한 자아’가 보기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한 순간 돌변하는 나의 ‘미친 뇌’는 어느새 마음 한 구석에서 슬며시 고개를 끄덕인다. ‘뭘 이해하려고 애써? 그냥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라고. 바로 이 연극, <미친 뇌>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렇게 이성적으로 불가해한 인간의 본능적인 내면을 상상한다. 과연 우리는 전적으로 뇌의 지배를 믿어도 되는 것일까, 나의 이성은 얼마만큼 뇌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은, 연극을 보고 극장을 나서며 뇌 어느 구석 주름 서너 개가 꼬여버린 듯 한, 풀리지 않는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뇌가 시키는 대로 보시오, <미친 뇌>를

이렇게 불가해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업이 물론 쉬이 진행될 리가 없다. 더구나 인간의 내면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기에, 더 효과적으로 미묘한 심리변화를 전달하고 광적인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 <미친 뇌>는 다양한 미디어들의 도움을 빌린다. 영상과 음향은 불규칙하게 진동하는 뇌의 파장을 잡아내고, 애잔한 바이올린 선율은 등장인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감정의 증폭을 예고한다. 한편 강렬하고 뚜렷한 조명의 변화는 시각적 자극을 뇌에 전달시켜 미친 뇌의 발작적 증상들을 지켜보는 관객들을 공범으로 몰아간다. 이렇게 해서 괴기스럽고도 아름다운 ‘미친 뇌’들의 변주곡이자, 연극 <미친 뇌>가 뇌리에 박히는 순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사다리움직임연구소 배우들의 공동창작 과정이 더해져 공연은 한층 현실감을 더한다.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는 비단 환상적인 미디어의 효과를 넘어서 이 불가해한 등장인물들의 일상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장으로 끌어낸다. 테이블 위에 거꾸로 누워서 숨이 넘어갈 듯 대사를 읊는 그들의 모습에서 악몽 같은 현실이 재현되면 관객들은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숨을 죽일 것이며, 무대를 가로지르며 형상화되는 심리적 추격전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자신이 쫓기는 자, 혹은 쫓아가는 자가 된 듯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불가해하면서도 그 꼬임에 한번쯤은 넘어가고픈 충동에 사로잡히게 만들 상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이 연극 <미친 뇌>를 즐길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다. 만약에, 이 세상 어딘가에 실제로 이런 인물이 있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누군가의 존재를 없애버릴 완전범죄가 가능한 묘약을 파는 사람이 있다면, 이성이 마비되어 욕망의 결정체가 된 어느 한 순간 누군가를 내게 넘어오도록 부추길 신비의 기계를 파는 사람이 있다면, 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제 선택은 여러분의 손에 달렸다. 아니, 사실 여러분의 ‘뇌’에 달렸다.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주저하지 말고, 그저, 뇌가 시키는 대로 행하라!

불가해한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다 연출가 이수연

불가해 연극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다는 <미친 뇌>의 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수연은 인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존재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왜 그랬는가를 이해하려고 하기에 앞서, 그러한 경향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인식하게 하려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바로 그 극단의 인물들이 연극 <미친 뇌>의 무대를 활보한다.

“사실, 이 이야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차피 다 아는 것들이란 말이죠. 살면서 종종 우리 마음이 왜 이런지 모를 때가 있잖아요. 정념, 분노, 집착 이런 것들이 인생을 채우고 있지만 정작 그 이유는 모르는 거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라고 할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은 인간의 뇌가 지시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거잖아요. 그 앓는 듯 한 느낌이랄까, 그런 것들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정답을 찾아 간다기보다는, 개인적인 이슈를 끄집어내서 누구나 다 그렇다는 것을 얘기하려는 거죠. 이런 것들은 노력해서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잠재적 욕망이라는 건 숨겨져 있잖아요. 알고 있는 게 결코 다가 아니죠. 이 극의 다섯 캐릭터들은 모두 그 나름대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상인은 광대 같은 인물이에요. 어떻게 보면 이 작품도 비극인데, 비극에서의 광대는 다른 인물들이 절대로 직접 말하거나 행하지 않을 어떤 것들에 대해 조롱하고 코멘트를 해주는 역할을 하잖아요. 일종의 코러스의 역할이랄까요. 바깥에서 다른 인물들이 갈등하는 면면을 지켜보며 계속 긴장관계로 흐르는 극을 이완시켜주는 역할을 하죠. 쉽게 말하자면, 다른 이들이 갈등하고 고민할 때, 욕망이 시키는 대로 질러버리는, 그리고 그렇지 못한 인간들을 유혹해서 물건을 파는, 절대적으로 뇌의 명령을 따르는 인물이에요. 뇌가 당신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그렇게 해라, 라고 이야기 하고 있죠. 이 연극을 올리면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여동생의 입을 통해 전달이 돼요. 인간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인식과 행동 사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죠. 사람들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왜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거든요. 결국은 불가해한 것들을 드러내서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싶었어요. 정답은 없습니다. 어떤 연극은 수수께끼로 진행되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무대에서 무엇인가를 표현해주고 꼭 그 표현을 받아들여야만 소통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식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실제 인생을 살면서는 모두들 고민하고 갈등하잖아요. 연극도 반드시 정답을 가르쳐 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하루 단 한 번 기적 같이 맑은 정신을 갖는 '시제'는 연극을 접으며 다음과 같은 대사로 생을 마감한다. “이것이 비극이라면, 아니면 새로운 세상과 새롭게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시작이라면, 모든 것을 그냥 그대로 두어도 좋으리라. 우리 마음 속, 머릿 속 일은 하나의 엉긴, 풀리지 않는 불가해일지도 모른다. ... 두려움과 광기, 격정으로 끓고 앓던 뇌는 아직은 우리 머릿 속에 있고, 당신들은, 나 대신, 그 이해할 수 없음을 더욱 길게 이해하리라-” 진후, 시제, 추상, 휘명, 상인, 그 다섯 인물의 불가해한 미친 뇌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만들어낼까. 미친 듯이 휩쓸리는 우리의 뇌는 무엇을 더 갈구하는 것일까. 그 광풍의 끝은 어디일까. 연극 <미친 뇌>는 말한다. 굳이 애써 알려고 하지 말라고.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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